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영화 ‘흐르는 여정’은 21일 상실을 겪은 춘희의 새 여정을 그렸다
- 춘희는 피아노를 계기로 이웃 민준과 피아니스트 성찬을 만났다
- 세 사람은 음악으로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김혜옥·저스틴 민·박대호가 빚어낸 조화로운 하모니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누군가는 인생을 쉼 없이 움직이는 시계에, 누군가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에 비유한다. 또 누군가는 찬란하게 피었다 지는 벚꽃에서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저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듯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일까,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찬란한 순간일까.

영화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며 고요했던 일상에 새로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나는보리'의 김진유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에 올랐다.
영화 속 춘희(김혜옥)에게는 유독 소중한 네 가지가 있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집과 여행을 다녔던 자동차, 청각장애인이었던 남편이 연주하던 피아노, 그리고 화분이다.
건축가였던 남편이 직접 지은 집부터 함께했던 추억이 담긴 물건들까지, 춘희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닦고 돌본다. 마치 물건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통해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을 간직하려는 듯하다.
그렇게 남편과의 추억을 품은 채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던 춘희에게 뜻밖의 상황이 찾아온다. 새 아파트에 피아노를 들여놓으려 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아 집 안으로 옮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이웃인 민준(저스틴 민)이 자신의 집에 피아노를 두라고 제안한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춘희는 경계심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
유명 지휘자인 민준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인물이다.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춘희와 민준은 피아노를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상처와 외로움을 마주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깊어지면서 멈춰 있던 피아노에도 다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성찬(박대호)이 더해지면서 세 사람의 인연은 음악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을 살아온 세 사람은 각자의 아픔을 품고 있지만,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영화는 이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통해 혈연을 넘어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 극 중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춘희에게는 남편과의 추억을, 민준과 성찬에게는 각자의 삶과 감정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다가온다.
김진유 감독은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에서 성장하며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음악이 또 다른 언어이자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한글 자막을 삽입한 점도 눈길을 끈다. 김 감독은 한국 영화가 개봉하더라도 농인 관객들이 같은 시기에 작품을 관람하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이들도 개봉과 동시에 영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막을 넣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영화는 음악과 소통을 중심에 두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일상적인 행동과 표정, 인물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통해 각자가 간직한 기억과 상실의 무게를 차분하게 전달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작품의 잔잔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김혜옥은 남편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삶을 이어가는 춘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소중한 물건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모습부터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달라지는 감정까지, 절제된 연기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저스틴 민은 익살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민준의 모습으로 극에 활력을 더한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성찬을 연기한 박대호까지 어우러지며 세 배우는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의 곡을 완성하듯 조화로운 호흡을 보여준다.
마치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듯하다. 각자의 선율은 다르지만,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하나의 음악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여정'은 저마다 다른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멈춰 있는 듯했던 시간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한 사람이 간직한 기억은 또 다른 사람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남긴다.
인생은 어쩌면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시간을 함께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우리가 무엇을 간직하고, 누구와 함께하며, 어떤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갈 것인지 조용히 되묻는다.
taeyi42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