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불허'에 수사·공판팀 '항소' 의지 꺾여
법조계 "말도 안 되는 일…검찰 스스로 덮어준 것"
불이익변경금지원칙 발목…항소심에선 1심 형량이 최대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 특혜 사건' 항소 포기 여파로 정진우(53·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항소를 막은 검찰 지휘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지검은 8일 "정 지검장이 금일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중앙지검이 정 지검장의 구체적 사직 사유를 밝히진 않았으나 이번 항소 포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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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사진=뉴스핌DB] |
애초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은 만장일치로 항소 제기를 결정했으며,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 등 대검 지휘부 역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수사·공판팀은 법률적 쟁점들은 물론 일부 사실오인, 양형부당에 대한 상급심의 추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검찰청과 중앙지검 지휘부에 항소예정 보고 등 내부 결재 절차를 이행했다는 설명했다.
수사·공판팀은 "항소장 제출만 남겨둔 상황이었으나 전날 오후 무렵 대검과 중앙지검 지휘부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사에 항소장 제출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며 "항소장 제출 시한이 임박할 때까지 어떤 설명이나 서면 등을 통한 공식 지시 없이 그저 기다려보라고만 하다가 자정이 임박한 시점에 '항소 금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유지를 맡은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는 이날 새벽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검찰의 항소 포기에 대한 구체적 경위를 공개했다.
강 검사는 "대검이 법무부에 항소 여부를 승인받기 위해 보고했고, 검찰과가 법무부 장관에게 항소 필요성을 보고했으나 장관과 차관이 이를 반대했다고 들었다"고 적었다.
구체적으로 수사·공판팀은 지난 6일 저녁 7시30분께 회의 과정에서 '대검 반부패부장이 (항소를) 재검토 해보라고 하면서 불허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이에 중앙지검 지휘부를 통해 대검에 항의했으나 지휘부는 항소를 포기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에 수사팀은 전결권이 있는 정 지검장의 판단하에 항소장을 제출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하지만 이준호 중앙지검 4차장검사는 대검과 검사장이 모두 불허해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법무부는 주요 피고인들이 검찰 구형의 절반이 넘는 중형을 선고받았고 법리 적용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상급 기관인 법무부의 '항소 반대' 뜻을 꺾지 못하고 검찰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피고인들만 항소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68조(불이익변경의 금지)는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과 피고인을 위하여 항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이처럼 피고인만 항소하는 경우 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항소심은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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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 [사진=뉴스핌DB] |
검찰이 대장동 사건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서 주요 피고인의 선고 형량이 구형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항소를 포기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 지휘부를 향한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청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무죄 부분이 있고 중형이 선고된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윗선 개입 여부를 떠나 지휘부가 '나는 정권 편입니다'라고 하면서 알아서 덮어주는 것 아닌가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지가 있었다면 전결로 처리했어야 한다. 검찰 스스로가 없어져도 된다는 존재가치를 보여준 꼴"이라고 덧붙였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불이익변경금지원칙 때문이라도 검찰은 항소해야 했다"며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주요 피고인들의 죄질이 나빠지면 구형을 높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더 높은 형이 선고 안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명백히 무죄 부분이 잘못됐다거나 검찰의 기소가 잘못된 게 아닌 이상 항소하는 것이 맞고, 지휘부도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했어야 한다"며 "결국 이번 항소 포기로 피고인만 유리해졌다"고 부연했다.
한편 검찰 안팎에서는 정 지검장을 시작으로 이번 항소 포기에 관여한 지휘부나 수사·공판팀 등 일선 검사들의 사의 표명이나 반발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hyun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