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가보훈부는 31일 김광수 대위와 밴 플리트 부자를 2026년 6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 김광수 대위는 1953년 북진능선 K고지를 사수하다 전사해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받았다
- 밴 플리트 장군은 미8군을 지휘해 전선을 북상시키고, 폭격기 조종사였던 외아들은 해주 상공에서 실종됐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밴 플리트 대장, 1951년 4월 미8군 지휘해 전선 38도선 북쪽 북상 성공
외아들 밴 플리트 2세, B-26 조종사로 1952년 4월 해주 인근 폭격 중 실종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가보훈부는 1953년 6월 정전협정 체결 직전 중공군 대규모 공세 속에서 강원도 김화지역 북진능선을 사수하고 전사한 김광수 육군 대위(1931~1953)를 2026년 6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함께 선정된 인물은 6·25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 육군 대장(1892~1992)과 B-26 폭격기 조종사로 자원 참전했다 실종된 그의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 공군 대위(1925~1952)다.
이번 선정은 정전 직전 중부전선 최종 방어선 사수와 미8군 작전 지휘, 그리고 부자(父子) 2세대에 걸친 유엔군 헌신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갑종장교 8기 출신, 오성산 K고지 탈환 후 전사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인 김광수 대위는 1951년 12월 육군 소위(갑종장교 제8기)로 임관, 1953년 3월 중위로 진급해 제9사단 제30연대 제11중대 선임장교에 보직되어 강원도 김화지역 북진능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6월 중공군은 정전협정 체결을 목전에 두고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제9사단이 담당하던 중부전선에 대규모 공세를 단행했다. 당시 김광수 대위는 선임장교 보직과 함께 화기 소대장직을 맡아 중부전선 오성산 근처 북진능선의 K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파상공격으로 중대의 주진지가 적에게 점령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김광수 대위의 지휘하에 K고지를 다시 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1953년 6월 적의 수류탄에 중상을 입었음에도 북진능선을 사수하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당시 계급 중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노르망디·벌지 전투 경력, 전선 38도선 북상 탁월한 성과 = 1892년 3월 미국 뉴저지주 출생의 밴 플리트 장군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벌지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다.
1951년 4월 11일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6·25전쟁에 참전, 한국 도착 후 승산이 없으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에도 승리를 향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중공군의 공세를 막고 여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키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1953년 미국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받았다.

◆B-26 폭격기 조종사 외아들, 27세에 해주 상공 실종 =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대위는 6·25전쟁에 자원하여 B-26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1952년 4월 4일 서해 연안 해주 인근에서 폭격 임무 중 실종되었다.
당시 27세였던 외아들의 실종 소식을 접한 이후에도 장군은 1953년 2월까지 제8군 사령관으로서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 중인 1951년 10월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로 다시 개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대한민국 정예 장교 양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1953년 2월 제8군 사령관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뒤인 1957년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설립하는 등 한·미 동맹에 크게 기여했으며, 오늘날 한·미 동맹 기여자에게 장군의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이 수여되고 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