[뉴스핌=이동훈 기자] 1789년 파리에서 정치범 교도소라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랑스 대혁명은 서로마제국 멸망 직후 서기 5세기 프랑크왕국에 의해 성립된 1300년 프랑스 왕정을 몰락시켰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처럼 하늘을 찌를 듯 했던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일부 부르조아들의 선전선동으로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는 않았다.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도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독립전쟁 참가로 인해 바닥난 국고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컸을 뿐.
이러한 무소불위의 프랑스 절대왕정이 무너진 계기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된다. 대대로 프랑스의 적국인 오스트리아 공주로,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뜨와네트에 대한 국민들의 미움을 부르조아들이 부추킨 것이다.
3부회 결렬 이후 시민 대표(그래봐야 부르조아들)들이 국왕에게 의회 소집을 요구하며 지리한 싸움을 벌이는 도중 '우리에게 빵을 달라'던 파리시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왕비 마리앙뜨와네트가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지, 왜 저 야단들이지?"라는 발언을 했다는 소문이 파리 전역에 퍼졌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유럽 최고의 가문으로 꼽히는 합스부르크家의 직계 자손인 마리앙뜨와네트의 지적 수준을 의심케하는 이 말은, 진위여부는 무시된 채 부르조아들의 선전선동으로 온 파리를 휩쓸었고, 결국 시민들은 부르조아에 동조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불꽃은 타올랐다.
현재의 프랑스 역사가들은 누구도 마리앙뜨와네트가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어라"라는 말을 실제로 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즉 부르조아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이와 상관없이 부르조아들 입장에서는 마리앙뜨와네트가 이 같은 발언을 했는지 사실은 중요치 않다. 다만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욕구에 활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정치권이 정부 행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인 18대 대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정치권이 이에 올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하지만 지나친 호도는 국가 운영에 해롭다는 점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정치권이 현재 '꽂혀' 있는 것은 정부의 무분별한 민영화를 저지하는 것이다. 대선 당시 공기업 선진화로 인기몰이를 했던 이명박 정부가 인천국제공항 매각과 한국수자원공사의 수도사업 매각, 그리고 영리병원 설립 등의 계획을 내놓으며 국민적 저항감이 나타나자 야당 입장에선 민영화는 아주 좋은 공격대상이 됐다.
그리고 그 주요 공격 포인트는 정부가 아닌 여당의 최고 실력자의 뜻에 따라 '차기 정부'로 넘어간 인천공항이 아니라 KTX민간 경쟁체제 도입 부분이다.
민영화의 사전적인 의미는 국가 및 공공단체가 특정기업에 대해 갖는 법적 소유권을 주식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외부계약, 민간의 사회간접자본시설 공급, 공공서비스사업에 대한 민간참여 허용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사전 대로라면 KTX 민간경쟁 도입은 넓은 의미의 민영화에 해당된다. '공공서비스사업에 대한 민간참여'라는 두루뭉실한 사전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 민영화를 반대했던 것은 정부가 인천공항을 민간 자본에 그 소유권을 넘겨 준다는 점 때문에 대국민적 저항이 시도됐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사태는 국민들의 '민영화 알레르기'를 정치권이 교묘히 활용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즉 적국 오스트리아 공주인 왕비를 미워하는 국민들의 심리를 프랑스의 부르조아들이 활용했던 것 처럼 말이다.
지난해 새해 업무보고에서 국토해양부가 KTX 민간경쟁도입을 꺼낸 후 정치권이 제기하기 시작한 민영화 의혹에 대해 정부는 줄곧 아니라고 해명했다. 민영화의 기본 골격은 공기업 또는 국영기업의 지분을 민간에 파는 것이지만 수도권 고속철도 민간경쟁은 시설도, 공기업도 팔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란 게 정부의 주장이었다.
정부 말을 닥치는대로 믿을 수 없게 만든 것도 이명박 정부의 자업자득이라지만, 믿지 않는 것도 병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믿지 못해서 믿지 않는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아서, 믿으면 안되니깐 믿지 않는 게 아닐까.
15년 독점 운영권을 준다고 해도 수도권 고속철도는 대체수단이 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경부선과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호남선이 그것이다.
운임 문제는 정부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코레일 수준보다 낮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운영 곤란을 이유로 민간업자가 요금인상을 주장한다면 무시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코레일 수준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이번 논쟁이 피로해지는 이유는 민영화가 득이냐 실이냐에 대한 논란은 전혀없고 국유화와 민영화를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과 악 규정은 정치권의 전형적인 논리다. 즉 자당은 선이고 타당은 악이라는 게 정치권의 논리다. 하지만 시장 경제 국가에서 이 것이 타당한 주장일까?
정부의 말을 빌리자면 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부채는 14조에 달한다. 매년 50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납부하고 있다. 국영기업인 철도시설공단은 현재 자산의 59%가 공사채다. 경부고속철도, 호남고속철도 등을 건설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공사채를 거의 갚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레일이 납부하는 선로사용료는 시설공단이 요구하는 사용료에 크게 못미치는 1000억원 정도. 이 상태에서 코레일은 교차지원을 위해 알짜 노선은 코레일이 챙겨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공기업은 적자가 날 수도 있다'며 배짱을 튕기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사는 적자가 나면 그 손해는 민간사가 본다. 하지만 공사의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공사가 다 그러하듯 코레일 역시 일류 대학 출신의 석학들만 들어가는 일류 직장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사라는 이유로 '세금 먹는 하마'를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고속철도가 결국 코레일에 넘어가면, 과연 득이 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코레일 밖에 없다. 코레일은 수도권 고속철도까지 운영할 경우 이를 핑계로 수많은 '강철밥통' 직원들이 양산될 것이며, '공기업은 적자가 날 수도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코레일은 국민 혈세의 블랙홀이 될 수 밖에 없다.
인프라는 단순히 국민 복지 만 담아서는 안된다. 수익자 부담 원칙도 철저히 챙겨야한다. 1년 수도권 고속철도를 한 두번 이용하는 수요자의 세금이 수도권 고속철도 운영에 사용돼서는 안된다. 당연히 이용하는 사람의 요금으로 운영해야 된다. 이 것이 바로 민영화의 '득'이다. 선은 아닐지 몰라도 득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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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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