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6월 27일 제13연대는 광탄에서 북한군 전차공격을 막아냈다
- 북한군의 측후방 침투로 제13연대는 남쪽으로 철수했다
- 6월 28일 제1사단은 반격했지만 전선 확대에는 실패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광탄의 밤
6월 27일, 광탄 일대의 국군 제13연대 방어정면은 낮 동안 잠잠했다.
북한군은 큰 공격을 벌이지 않았다. 이따금 포탄이 떨어지고 소규모 병력이 접근했다가 물러났다. 제13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이 자신들의 진지와 화기 위치를 살피고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밤을 준비했다.
전날 전투로 흐트러진 병력을 모으고 무너진 참호를 보수했다. 기관총과 박격포의 위치를 다시 정했다. 남은 탄약을 각 진지에 나누어 놓고, 끊어진 통신선도 살폈다.
해가 기울자 광탄의 산과 들에 어둠이 내려왔다.
같은 날 저녁, 육군본부의 작전지도반이 봉일천 국민학교에 설치된 제1사단 전술지휘소를 찾았다. 제1사단과의 유·무선 교신이 끊기자 육군참모총장이 김홍일 소장을 중심으로 한 지도반을 보낸 것이다.

교실에 지도가 펼쳐졌다.
백선엽 대령과 참모들은 개성에서 임진강, 파평산, 위전리와 광탄으로 이어진 전투 경과를 설명했다. 제12연대는 개성에서 철수하며 흩어졌고, 제11연대는 임진강 철교에서 싸운 뒤 물러났다. 제15연대는 위전리에서 북한군 전차를 저지했지만 측방이 노출되어 봉일천으로 철수했다. 제13연대는 지금 광탄에서 북한군 제1사단을 마주하고 있었다.
김홍일 소장은 창동–미아리 방어선과 서울의 위급한 상황을 전했다. 한강 도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서울 쪽 퇴로가 끊기면 제1사단이 한강 북쪽에 고립될 수 있었다.
백선엽 대령은 육군본부의 공식명령 없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1사단은 여전히 북한군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철수 여부를 육군본부가 조속히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저녁 광탄에서는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9:00가 조금 지나 북쪽에서 포성이 울렸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떨어지던 포탄이 곧 제13연대 방어진지 곳곳을 때렸다. 참호 위로 흙이 쏟아지고 전화선이 끊겼다.
포격 사이로 전차 소리가 들렸다.
제13연대 방면으로 북한군 전차 약 20대가 접근했다. 그 가운데 다섯 대에서 여섯 대가 도로를 따라 제1대대 좌측방으로 나아갔다. 뒤에는 북한군 제1사단 보병이 따랐다.
제6야전포병대대 제3중대가 제13연대를 지원하며 사격했다. 제13연대의 81mm 박격포와 60mm 박격포도 북한군 접근로에 포탄을 떨어뜨렸다. 기관총은 전차 뒤를 따라오는 보병을 향했다.
국군의 화력이 집중되자 일부 전차가 북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선두의 전차들은 계속 움직였다. 몇 대가 제2대대 방어정면으로 접근해 진지를 향해 포격했다.
제2대대 장병들은 전차가 가까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신현준 대위가 2.36인치 로켓포 사격을 지휘했다. 도로의 굴곡을 따라 움직이던 전차의 측면이 드러나자 로켓포탄이 발사되었다.
포탄이 전차 측면에 명중했다. 연기가 솟았고 전차가 멈췄다.
제13연대 장병들은 멈춰 선 전차 뒤로 따라오던 북한군 보병을 향해 사격을 집중했다. 보병의 전진이 둔화되면서 북한군의 첫 공격은 저지되었다.
그러나 제13연대는 아직 진지를 떠날 수 없었다. 북한군의 포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 제18연대 제2대대도 제13연대를 증원하기 위해 광탄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대장 장춘권 소령은 제13연대 제1대대 동쪽의 방어지역을 인수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증원병력이 들어오고 전방에서는 교전이 계속되어, 인접 부대의 위치를 확인하며 진지를 넘겨받기가 쉽지 않았다.
밤이 깊자 총성이 정면만이 아니라 제13연대 방어선 안쪽에서도 들렸다.
북한군 보병이 진지 사이의 빈틈을 지나 제3대대 후방으로 접근한 것이다. 151고지 일대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제3대대 장병들은 정면의 북한군을 막다가 측방과 뒤쪽에서 들리는 총성에도 대응해야 했다.
다른 방향에서도 북한군의 공격이 이어졌다.
제13연대장 김익렬 대령은 전방 두 개 대대가 포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대예비인 제2대대가 철수를 엄호하고, 제1대대와 제3대대는 진지에서 빠져나오도록 했다.
제2대대는 주요 고지와 도로를 지키며 북한군의 추격을 막았다. 제1대대와 제3대대 장병들은 소대와 중대 단위로 이동했다. 일부 병력은 전우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진지에서 사격을 계속했다.
부상병과 옮길 수 있는 화기, 통신장비가 함께 내려왔다. 장병들은 북한군의 접근을 경계하며 광탄 남쪽으로 물러났다.
정면에서 전차 한 대를 멈춰 세웠지만, 밤새 측방과 후방으로 들어온 북한군 때문에 제13연대는 그 진지를 지킬 수 없었다.
그사이 봉일천의 제1사단 전술지휘소에는 L-5 연락기를 통해 육군본부의 통신연락문이 전달되었다. 원고에 기록된 명령은 짧았다.
"현 방어선을 사수하라."
철수에 관한 지시는 없었다. 그러나 광탄에서는 이미 제13연대의 전방 대대들이 빠져나오고 있었고, 위전리 쪽 부대도 기존 진지를 떠난 상태였다.
사단은 병력을 다시 모으면서 반격을 준비해야 했다.
6월 28일 아침, 제13연대는 급편방어진지를 마련했다. 제3대대는 143고지에, 제1대대는 164고지 일대의 금천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제2대대는 육교동 남쪽 무명고지에서 연대예비로 대기했다.
08:00경 제11연대도 공격에 대비해 제2대대와 제3대대를 좌·우일선에 전개하고, 제1대대를 예비로 두었다.
08:20, 제1사단의 반격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두 개 연대를 중심으로 최후저항선을 회복하려는 계획이었다. 제13연대는 접촉선에서 공격으로 전환해 151고지–89고지선을 탈환하고, 제11연대는 좌측방에서 위전리–도내리선으로 진출하기로 했다. 제15연대와 제12연대, 서울특별연대와 배속부대도 작전을 지원하도록 계획되었다.
명령은 분명했지만 각 연대의 사정은 달랐다. 병력은 줄었고 통신은 불안정했다. 인접 부대가 어느 위치에서 싸우고 있는지 즉시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제11연대는 봉일천 북쪽으로 전진했다. 제2대대와 제3대대가 큰 교전 없이 위전리–도내리선까지 나아가 전날 떠났던 진지를 다시 점령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 북쪽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좌우의 다른 부대들은 북한군과 교전 중이었다. 제11연대만 앞서 나가면 측방이 노출된다. 연대는 위전리–도내리선에서 전진을 멈추고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서울특별연대와 제20연대 제3대대도 투입되어 전선을 보강했다.
제1사단은 최후저항선의 일부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계획한 반격을 더 넓은 전선으로 확대하지는 못했다.
장병들은 회복한 진지에서 북쪽을 경계했다. 그동안 후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의 방어가 얼마나 버틸지, 훗날 건너야 할 한강의 다리가 어떻게 될지도 그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광탄의 밤을 견딘 제13연대는 물러나 새 진지를 세웠고, 제11연대는 아침에 다시 북쪽으로 나아갔다.
제1사단은 아직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사단이 서 있는 자리와 남쪽으로 이어질 퇴로 사이에는, 끊어진 통신만큼이나 큰 공백이 생겨나고 있었다.
최병순 소령의 장병들은 전차가 가까워질 때까지 사격을 기다렸다. 선두전차가 방어진지 전방 약 300m에 이르자 57mm 대전차포가 발사되었다.
포탄이 전차를 향해 연속으로 날아갔다. 2.36인치 로켓포도 사격을 시작했다. 우측방의 제20연대 제3대대는 북한군 전차와 보병을 향해 화력을 보탰다.
도로에 포탄과 로켓포탄이 떨어졌다.
북한군 전차대열은 전진을 멈췄다. 하지만 멈춘 전차의 포탑이 다시 움직였다. 전차포탄이 국군 진지에 떨어졌고, 북한군 보병은 도로 양쪽으로 퍼져 사격했다.
국군 대전차포병들은 포격을 받으면서 다시 장전하고 발사했다. 전차 한 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다른 전차들은 여전히 도로에 있었다.

그때 멈춰선 전차들의 해치가 열렸다. 승무원들이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제15연대 장병들에게는 전차 내부를 공격할 기회였다.
최병순 소령이 전차에 접근할 병력을 모집하자 제11중대의 전차특공대원들이 나섰다. 그들은 수류탄을 들고 진지를 빠져나와 둔덕과 논두렁을 따라 몸을 낮췄다.
기관총탄이 가까운 흙을 튀겼다. 특공대원들은 전차의 사격 방향을 살피며 거리를 좁혔다.
제11중대 제2소대장 박종준 소위가 앞장섰다.
박종준 소위는 전차 가까이 다가가 차체를 붙잡고 올라갔다. 해치가 열려 있었다. 그는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전차 안으로 던져 넣고 뛰어내렸다.
곧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열린 해치 밖으로 연기와 불길이 솟았고 전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박종준 소위는 다시 수류탄을 들고 다른 전차로 향했다. 접근하던 그에게 전차 기관총이 사격했다. 박종준 소위는 총탄에 맞아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공격한 전차에서는 불길이 계속 타올랐다.
전차특공대원들도 공격을 이어갔다. 국군은 기관총과 소총으로 전차 주변의 북한군을 견제하는 동안 수류탄을 든 장병들을 전차 가까이로 보냈다. 이어 또 한 대의 전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북한군 전차대열의 전진은 중단되었다. 뒤따르던 보병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위전리의 장병들은 T-34 전차에 맞서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박종준 소위는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전차를 멈춰 세운 대가를 잊은 채 승리를 말할 수는 없었다.
전투 뒤에도 제15연대는 위전리 진지를 오래 지킬 수 없었다.
우측방의 제20연대 제3대대가 철수하자 그 빈 곳으로 북한군 제1사단 일부 병력이 접근했다. 정면의 북한군 제6사단을 저지하고 있어도 측방과 후방이 차단되면 연대 전체가 위험해진다.
제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은 두 개 대대를 봉일천으로 철수시키고 사단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제20연대 제3대대도 제13연대 방어지역 후방으로 우회해 이동했다.
제15연대 장병들은 위전리에서 북한군 전차를 저지했지만, 방어선의 다른 부분이 밀리면서 진지를 떠나야 했다.
6월 27일, 북한군 제1사단은 제13연대 방어정면에서도 국군의 배치와 화력을 살폈다. 소규모 교전과 포격이 이어졌다.
해가 지자 광탄 일대에 북한군 보병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위전리에서 전차의 전진은 멈췄다. 그러나 최후저항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제13연대 장병들은 어둠 속에서 다가올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