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충칭시 장강문명포럼 사흘째인 17일 윈양현을 찾았다.
- 윈양은 장비묘와 두보 흔적이 공존한 고장이었다.
- 소금 생산과 관광으로 장강변 도시로 재도약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중국 서남부 내륙 충칭 구간 장강 위를 달리던 크루즈 황금8호가 잠시 속도를 늦췄다. 충칭시가 주관한 장강문명포럼 사흘째인 17일, 유람선은 충칭시 윈양(云阳)현 부두에 닻을 내렸다.
윈양은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도시다. 삼국지의 영웅 장비가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장강변 절벽을 따라 형성된 이곳에는 장비묘가 자리 잡고 있다. 삼국시대의 장수 장비를 기리는 사당이다.
사당 안으로 들어서자 뜻밖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였다. 장비를 기리는 공간에 두보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었다. 경내에는 두보의 청동상과 두견정 등 장비 기념 시설도 마련돼 있다.
장비와 두보. 시대도, 삶의 궤적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장구한 세월 유유히 흐르는 충칭 원양현 일대의 장강 유역은 이들의 이야기를 한곳에 품고 있었다.
두보는 말년에 윈양에 머물렀다. 병약했던 그는 이곳의 풍경과 기후를 즐기며 중양절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국화와 술을 좋아했던 두보가 윈양에 온 이유 가운데 하나로 당시 명주였던 '곡미춘(曲米春)'이 거론된다. 술 이름이 왜 곡미춘이라고 물었더니 당송시대 '춘(春)'은 술의 또다른 이름이었다고 한다.

후세에는 '시성 두보를 따라 맛있는 술이 있는 윈양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두보가 윈양의 명주를 알리는 사실상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 셈이다. 나중에는 '두공주(杜公酒)'라는 별칭까지 생겼을 정도다.
두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등고(登高)'도 이 시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중양절 높은 곳에 올라 장강을 바라보며 읊은 시에는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 그리고 초야에서 자연에 의탁해 만년을 보내는 소박한 서정이 배어 있다.
장비묘를 둘러본 뒤에는 옛 윈양성의 발자취를 찾아 판스청(磐石城)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도 확인할 수 있다. 장강 유역에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하지만 윈양의 역사는 단순히 고대 유적과 명소, 이 지역을 오간 명인들의 고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윈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인구 약 130만명의 윈양은 2000년이 넘는 소금 생산 역사를 가진 '소금의 도시'다. 지하 약 3㎞에 있는 소금 자원에서 하루 250t가량의 소금을 생산한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윈양은 장비 말고도 소금때문에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윈양현에서 나온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 식용 소금 약 10만t을 수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김치에도 소금이 들어갑니다. 중국의 소금이 한국인의 식탁에 올라가는 것이죠."

충칭의 장강변 도시 윈양현은 이 소금 생산의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소금 생산 유적을 보존하고 역사문화 자원으로 개발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크루즈 선상에서 본 장강은 윈양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열고 있었다. 옛날 삼협 일대의 윈양은 외부인의 발길이 쉽지 않았던 산간 지역이었다. 주민 상당수는 강의 지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삼협댐 건설은 장강변 주민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상당한 지역이 물에 잠기면서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 달라지고 장강은 새로운 경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고기잡이 대신 강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이 새로운 생업이 됐다. 과거 작은 배를 이용한 어로 활동 대신 강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강 청소업' 같은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장강의 수운이 발달하면서 배를 만드는 조선업도 달라졌다. 윈양에서 건조하는 선박 규모는 과거 30t급에서 현재는 2만t급까지 확대됐다. 강을 오가는 배의 규모가 커진 만큼 장강을 둘러싼 산업의 스케일도 달라진 것이다.
관광산업에도 일대 변화가 불어닥쳤다. 장강문명포럼의 안내원은 "윈양 장강변을 찾는 관광객은 1980년대 연간 1만명 안팎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수백만명 규모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만t급 대형 크루즈선이 삼협을 오가면서 윈양은 장강 삼협 관광의 주요 기착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과거 강은 물고기나 잡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강 자체가 가공할 규모의 관광자원이자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된 것이다.
오후에는 다시 황금8호에 올라 '세계 대하(大河) 전문가 교류 선상 포럼'에 참석했다. 주제는 장강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계의 큰 강과 인류 문명, 자연과 인간의 조화, 강을 통한 세계 각지의 연결과 교류 방안 등이 논의됐다.
장강은 잔 물결을 일으키며 말없이 흘렀다. 그 물길을 따라 수천 년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고 있었다. 윈양 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서 삼국지 장비의 최후와 촉한의 흥망 , 쇠약해진 두보의 쓸쓸한 만년, 천년을 이어온 소금 도시 이야기까지.
그리고 지금은 대형 선박과 크루즈선이 그 물길을 오가고, 강변을 따라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나고, 강변 도시에는 관광을 비롯한 새로운 서비스 산업들이 들어서고 있다. 윈양에서 마주한 장강엔 장비와 두보, 소금 말고도 신시대 중국의 미래가 어른거렸다. 장강은 강변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며 담담히 미래로 흘러가는 거대한 문명의 파수꾼이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