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방부가 6일 DMZ 지뢰 폭발 사고를 조사해 발표했다
- 북한군 지뢰가 MDL 이남에 묻힌 첫 확인 사례였다
- 군은 침범 징후에 원칙 대응과 기준선 정비를 주문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유엔사와 선(線)도 못 맞춘 군, "北이 제거하라"는 공허한 요구
1997년 백골부대 23분 교전, 2015년 '조준사격'… 北은 대가를 치러야 물러섰다
백마고지 74주년, 선배들이 피로 그은 선을 지도 위 논쟁에 맡길 수 없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74년 전 오늘, 1952년 10월 6일 철원 395고지에서 국군 9사단과 중공군 38군의 열흘 전투가 시작됐다. 12차례 공방 끝에 고지의 주인은 7번 바뀌었다. 9사단 사상자는 3400여 명이었다.
포탄에 깎인 능선이 백마가 누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군사분계선(MDL)은 이런 고지들을 이은 선이다.

그 선이 지난달 21일 서부전선에서 무너졌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육군 25사단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폭발 지점은 모두 MDL 이남 약 10여m였다. 유엔군사령부와 공동조사를 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 파편에서 TNT와 멜라민·요소·포름알데히드 수지(MUF) 성분이 검출됐다. 북한군 수지 반보병지뢰다. 최소 4발 이상 매설된 것으로 평가됐다. 장병 18명이 다쳤고 중상 2명, 경상 1명이 아직 입원해 있다.
군은 같은 날 낮 12시 51분 MDL 이남 북한군 지뢰지대 제거를 마쳤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6일 "DMZ 역사상 처음 있는 단호한 대응"이라고 했다. 같은 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은 '처음'과 '단호'의 의미를 따지는 질문으로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국방부가 밝힌 '처음'의 뜻은 이렇다. MDL 이남에 북한이 묻은 지뢰를 우리 군이 물리적으로 제거한 첫 작전이라는 것이다. 한 기자는 이렇게 받아쳤다. "북한이 MDL을 넘어와 지뢰를 묻은 것 자체가 역사상 처음이다. 남이 해놓은 일의 뒤처리를 단호한 대응이라 부를 수 있나."
시간표를 보면 이 질문은 정당하다. 북한은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고, 2024년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를 폭파한 뒤 소위 '국경선 요새화' 작업에 들어갔다. MDL 침범은 2024년 9회, 2025년 17회에서 올해 50여 회로 늘었다.

합참은 2025년 9월 위성으로 문제 지역을 처음 식별했다. 연초에 현장조사를 시도했다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접었고, 유엔사 현장조사를 위해 수색로를 개척하던 장병들이 결국 지뢰를 밟았다. 징후를 잡은 뒤 피를 흘리기까지 1년이 걸렸다.
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경고사격을 2024년부터 했고, 올해만 50회 이상 쐈다는 것이다. 감시 공백을 메울 20m 높이 경계타워와 승하강식 감시장비는 2024년부터 보강 중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유무인 과학화경계체계는 2030년이 목표다. 그러나 경고사격을 50번 하는 동안 지뢰지대는 MDL 남쪽에 자리 잡았다. 경고가 억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브리핑에서 드러난 근본 문제는 '선(線)'이다. 1953년 정전 이후 MDL 위에 세운 표지판 1292개 가운데 남은 것은 200여 개다. 우리 군은 2004년 미국 국가지리정보국(NGA)이 만든 도상 MDL을 쓴다. 유엔사는 2016년 자체 조사한 MDL을 갖고 있다. 북한은 남은 표지판을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추정된다. 선이 세 개인 셈이다.
국방부 정책국장은 "총량 측면에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부분은 유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합참이 올해 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유엔사와 협의하고 있음에도 하나로 합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합참은 북한에 "MDL 이남 지뢰를 스스로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북한이 응할 리는 없다. 김여정은 이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담화를 냈다. 설령 응한다면 우리 군은 북한군이 MDL을 넘어 내려와 작업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한다.

이 경우의 절차를 묻자 합참 작전부장은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사과를 강제할 다른 조치를 강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만 했다. 지휘관 문책은 "별도로 검토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북한의 요새화 의도에 대한 평가는 "북한도 보고 있어 공개가 제한된다"는 답으로 끝났다.
역사는 북한이 언제 물러섰는지를 보여준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했다. 사흘 뒤 한·미는 B-52 폭격기와 항공모함 전단을 띄운 가운데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냈다. '폴 버니언 작전'이다. 김일성은 유엔사에 유감을 표명했다.
DMZ 현장에도 선례가 있다. 1997년 7월 16일 오전, 강원 철원군 김화읍 육군 3사단(백골부대) 지역에서 장맛비를 틈타 북한군 14명이 MDL을 70m 넘어왔다. 5군단 예하 백골부대는 경고방송에 이어 K-2 소총으로 경고사격 200여 발을 쐈다. 북한군이 소총과 기관총으로 응사하자 50구경 기관총 70여 발로 맞받았다.
북한군이 무반동총과 박격포를 쏘자 57mm 무반동총으로 대응했다. 23분 교전이 끝난 뒤 북측 진지로 앰뷸런스가 들어가는 모습이 관측됐다. 1970년 이후 첫 포격전이었다. 국방부는 "모든 책임은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에 있다"고 발표했다.

2015년 8월 4일 파주 DMZ 목함지뢰 도발로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잃었다. 정부는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북한이 포격으로 맞서자 우리 군은 155mm 자주포로 대응사격을 했다.
결국 8·25 합의문에 북한의 '유감' 표명이 들어갔다. 군은 이때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 3단계 대응을 'MDL을 넘으면 조준사격'으로 줄였다. 당시 국방부는 "소극적 저지에서 공세적 격멸로 바꾼다"고 했다.
10년 뒤 방향은 거꾸로 갔다. 합참은 2025년 9월 경계작전지침을 바꿨다. 군사지도상 MDL과 유엔사 기준이 다르면 '더 남쪽'을 택해 대응하라는 것이다. 같은 해 10월 말부터 국방부는 합참에 "충돌로 이어지지 않게 상황평가를 면밀히 하라"고 최소 두 차례 주문했다.
당시 안규백 장관은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했다. 그해 11월 1~23일 MDL 침범 10차례 중 4차례는 경고방송만 하고 끝났다. 6일 브리핑에서 합참 작전부장은 "MDL을 내린 적이 없다. 참조선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응의 기준선이 남쪽으로 물러난 사이 북한 지뢰는 MDL 남쪽에 묻혔다.
지금은 2015년보다 사정이 나쁘다. 확성기는 철거됐고, 북한은 지난해 11월 우리가 제안한 군사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전 시 교전규칙 개정 권한은 유엔사에 있다. 그래서 더욱 군의 의지가 중요하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했고 유엔사도 공식 확인했다. 우리가 지키는 MDL을 북한이 넘어 지뢰를 묻었다고 우리 스스로 선언한 이상, 앞으로 같은 징후가 다시 보이면 대응은 달라야 한다.

국민들이 국방부에 바라는 건 세 가지다. 첫째, MDL 근접 작업 중 지뢰 매설이나 침범 징후가 식별되면 교전규칙 절차를 망설임 없이 끝까지 적용해야 한다. 1997년 백골부대처럼, 2015년 군의 방침처럼 해야 한다. 지도를 들고 내려와 위치를 확인하는 북한군에게 '여기서부터는 쏜다'는 선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둘째, '더 남쪽 기준'과 '사격 자제' 기조를 다시 점검하고, 유엔사와의 MDL 일치화를 시한이 있는 과제로 바꿔야 한다. 기준선이 셋인 상태로는 현장 지휘관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
셋째, 정전 시 교전규칙에 지뢰 매설 같은 침범 행위에 대한 대응 단계를 명시하도록 유엔사와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은 "전방 장병들의 노력을 저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25사단 장병들은 그 땅을 지키려고 미확인 지뢰지대에 들어갔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은 다음번 침범에 원칙대로 응징하는 것이다.
열흘 동안 고지 주인이 7번 바뀌는 동안에도 물러서지 않은 백마고지의 선배들이 있다. 그들이 피로 그은 선을 도상(圖上) MDL 논쟁에 맡겨둘 수는 없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선배 군인들의 피에 보답하는 일이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