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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서울 광진교 폭파 시점은 조작...국방부 바로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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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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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서영 전 연구위원이 25일 광진교 폭파 시점 왜곡을 주장했다
  • 그는 27일 오후 광진교 폭파를 직접 목격했고 다수 증언도 오후 4시 폭발을 가리킨다
  • 군은 한강인도교·광진교 폭파 시점 조작 의혹을 부인하고 있어 전쟁사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은폐'된 역사 진실 쫓는 허서영 씨
"한강교보다 앞서 하루 전 폭파"
"민간인 희생 감추려 역사 왜곡"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6.25 전쟁 76주년을 맞았지만 당시 역사 속의 많은 사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미궁에 빠져있다. 북한의 남침 공격 초기 우리 군이 방어를 위해 한강을 가로지르던 교량을 폭파·차단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곳에 놓여진 교량은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와 광진교가 전부다. 지금까지 전사(戰史)는 북한이 서울을 기습 점령한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인도교가 폭파됐고, 이로부터 1시간 30분 뒤인 4시 광진교가 폭파됐다는 것이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허서영 전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기자와 만나 6.25 전쟁 당시 서울 광진교 폭파와 관련한 군 당국의 역사 기록이 왜곡됐다며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영종 기자] 2026.06.25 yjlee@newspim.com

하지만 이런 기록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면서 진실 규명에 나선 전직 국가정보기관 원로가 있다. 군이 한강인도교보다 광진교를 먼저 폭파했다는 얘기다. 오랜 기간 한국은 물론 미국 등 관련국의 자료와 증언을 수집하며 역사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허서영(86) 전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왜 광진교 폭파 사건의 진실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나.

▲내가 당시 상황을 똑똑히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살다가 북한군의 진주로 광진교를 건너 피난 갔는데, 강을 건넌 직후 다리가 폭파되는 모습을 분명하게 지켜봤다. 그 기억이 생생한데 군 당국의 전사나 몇몇 기록에 전혀 다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올라 있으니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때 무엇을 봤고,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서울 돈암동에 살던 나는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던 1950년 6월 27일 오후 3시경 피난을 위해 광진교를 건넜다. 당시 돈암초등학교 3학년으로 모친(당시 34세)과 8살, 한 살 난 두 동생과 함께였다. 우리 가족은 당시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지금은 천호동 일대)에 있는 친척집을 찾아갔다. 그들이 내준 찐 감자를 먹던 중 엄청나게 큰 폭발음과 함께 광진교가 내려앉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다리는 어떤 상태였나

▲땅이 흔들리는 너무 큰 소리에 어린아이들은 물론 사람들이 동산 언덕에 올라가 광진교 쪽을 바라봤다. 마치 학교 운동장에 있는 미끄럼틀처럼 상판이 무너져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때 목격했던 상황이 역사적 '사실'이나 군 당국의 작전상황 기록과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군은 한강인도교의 경우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광진교는 1시간 30분 후인 새벽 4시 폭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5년 펴낸 '6.25 전쟁사'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한강인도교의 경우 폭파 시점에 논란이 없지만, 광진교의 경우는 다르다. 당시 현지 주민의 목격담이나 교량 통과 상황, 다수의 피란민 증언 등을 고려할 때 군 당국의 주장과 달리 12시간이나 앞선 6월 27일 오후 4시경 폭파됐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1950년 이전 광진교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광진교는 1934년 9월 20일에 착공해 2년 만인 1936년 10월에 완공됐다. 길이 1037m로 당시 전국에서 부산의 낙동교(1060m) 다음으로 긴 다리였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2026.06.25 yjlee@newspim.com

-폭파 직후의 상황도 설명해달라.

▲다리 아래 나루터 일대 백사장과 강둑에는 몰려든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작은 고깃배와 유람선을 이용해 철야 도강을 했지만 무사히 강을 건넌 건 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무사했던 한강인도교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행렬로 인해 지금의 성동구와 광진구 일대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특히 삼각지에서 한강인도교까지 약 2km 구간은 피난민과 철수하려는 병력, 각종 차량과 우마차까지 섞여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심야가 되자 폭우 속에서 나룻배를 선점하려 다툼까지 벌어졌다.

-당시 광진교 폭파와 관련한 기억이 오랜 시간을 흐르면서 일부 멸실되거나 뒤섞여 오인됐을 가능성은 없는가.

▲천지를 진동하던 폭발음은 난생 처음으로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청명한 여름날 오후라는 시간대는 영원히 뇌리에 각인됐다. 적어도 군 당국이 얘기하는 새벽 폭파는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한강에서 부친의 어업을 도왔던 당시 17세의 신경윤 옹이 "피난 출발을 위해 가족들과 그날 오후 4시 경 이른 저녁식사를 하던 중 폭발음과 함께 철제 교량 부품이 하늘높이 떠올랐다가 수면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회고하는 등 목격자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당국이 서둘러 증언을 청취했으면 한다.

-군 당국이나 언론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는 상황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점으로 판단해 군 당국이 작전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종군기자들이 취재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긴박했던 광진교에는 취재인력이 없었다고 한다. 또 군 당국이 설사 자료를 남겼더라도 한강교 폭파로 인해 비판과 논란이 인 상황에서 남겨두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강 교량의 폭파를 서두르는 바람에 어떤 피해가 벌어졌는가.

▲국군 5개 사단의 도강·남하가 차단돼 병력 4만 여명이 낙오되거나 분산됐다. 또 국군의 주력 무기인 50 여문의 105mm 곡사포와 1300 여대의 차량, 1만 여정의 총기류와 주요 장비, 다량의 차량용 유류 등이 적 치하에 남게됐다. 무엇보다 서울 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아 다수가 북한군여 부역하거나 학살 당했다. 주요 정치인들이나 애국지사·공직자·학자·문화예술인 등 다수의 요인들이 납북되는 비극적 상황도 벌어졌다.  

-군 당국이 왜 굳이 광진교의 폭파 시점을 조작했다고 판단하는가. 군이 그럴 이유나 필요성이 있는가.

▲군 당국은 6월 28일 단행한 한강인도교 폭파와 관련해 너무 일찍 차단해 엄청난 민간 피해를 유발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당시 국민 비난과 국회에서의 문책 주장이 일자 군은 1950년 9월 최창식 공병감을 총살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진교가 하루 먼저 폭파됐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란 점을 우려해 한강교 폭파를 서술한 뒤 '그로부터 1시간 30분 뒤인 04:00에 광진교도 폭파됐다'고 조작된 문구를 전쟁사에 올려 오늘까지 그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만든 것이다.

-현재 국방부나 군 당국의 입장은 어떤가.

▲광진교 관련 역사왜곡 상황에 1차적 책임이 있는 국방부와 육본 등 군 당국은 폭파시점 조작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육군은 수차례의 문제 제기에도 총장 명의 답변서를 통해 지적된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우리 측과의 접촉 자체를 외면하는 상황이다. 군과 국방부 모두 저런 소통불능 상태라고 생각하니 '우리 군과 국가 안보가 걱정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정부와 군 당국에 전하고 싶은 말씀은.

▲군은 이제라도 조작된 전사가 장기간 진실로 둔갑해온 상황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국민에게 솔직하고 용기 있게 해명하고 바로잡는 게 참된 군인의 자세다. 특히 전쟁사는 곧 국사(國史)의 중요한 부분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팩트'를 찾는데 군의 명예를 걸었으면 한다. 6.25 북괴 남침 76주년이 되는 올해를 기점으로 창군 이래 조작되거나 감춰진 전쟁사 전체를 바로잡는 대대적인 작업을 실시해 강군육성을 위한 새 초석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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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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