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진보 진영 연대·측근 사면 분위기 조성 관측
정 대표 독주 우려에 與서 뒤늦게 견제설 나와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광복절 특별사면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여권에서 나와 주목된다. 견제설의 핵심은 사면을 통해 범여권의 유력 주자인 조 전 대표를 띄워 정 대표의 독주를 막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어불성설"이라고 이를 정면 반박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악의적인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고 일부 언론을 비판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여권 내 잠복했던 견제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 |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왼쪽)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11.14 leehs@newspim.com |
이런 상황에서 사면복권된 조 전 대표가 "내년 6월 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서면서 두 사람간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 제기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문제와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두 사람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 대표는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며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럼 박찬대가 당 대표가 됐으면 조국은 사면복권되지 않았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8월 2일 전당대회에서 정청래든 박찬대든 둘 중 하나는 당 대표로 뽑히게 돼 있었다"며 "8월 15일 조국 사면이 예정돼 있었다면, 누가 뽑히는 것에 따라 조국 사면은 될 수도 있었고, 안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사후 알리바이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명청시대'라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악의적인 갈라치기"라며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조 전 대표를 사면했다는 주장과 이 대통령이 박 의원을 (당 대표로) 밀었으니, 정 대표가 이 대통령과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견제설을 완벽하게 반박할 근거도 없다. 견제설이 나올만한 정치 상황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표 경선이 시작될 당시 당내에서는 명심설이 파다했고, 이 대통령이 내심 박 의원을 선호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했다. 정 대표의 강성 이미지와 스타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물론 애당초 사면할 당시 견제설에 힘이 실리지 않은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보다는 다른 정치적 해석에 힘이 실렸다. 우선 범여권의 분열을 차단해 범진보 진영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여권 내에서 사면 목소리가 컸고, 지지층의 80% 이상이 사면에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국 사면 유보가 가져올 수 있는 진보 진영의 분열을 막아 든든한 지지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야당이 줄곧 주장해온 측근 사면을 위한 분위기 조성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에 "대북 송금 뇌물 사건 관련해 이화영이 이 대통령에 대해 입을 열면 이 정권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화영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권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라며 "무리한 사면은 이화영 사면을 위해 사전에 뭐든 막 해도 되는 분위기 잡는 빌드업이자 전초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7년 8개월형을 확정받았다. 한 전 대표는 "유죄 증거가 넘치는 이화영을 재판에서 무죄로 해 줄 방법은 없으니 이화영이 감옥에서 나올 방법은 이 대통령이 사면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사면에 대해 "이 대통령 측근은 아무도 없다"고 유독 강조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 전 부지사 등 측근 사면에 대해 여권 핵심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 대표 견제설은 뒤늦게 불거졌다. 정 대표는 한번 마음 먹으면 타협보다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초강성 스타일이다. 정 대표 스타일상 1년짜리 대표에 머물지 않고 내년 8월 대표 연임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그 여세를 몰아 대선을 준비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 대표가 당 장악력을 높이며 독주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대중성이 높은 조 전 대표가 카드가 될 수 있다. 정 대표 견제설의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대표는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그는 이날 공개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으로 돌아왔고, 내년 6월 국민으로부터 한 번 더 심판을 받겠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에 대해 "내부 논의도 해야 하고, 합당이 최선인지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은 당을 재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어떤 것이 진영 전체에 도움이 될지 열린 상태로 고민하고 당 내 의견을 모아보겠다"고 했다. 일단 선을 그었지만 가능성은 열어놓은 것이다.
정 대표와 조 전 대표는 당장은 여러 현안에 대한 공조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대표가 10월 말이나 11월 대표로 복귀하면 협력과 미묘한 경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조 전 대표의 거취가 걸린 내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