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피의자신문조서 등 대가로 2억원 수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권한 확대 범행에 이용"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수사 기록 조작 등 사건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수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현직 경찰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정모(52·여) 경위를 구속기소하고, 뇌물공여 혐의로 대출중개업자 김모(43·남)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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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모 경위와 김모 씨 대화 내용. [제공=서울중앙지검] |
김씨와 정 경위는 2020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수사 무마 등 명목으로 22회에 걸쳐 2억1120만원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정 경위는 2020년 7월 수사 중이던 김씨의 사기 사건 3건의 고소장과 고소인 진술조서 등 사건기록 일체를 김씨에게 제공하고, 같은 해 10월 김씨가 경찰서에 출석한 사실이 없음에도 마치 김씨가 출석해 조사를 받은 것처럼 허위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기록에 편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그는 같은 해 11월 김씨의 사기 사건 기록 중 영장집행 결과 자료 등 서류를 임의로 빼내 폐기했으며, 2022년 1월 김씨의 사기 사건 기록에서 고소장을 빼내 본인이 임의로 작성한 고소장으로 교체하고 계좌 거래내역 등을 빼낸 후 사건 기록을 약 3년간 개인 캐비닛에 은닉한 혐의도 있다.
아울러 검찰은 정 경위가 같은 해 5월 별건 구속영장으로 수배돼 도주 중이던 김씨에게 "외국으로 도망가라"며 도피 자금으로 미화3850달러(약 500만원)를 교부하고, 지난해 9월에는 김씨가 별건으로 구속된 사실을 통보받고도 그에 대한 수사중지 사건 4건을 수사하지 않고 방치한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정 경위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사법경찰관에게 수사종결권이 부여되는 등 권한이 확대된 점을 범행에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 피고인은 '사건 모아서 불기소 해주겠다', '구속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노골적
으로 뇌물을 요구했다"며 "본건 범행은 수사권 조정 전 정 경위가 김씨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기 사건을 고등검찰청의 재기수사명령에 따라 다시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정 경위가 김씨와 관련해 처리한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확인한 결과, 정 경위가 김씨로 하여금 고소인에게 돈을 일부 변제하게 한 후 고소취소장을 받거나 허위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첨부해 무혐의 종결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들에 대해서도 재수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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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건 및 기록 관리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경위는 경찰서의 내부 결재는 통상 전산상으로만 이뤄져 자신의 서류 조작이 적발될 우려가 적지만, 검찰청에 조작된 기록을 송부하면 발각될 우려가 있어 차마 보내지 못했고 아무도 기록을 찾지 않아 3년간 갖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경위는 전산상 기록을 검찰에 송부한 것으로 처리했는데, 경찰에서도 본건 수사가 이뤄지기까지 기록의 소재를 3년 이상 알지 못했고 검찰도 사건이 접수된 적이 없어 사건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서 내부에서는 담당 경찰관에게 요청하면 특별한 제약 없이 사건 재배당이 가능해 경찰관 뜻대로 특정 사건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지인의 아들이 고소인인 사건, 평소 알고 있던 사채업자가 피의자인 사건 등 정당한 이유 없이 재배당을 요청하고 이뤄진 사례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검찰 관계자는 "본건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경찰에 통보하고, 정 경위가 불송치 결정한 사건 재수사 등 후속 조치 추진할 예정"이라며 "검찰은 앞으로도 수사절차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패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