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변상문은 6·25전쟁 희생자에 감사하며 ‘화랑담배’라 했다.
- 장단 일대서 국군 제3대대가 안개 속 지연전을 벌였다.
- 전차·보병 막았지만 끝내 임진강으로 철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안개 속의 전차
개성과 연안에서 제12연대 병력이 남쪽으로 물러나던 새벽, 장단 일대의 국군 제13연대 제3대대도 북한군 제1사단의 남하에 맞서고 있었다.
제3대대가 맡은 방어정면은 대원리에서 사미천면 원당동까지 약 23km였다. 제11중대와 제10중대가 전방을 지키고, 제9중대는 예비로 집결지를 확보했다. 병력에 비해 전선이 넓었다. 소대거점 사이에는 사람의 눈도, 총구도 닿지 않는 빈틈이 벌어져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04:30 무렵, 북한군 제1사단이 일제히 38도선을 돌파했다.
주공은 구화리–적성으로 통하는 사미천 접근로로 내려왔다. 조공은 상리에서 장단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산에는 새벽비와 안개가 남아 있었다. 장병들은 가까운 진지 앞을 살피면서도, 그 너머에서 얼마나 많은 병력이 내려오는지는 볼 수 없었다.

먼저 들린 것은 포성이었다.
대덕산에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제11중대 제1소대장 조철권 중위가 취침호에서 뛰쳐나왔다. 대덕산은 38도 분계선 남쪽 1km 지점에 있는 높이 236m의 산이었다. 이곳에서는 장단 접근로와 개성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철권 중위는 대대 정보장교에게 포격 상황을 보고하려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유선이 이미 끊겨 있었다.
날이 밝아왔지만 산 아래는 여전히 안개에 잠겨 있었다. 장병들은 사격진지에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포성 사이로 차량 엔진음과 전차 궤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안개가 엷어지자 대덕산 북동쪽 약 1km 지점, 두매리 방면에서 내려오는 북한군이 보였다. 대열을 갖춘 병력은 산 아래로 접근하고 있었다.
조철권 중위는 사격을 서두르지 않았다. 소대원들은 북한군이 다가오는 동안 총을 겨눈 채 기다렸다.
전방 200m.
사격명령이 떨어지자 기관총과 소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총탄을 맞은 북한군 선두가 쓰러졌다. 뒤따르던 병력은 엎드리거나 북쪽으로 물러났다. 제1소대는 첫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북한군은 같은 길로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대덕산 동쪽 기슭을 돌아 장단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지의 제1소대가 버티고 있어도, 북한군이 그 뒤의 도로를 먼저 차지하면 진지는 고립될 수 있었다.
제1소대는 중대의 이동을 엄호하며 산에 남았다. 오후 늦게 철수명령이 전달되자 장병들은 임진나루터를 향해 내려갔다. 산 아래 도로에서는 이미 북한군 병력과 차량이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덕산에서의 첫 교전은 이겼다. 그러나 소대가 지키던 전선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제3대대 방어지역의 좌단, 154고지 북쪽 1.6km 지점에는 제11중대 제2소대가 있었다. 소대장 이신국 중위와 약 50명의 장병은 안개가 덮인 무명도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도로 쪽에서 둔중한 엔진음이 들렸다.
안개 속에서 북한군 전차가 한 대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다섯 대에서 여섯 대였다. 궤도가 비에 젖은 흙을 밀어내며 소대진지 앞으로 다가왔다.
제2소대는 2.36인치 로켓포를 준비했다. 전차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로켓포 세 발을 차례로 발사했다. 전차 주위에 폭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전차는 멈추지 않았다.
2.36인치 로켓포로는 T-34 전차의 장갑을 뚫지 못했다. 북한군 전차는 약 300m 동쪽으로 이동해 소대거점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참호의 흙이 무너지고 돌이 튀었다.
이신국 중위는 전차 대신 그 뒤를 따르는 보병을 겨누게 했다. 소대원들은 포격을 견디며 북한군 보병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50m 앞까지 들어왔을 때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소총과 기관총의 화력이 북한군 보병에게 집중되었다. 전차는 막지 못했지만, 그 뒤를 따르는 병력의 전진은 늦출 수 있었다. 제2소대는 그 틈에 진지를 이탈해 임진강으로 향했고, 21:00 무렵 강을 건넜다.
고랑포에서도 안개가 진지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평소 남북교역으로 하루 수 십 대의 차량이 오가던 길은 그날 새벽 북한군의 남하로가 되었다. 제10중대장 박형수 중위는 전방 상황 보고를 두 차례 받았다. 그는 대대본부에서 대기하던 병력과 일부 화기를 보급차량에 태워 98고지로 보내려 했다.
그러나 차량이 고랑포 외곽에 닿기도 전에 북한군 침투 보고가 들어왔다. 박형수 중위는 반정리 남쪽 59고지로 물러나 급편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안개는 국군의 이동을 감춰 주었지만, 북한군도 숨겨주었다. 북한군 일부 병력은 제10중대의 소대거점 사이를 지나 임진강의 도섭 가능한 여울목으로 향했다. 역구룡 일대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06:00경 안개가 잠시 걷혔다. 59고지에서 북쪽 약 1.7km 지점의 53고지가 보였다. 그곳에서 북한군이 붉은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아군이 60mm 박격포를 사격했다. 포탄이 53고지에 떨어지자 북한군은 61mm 박격포로 응사하며 공격해 왔다. 얼마 뒤 126고지에 배치되었던 제3소대 일부 병력이 59고지로 모여들었다. 그들을 통해 소대거점 사이로 북한군이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더 지체하면 퇴로가 끊길 수 있었다.
제10중대는 석도리를 거쳐 임진나루터로 향했다. 하지만 강변에 닿았을 때 배는 없었다. 뒤에는 북한군이 있었고 앞에는 임진강이 가로놓여 있었다. 장병들은 나루터를 떠나 금천리 쪽으로 이동하며 강을 건널 다른 길을 찾았다.
그 무렵 제13연대 제3대대장 김재명 소령에게 전방 2개 중대가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연대 작전주임은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개시했으므로, 제3대대가 경계진지에서 최대한 지연전을 벌인 뒤 금곡리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명령을 받아도 전방 중대에 전할 수가 없었다. 통신이 끊겼고, 전령이 지나야 할 도로와 산길에도 북한군이 나타나고 있었다.
제3대대는 아곡동 일대에서 제9중대와 제12중대의 일부 병력을 수습했다. 흩어진 병력을 모으고 연락을 회복하기 위해 91고지와 181고지를 점령하려 했다. 그때 대대본부 부근에 북한군 포탄이 잇달아 떨어졌다.
북쪽 약 1km의 도로에는 전차 일곱 대가 나타났다. 뒤로는 북한군 보병과 차량이 따랐다.
북한군 전차는 장단경찰서 병력 21명을 태운 4분의 3톤 차량 한 대를 공격했다. 전차포탄이 명중하자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제3대대 장병들은 대대주둔지 남쪽의 무명고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전차를 향해 81mm 박격포와 2.36인치 로켓포를 쏘았다. 포탄과 로켓이 전차 주위에서 터졌다. 그래도 전차는 계속 움직였다.
전차포가 무명고지로 돌아섰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진지가 흔들렸고, 뒤따르던 북한군 보병도 사격을 가했다. 가진 화기를 동원했지만 제3대대에는 T-34 전차의 장갑을 뚫을 수단이 없었다.
제9중대 제1소대장 구철 중위가 전차에 직접 접근할 병력을 모집했다. 아홉 명이 나섰다. 구철 중위의 지휘 아래 육탄특공대가 편성되었고, 김재명 소령은 길을 안내할 전령 일곱 명을 붙였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수류탄이었다. 전차의 장갑을 뚫지는 못해도 열린 해치 안으로 던져 넣을 수 있다면 파괴할 가능성이 있었다.
장병들은 무명고지의 초목에 몸을 숨기고 전차 쪽으로 기어갔다. 비에 젖은 풀을 헤칠 때마다 군복에 진흙이 묻었다. 누구도 먼저 일어서지 않았다.
선두전차가 가까워졌다.
전차장이 해치를 열고 상반신을 내밀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수류탄을 쥔 채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몇 걸음만 더 가면 해치에 닿을 수 있었다.
그때 전차장이 고개를 돌렸다.
풀숲의 움직임을 발견한 그는 곧장 전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고 해치를 닫았다. 이어 전차 기관총이 사격을 시작했다. 앞에서 길을 찾던 전령 한 명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특공대원들은 땅에 엎드렸다. 북한군 전차는 해치를 닫은 채 속력을 높여 남쪽으로 내려갔다. 수류탄을 던져 넣을 틈은 사라졌다. 장병들은 전차 가까이 갔지만 육탄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전차가 지나간 뒤 무명고지의 풀은 궤도에 짓눌려 있었다. 그 곁에 쓰러진 전령이 남았다.

북한군 전차와 보병은 계속 남하했다. 제3대대가 아곡동 무명고지에 더 머물면 후방도로마저 차단될 수 있었다. 김재명 소령은 철수를 명령했다.
장병들은 부상병과 낙오병을 수습하며 임진나루터로 이동했다. 임진강을 건넌 뒤에는 금곡리로 집결했다.
장단 일대의 지연전은 북한군 제1사단의 남하를 막아내지 못했다. 대덕산과 고랑포, 아곡동의 무명고지는 국군이 물러난 뒤 북한군에게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제11중대 제1소대는 북한군을 200m 앞까지 끌어들여 첫 공격을 격퇴했다. 제2소대는 T-34 전차에 로켓포 세 발을 쏘고도 전차를 멈추지 못했지만, 50m까지 접근한 보병을 저지하며 철수할 시간을 벌었다. 제10중대는 59고지에서 박격포로 맞섰다.
아곡동 무명고지의 장병들은 수류탄을 들고 전차의 열린 해치를 향해 기어갔다. 해치는 눈앞에서 닫혔고, 공격은 실패했다.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왜 그토록 위험한 방법을 택해야 했는지도 함께 남겨야 한다.
북한군 전차가 임진강 방향으로 내려가는 앞길에는 제11연대가 지키는 임진강 방어선과 철교가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