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뉴스핌이 12일 청각장애인 7명을 취재해 재난정보 사각지대를 전했다.
- 농인들은 음성방송과 어려운 재난문자로 대피 판단이 늦었다고 했다.
- 20일부터 KBS 수어 재난방송 의무화로 시각정보 확대가 요구된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행정용어·모호한 안내에 재난문자도 장벽…60대는 "거의 이해 못해"
20일부터 KBS 수어 재난방송 의무화…"자막·지도·시각경보 병행해야"
'재난문자 특수 진동' 도입도..."재난정보 접근권은 생명과 직결된 기본권"
[서울=뉴스핌] 유재선 기자 = "계곡에서 집중호우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듣지 못했고 주변에서 대피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이동했습니다." "화재경보와 마을방송이 울렸지만 대피 안내를 듣지 못해 집 안에 있다가 이웃의 도움을 받고 대피했습니다."
농인 정규하(40대·남) 씨는 음성 위주의 재난·안내방송으로 인해 위험 상황을 뒤늦게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정씨는 열차가 갑자기 멈췄을 때 이유와 대비 방법을 알지 못해 객차 안에 혼자 남겨진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집중호우와 극한 폭염 속에서 청각장애인 45만명은 재난정보 사각지대에 있다. 공공장소에서 음성 안내 방송이 잇따랐지만 청각장애인은 음성으로 전해진 위험을 들을 수 없었다. 특히 국민 휴대전화에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쌓였지만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수어'가 제1언어인 농인들에게도 재난 문자는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로 느껴졌다.

뉴스핌이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7명을 취재한 결과, 이들은 재난 발생 사실을 뒤늦게 인지할 뿐만 아니라 재난문자를 확인하고도 위험지역이나 대피소,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25년 말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44만9269명이다. 농인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 "주변 사람들이 움직여야 상황 알아"…뒤늦게 인식·대피
비장애인에게 사이렌과 안내방송은 즉각적인 위험 신호지만, 농인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뒤에야 상황을 알아차리게 하는 '뒤늦은 경고'가 된다. 농인은 사이렌·경보음과 지하철·철도, 버스·터미널·공항 등의 음성 안내를 듣지 못해 위험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김정환 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협회장은 현행 재난정보 전달체계가 여전히 비장애인을 기본 이용자로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협회장은 재난정보 접근을 ▲재난 발생 사실을 인지하는 단계 ▲재난의 종류와 위험 범위를 이해하는 단계 ▲대피 여부와 장소·이동 경로를 판단해 행동하는 단계로 구분했다. 김 협회장은 농인은 모든 단계에서 정보 공백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협회장은 "농인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독립적인 판단과 대피가 늦어질 수 있다"며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거나 모두가 급히 대피하는 상황에서는 정보 확인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수어가 제1언어…재난문자는 '제2외국어'
소리를 문자로 바꿔도 정보 접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일부 농인에게 문자 한국어는 또 다른 장벽이다. 재난문자에 행정용어나 한자어, 축약된 지명까지 더해지면 재난 발생 사실을 확인하고도 자신이 대피 대상인지,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설문 응답자 4명 모두 가장 편한 의사소통 방법으로 한국수어를 선택했다. 30대와 40대 응답자는 문자로 된 한국어도 함께 선택했지만 60대 응답자 2명은 한국수어만 선택했다. 이들은 재난문자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정씨는 대남 쓰레기 풍선 관련 재난문자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북한 대남 쓰레기 풍선(추정)을 또다시 부양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께서는 적재물 낙하에 유의하시고 서울 진입 시 재안내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면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또한 정씨는 "'범람 우려', '제설 요망', '산사태 취약지역', '금일 야간'과 같은 표현은 직관적인 대피 행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 협회장은 농인의 재난문자 이해 문제를 단순히 문해력이 낮은 것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수어는 한국어를 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어순과 문법체계가 다른 독립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김 협회장은 "일부 농인에게 문자 한국어는 사실상 별도로 학습해야 하는 제2언어와 유사하다"며 "한국어 단어와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농인에게는 한국어 의사소통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20일부터 KBS 수어 재난방송 의무화…"수어·자막·지도 동시에"
농인들은 오는 20일 재난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정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라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는 재난 및 민방위경보 방송 시 한국수어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EBS를 제외한 다른 TV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에는 한국수어 이용 노력 의무가 부과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긴급 브리핑 초기부터 신속한 수어 통역 ▲야간·새벽 상시 지원 ▲방송 화면 상 수어 화면 보장 ▲지하철·기차역 등 다중이용시설 시각경보기 확대 설치 ▲일반 알림과 구별되는 '재난문자 특수 진동' 도입 ▲수어로 된 행동요령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단축 링크 주소 제공 등이다.

농인 조영균(20대·남) 씨는 "다중이용시설이나 공공건물에 시각경보기 설치를 늘리고, 재난문자에는 수어 행동요령 링크가 함께 담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협회장은 "농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소리를 문자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며 "한국수어와 자막, 지도를 동시에 제공해 농인이 재난 상황과 대피 방법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완전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정보 접근권은 방송사의 선의나 기술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편의 제공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jason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