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힘들었던 마음 '보상'
'금고어르신' 별명 얻어…애정 가득
"연금보다 크고 값진 보람 느껴"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돈, 외로움, 건강.'
노년기 3대 재앙이다. 원자력발전소 설계전문회사에서 35년간 프로젝트를 관리했던 김교상 씨(71)는 대구 청구로새마을금고 도어맨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김 씨는 '금고 어르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노년기 3대 재앙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23일 노인인력개발원의 '2025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수기 및 사진집'에 따르면, 김 어르신은 "(노인일자리를 통한 합격 전화는) 구직활동으로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단숨에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며 "은퇴 후 구직을 향한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고 했다.
김 씨는 35년 동안 원자력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2020년 6월 정년을 맞이했다. 은퇴 후 직후에는 세월의 흐름을 조용히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식지 않는 열정이 있었다.
김 씨는 지역 커뮤니티센터, 구청 체육시설 관리, 동네 어린이공원 시설관리 등 여러 구직활동에 도전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나이는 숫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대구 신천지킴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김 씨는 동료들과 대화하다가 우연히 노인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노인일자리를 안내하는 대구 수성시니어클럽 사회서비스형사업의 금융사업단에 서류를 제출했다.
하루가 일 년 같았던 한 달. 시니어클럽 사업담당자로부터 노년 일자리에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 동안 청구로새마을금고 본점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직활동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단숨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많은 좌절과 눈물 끝에 얻게 된 일자리는 은퇴 후 구직을 향한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청구로새마을금고 본점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인생 2막 무대 위에 첫발을 내디딘다는 생각에 김 씨의 기분은 따사로운 햇살만큼 포근했다. 업무를 총괄하는 전무님 이하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수요처 담당자로부터 간단한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왼쪽 가슴에 반짝이는 '친절 안내' 배지를 달고 감청색 전용 정장을 입은 채 바로 실무에 투입됐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앞섰다. '어서 오십시오'라고 하면서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기어들어 갈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특히 젊은 사람이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를 하면서 친절을 베풀지?'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 때는 속도 상했다. 일부 고객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관심이 없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아니면 '문 열어주시지 않아도 되는데'하면서 쑥스러워했다.
걱정도 잠시였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김 씨의 머리를 스쳤다. 전자 서류에 서명해야 하는 어르신을 돕고 휠체어를 밀어드리면서 더 적극적으로 고객을 응대했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금고 어르신'이라는 별명이 직원들과 고객들 사이에서 생겼다.
김 씨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저를 이 공간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며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데 애칭까지 생기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 이름 속에는 내가 걸어온 시간과 나를 믿어주는 이들의 애정이 담겨 있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며 "새마을금고는 단순한 직장이 아닌 사람들과 연결되는 따뜻한 공간이고 '금고 어르신'으로 불리는 삶은 노년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새마을금고 안내 업무는 단지 고객을 맞이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접점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안내하고 도와준 덕분에 누군가는 마음 편히 무사히 업무를 마치고, 누군가는 내 미소에 잠시 일상의 피로를 내려놓았다.
김 씨는 노인 일자리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얻었다고 했다. 집에서 왕복 40분, 6,000보 걸음, 200칼로리(㎉) 소모. '걷기'가 주는 건강한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손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용돈을 주면서 행복을 느꼈다. 아직 가족에게 가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 살 수 있는 여유가 감사했다.
김 씨는 "노인 일자리를 통해 노년기 3대 재앙에서 벗어나 보람차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며 "그 감정은 어떤 연금보다 크고 값진 보람 그 자체"라고 했다. 그의 인생 2막은 이제 막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노인일자리는 보건복지부와 노인인력개발원이 어르신들이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소득 공백을 메우고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다. 공익활동형, 역량활용형, 시장형으로 나뉘어 최대 월 90만원까지 벌 수 있다. 거주지 주민센터나 노인복지관, 또는 온라인 '노인일자리 여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sdk199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