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최경명 씨는 2021년 북한군 복무 중 러시아로 탈출했다.
- 러시아에서 인류애를 경험한 뒤 2022년 한국에 정착했다.
- 국민대에서 스포츠건강재활학을 전공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농장원 아들로 꿈도 못꾸던 대학생활
"어려움 닥치면 북한 삶 떠올려 극복"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불과 5년 전만 해도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의 국경지대에서 총을 든 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북한군 최전방 군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음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대학 캠퍼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그려가고 있다.
한순간 들이닥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사선을 넘었던 청년 최경명(27) 씨. 서울에서 자취하며 대학 전공 수업과 군부대 안보 강연을 병행하고 있는 그의 활기찬 일상은 여느 남한 청년들과 다름없이 학업과 미래를 고민하며 치열한 하루를 살아낸다.

그의 매 순간은 고난을 이겨낸 승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최 씨는 2017년 북한에서 군 복무를 시작했다. 함경북도 경흥(구 새별) 지역의 일반 부대에서 청춘을 바치던 그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였다.
북한 당국이 방역을 명목으로 내륙 병력을 변경 지대로 대거 증강 배치하면서, 그가 속한 부대도 북·러 접경지대인 두만강 유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서 감행한 사선의 탈출
대다수 탈북민이 남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치밀한 계획 끝에 변경을 넘는 것과 달리, 그의 탈출은 예기치 못한 극적인 사건에서 비롯됐다.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조차 모르고 국경을 넘은 사람입니다. 당연히 남한에 오겠다는 계획 같은 건 단 1도 없었죠."
2021년 1월의 어느 날 새벽, 살인적인 추위가 몰아치는 잠복 초소 근무 중 피로를 이기지 못해 잠시 졸았다는 이유로 순찰 돌던 상사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뼈가 꺾이는 고통 속에 '이대로 맞다가는 죽겠다'는 본능적 방어기제로 상사를 맞받아쳤다.
북한 군대에서 상관 폭행은 곧 미래의 파멸을 의미했다. 노동당 입당도, 고향으로의 귀환도 불가능해진 막막한 현실 앞에서 그는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 길로 60발의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든 채 두만강으로 뛰어들었다. 70m 간격으로 초병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 국경에서 자멸 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땅을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죽음의 공포를 압도했다.
다행히 단단히 얼어붙은 두만강과 눈보라 덕분에 기적적으로 총격과 지뢰를 피해 러시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벨트 풀어주던 러시아 군인 잊을 수 없어
당시 최 씨는 왼쪽 다리가 골절된 최악의 몸 상태에 체중은 고작 38kg에 불과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기고 구른 끝에 다음 날 오전 11시 러시아 군부대를 발견해 자수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군 감옥을 거쳐 모스크바 난민 수용소로 이송됐다.

말이 감옥이었을 뿐, 그곳에서 경험한 것은 뜻밖에도 따뜻한 '인류애'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죄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해주었고, 먹을 것과 운동용품, 방한용품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특히 한 러시아 군인과의 일화는 그의 가슴에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체중이 너무 빠져 바지가 계속 흘러내리길래 밥을 가져다주는 러시아 군인에게 벨트가 있으면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군인은 말없이 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군용 벨트를 풀어 주더군요. 괜찮냐고 묻니 자기는 또 있다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군인이 지나가는데, 옷 틈새로 바지를 끈으로 묶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러시아 군인이 베풀어준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모스크바 난민 수용소 시절 인근 마을 독거노인들의 감자 농사를 돕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자발적인 봉사를 이어갔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 없이 자신을 가족처럼 맞아주던 러시아 사람들의 정(情)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대사관 면접을 결심하기까지 수개월의 고민을 거쳐야 했을 정도였다.
◆'대한민국'을 처음 배우고 마주한 새로운 세상
모스크바 수용소에서 먼저 와 있던 다른 탈북민을 만나며, 그는 비로소 자신이 알던 '미군 군홧발에 휩쓸려 다니는 가난한 남조선'이 아닌 자유롭고 번영한 '대한민국'을 알게 되었다.
탈출 순간에도 당과 수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만큼 충성심이 가득했던 그였다. 러시아에서 진행된 첫 인터뷰 때는 북한 지도자를 존칭 없이 부르는 통역원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들어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먼저 탈북한 선배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인터넷 영상들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은 희미해졌다. 새로운 세상을 하나씩 알아간 끝에, 2022년 7월 마침내 1년 6개월간의 러시아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 땅을 밟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얼떨떨함, 조미료와 설탕이 가득한 남한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한동안 토해내야 했던 정착 초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북향민 청년 대안학교인 '반석학교(구 하나꿈학교)'의 문을 두드렸고, 멘토들의 도움 속에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다져나갔다.
◆"건강을 찾게 돕는게 은혜에 보답하는 길"
최 씨는 러시아 사람들과 한국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자 국민대학교 스포츠건강재활학과 진학을 선택했다.
"남한 사회는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비만이나 건강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건강을 되찾아주는 일이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농장원 자녀라는 이유로 군 제대 후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였고, 대학 진학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대학 공부를 하다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그는 늘 고향에서의 삶을 떠올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학업적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긍정적 의지와 노력은 결실을 맺어, 그는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기록하며 성적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학업과 삶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남북의 차가운 경계를 녹여버리기에 충분한 듯하다.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최경명 씨의 발걸음은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