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이세은 씨는 29일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 졸업을 앞둔 탈북 한부모로 자신의 삶을 위로했다고 했다
- 그는 북한과 중국에서의 굶주림과 인신매매를 딛고 초등 과정부터 검정고시로 학력을 쌓아 행정학과 4학년이 됐다
- 탈북민 정착은 개인 의지와 더불어 교육·정착 지원 등 사회적 뒷받침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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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대신 땔감 날라야 했던 어린 시절
"아이들 한국서 멋진 꿈 이루게 할 것"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훌륭해, 넌 해냈어.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이는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었던 위로였다. 압록강을 건너던 열아홉 살 소녀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이 됐다.

양강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세은(37) 씨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삶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정착기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선택이 어떻게 희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 '고난의 행군' 속 어린 시절…생존이 일상이던 시간
이 씨의 유년기는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와 겹쳐 있다. 학교에서 배움을 이어가야 할 나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연필 대신 땔감을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르내렸고, 들과 산에서 산나물을 캐며 하루를 버텨야 했다.
굶주림은 일상이었고, 생존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결국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어린 소녀를 국경 밖으로 내몰았다. 그는 가족을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압록강을 건넜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더 혹독했다.
◆ 인신매매…그리고 '신분 없는 삶'의 10년
중국에 도착한 이 씨를 기다린 것은 일자리나 새로운 기회가 아닌 인신매매였다. 그는 길림성의 한 산골 마을로 팔려가 신분을 숨긴 채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의 삶은 늘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단속에 대한 공포 속에서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았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곳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나는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며 수없이 되뇌었다. 신분 없는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없다는 현실은 결국 또 한 번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대한민국행을 선택했다. 먼저 입국한 뒤, 이듬해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이 된 두 자녀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그 순간은 그의 삶에서 가장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초등부터 다시'…두 아이 키우며 이어간 배움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이었다. 북한에서 초등교육만 받았던 그는 학력 인정 문제까지 겹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중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국어 표현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목숨 걸고 온 대한민국에서 꼭 대학을 졸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탈북청소년 대안교육기관인 '우리들학교'에 입학해 초등 과정부터 다시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갔다.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이동 시간조차 공부 시간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휴대전화 앱으로 문제를 풀었다. 특히 기초가 부족했던 영어는 가장 큰 장벽이었지만,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하고 반복하며 끝내 넘어섰다.
그 결과 5년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했다. 그의 정착 초기는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 엄마와 학생 사이…쓰러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
공부와 생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그는 두 아이의 양육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은 또 다른 책임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친척과 가족의 도움이라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만큼은 내가 살아온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짙은 모성애와 함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전해온다.
그는 빠듯한 형편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합기도와 태권도,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까지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기회를 아이들에게는 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대학생 엄마가 되기까지…그리고 아이들이 건네는 위로
마침내 그는 서울 소재 한 대학의 행정학부에 입학했고,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오랜 시간을 돌아 도달한 자리다.
어느덧 두 자녀는 고등학생이 됐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엄마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현한다.
어버이날이면 손편지와 카네이션이 그의 책상 위에 놓이고, 아들은 마지막 남은 치킨 한 조각을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 고생했어. 사랑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밤, 이 한마디는 어떤 보상보다 큰 힘이 된다.
◆ 탈북민 정착, 개인의 노력 넘어 '사회의 역할'
이 씨의 사례는 탈북민 정착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교육 기회, 정착 지원,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야 비로소 '자립'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남북하나재단 등 정착 지원 기관의 역할은 작지 않다. 초기 정착 교육과 생활 지원, 취업 및 학업 연계 프로그램 등은 탈북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특히 학업을 이어가려는 탈북민들에게는 장학 지원과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 '두 번째 출발선'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복지를 넘어, 사회 통합과 장기적 통일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통합과 공존을 향한 메시지
이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탈북민 한부모 가정에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보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바람은 단순하다.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꿈을 이루며 살게 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압록강을 건너던 한 소녀의 선택은 이제 두 아이의 미래를 바꾸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지고 있다.
탈북민의 정착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서로 다른 체제를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러지는 과정이다. 이 씨의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 통합과 통일의 방향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