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폴란드가 무기 도입과 군사력 강화 방안을 놓고 친(親)유럽연합(EU) 성향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 진영과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 진영이 정면 충돌하면서 국가안보 전략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투스크 총리 측은 EU가 '유럽 재무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무기 공동구매 대출 지원(세이프·SAFE)' 프로젝트를 활용해 군사력을 강화하려 했는데,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EU에 대한 의존이 심화된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EU 대출은 주권 침해"라며 "이자가 없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대안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현지 P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투스크 총리 정부와 의회가 지난달 27일 의결한 'EU 세이프 대출 활용을 위한 이행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법안에는 폴란드가 EU 세이프 프로젝트를 통해 437억 유로(약 75조7000억원)를 연 3.17% 이자 조건으로 대출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환 기간은 2070년까지이다.
폴란드 대통령은 의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31일 이내에 서명,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소 회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EU의 세이프 프로젝트는 무기 부품의 65% 이상이 유럽산이어야 한다는 등의 제약이 있어 핵심 동맹국인 미국·한국 등의 첨단 무기를 살 수 없고, 이자율도 높아 지금의 10대들에게 2070년까지 갚아야 막대한 빚을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자신이 폴란드 중앙은행 측과 상의해 이자율이 0%인 '폴란드 세이프'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EU 대출 규모와 비슷한 수준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했다.
EU 세이프 프로젝트를 둘러싼 폴란드 정치권의 갈등은 지난해 폴란드 대선 결과에 따른 필연적 후유증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작년 5~6월 실시된 폴란드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나브로츠키 후보는 50.89%를 얻어 49.11%를 득표한 현 집권여당 시민연합(KO) 소속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를 눌렀다.
국가기억연구소(IPN) 원장을 역임한 나브로츠키는 국가민족주의 이념을 가진 역사학자로 반EU 성향의 민족주의 정당인 제1 야당 법과정의당(PiS)의 강력한 지지·지원을 받았다.
그는 EU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게 된다면 정부 재정을 비롯해 국정 전반과 국가 시스템이 EU에 더욱 종속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제안한 '폴란드판 세이프'가 구체성을 결여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는 이날 437억 유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담 글라핀스키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정부에 자금을 대주기 위해 중앙은행의 준비금을 쓰거나 국채를 매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중앙은행이 수익을 창출해 정부에 돈을 주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폴란드 정부는 "지난 3년 간 한 푼도 중앙은행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이익이 날 경우 95%를 정부 재정에 넘기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 통신은 폴란드 중앙은행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금을 사고 팔아 수익을 내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 중앙은행의 금보유량은 올해 1월 현재 543.3톤(t)이다. 전 세계 13위에 해당한다. 지난 2018년에 비해 4배가 넘는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