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서울아산병원 치료 끝에 별세했다.
- 육군참모총장과 내무·국방장관, 13·14대 의원을 지냈다.
- 12·12와 5·18 관여로 징역 7년이 확정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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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내무장관·국방장관 연이어 맡고 대구 서구갑에서 재선
12·12, 5·18 유죄로 징역 7년 확정… 군·정치 경력과 역사적 책임 교차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국방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6·25전쟁 참전 장교로 출발해 특전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군 수뇌부에 올랐고, 전역 뒤에는 내무·국방장관과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다만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관여한 책임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그의 이력은 한국 현대사의 공과를 함께 담은 기록으로 남게 됐다.
정 전 장관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날 오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유가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고를 졸업한 뒤 자원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1955년 졸업해 소위로 임관했다. 육사 동기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 등이 있었다. 이들은 훗날 신군부 핵심 인사로 분류됐다.
정 전 장관은 야전과 특수전, 지휘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제7공수특전여단장, 제50보병사단장,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83년 제25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냉전기 한반도 군사 대비태세와 한미연합방위체제가 유지되던 시기, 정 전 장관은 특수전·야전부대 지휘 경험을 바탕으로 육군 지휘부를 이끌었다. 1985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전역 뒤에도 정 전 장관은 제5공화국의 핵심 공직을 맡았다. 1987년 내무부 장관을 지낸 데 이어 그해 7월 제25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돼 전두환 정부 말기까지 재임했다. 군 출신으로서 치안·행정과 국방 분야를 잇달아 맡으며 당시 정부의 안보·행정 운영에 참여한 셈이다.
정치권에도 진출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 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고,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시 당선됐다. 다만 13대 국회의원 재임 중이던 1989년 12월 의원직을 사퇴했고, 14대 국회에서 재선 의원으로 활동했다.
정 전 장관의 생애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은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다. 그는 12·12 직후 특전사령관에 임명됐고, 5·18 당시에는 특전사 병력 운용과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에 관여한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정 전 장관은 1996년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과 관련해 장비 준비 등에 관여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특별사면됐다.
정 전 장관의 별세로 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 전 장성과 함께 이른바 '신군부 핵심 5인방'으로 불린 인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됐다. 군 지휘관으로서 특수전과 야전부대를 지휘하고 육군 수뇌부를 거쳐 국방 행정을 맡았던 경력은 분명하지만, 민주주의를 훼손한 12·12와 5·18에 대한 역사적·법적 책임 역시 그의 공직 이력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