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상륙한 K소주, '숙취없는 부드러운 술'로 통하네
아이유·박보검처럼 삼겹살에 한 잔...'소주+모구모구' 등 필리핀식 조합 눈길
가족 구성원이 20명이나..."할머니·할아버지는 딸기에이슬 선호"
[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소주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숙취가 없어서 좋아요."
필리핀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40도 안팎의 고도주인 브랜디, 진을 주로 마시는 이 나라 사람들에겐 소주가 '부드러운 술'로 통한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중심상업지구 마카티에 위치한 창고형 할인마트 S&R멤버십쇼핑에서 만난 직장인 킴(Kim·30)은 "참이슬 후레쉬를 요구르트와 섞어서 즐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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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 전미옥 기자 = 지난 22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S&R멤버십쇼핑에서 만난 직장인 킴(Kim)이 소주를 구매하고 있다. 2025.05.22romeok@newspim.com |
가족들을 위한 저녁 장을 보러 왔다는 그녀의 카트에는 '참이슬 후레쉬'와 과일소주 '딸기의 이슬' 등 약 20여병의 소주가 담겨있었다. 카트에는 비비고 만두(CJ제일제당), 제로 초코볼(롯데웰푸드) 등 한국 식품도 눈에 띄었다. 필리핀의 돼지요리인 시식(Sisig)과 함께 소주를 곁들인다는 계획이다. 킴의 가족 구성원은 총 20명이다. 이날 장바구니 가득 담긴 식재료가 딱 하루 저녁거리라는 설명이다.
킴은 "최근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영어제목·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을 감명 깊게 봤다"며 참이슬 패키지에 그려진 아이유를 가리켰다. 아이유는 참이슬의 글로벌 모델로 활동 중이다. 킴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소주를 알게 됐다"며 "베트남 술과 달리 소주는 부드럽고 숙취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참이슬 후레쉬를 주로 마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딸기의 이슬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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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 직장인 킴(Kim)의 장바구니. 참이슬후레쉬와 딸기에이슬, 그리고 비비고 만두, 제로 초코볼 등 한국 식품이 담겨있다. 2025.05.27 romeok@newspim.com |
인근에 위치한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퓨어골드에서 만난 20대 고객 사이린(Cyrin·23)도 "소주는 편안하고 깔끔한 느낌"이라고 했다. 사이린은 "필리핀 증류주는 보통 알코올 도수 30~40도가 많고 숙취가 있다"며 "반면 소주는 깔라만시 주스나 맥주와 섞어서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관련해 깔라만시는 이른바 필리핀 레몬이라 불리는 필리핀 특산물 중 하나다.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 익숙한 문화인 셈이다.
사이린은 자신만의 소주 음용법으로 "음료수 '모구모구'와 참이슬후레쉬를 섞어 마신다"며 "진라면, 떡볶이 등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소개했다. 모구모구는 코코넛이 들어있는 과일맛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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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 마트에 진열된 청포도에이슬 등 소주 제품들. 2025.05.22 romeok@newspim.com |
필리핀 현지에서 '소주'의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이다. '쏘나이스', '친구' 등 현지 업체의 미투 제품이나 한국에서 직접 수입해 판매하는 제품도 있을 정도다. 롯데칠성음료의 새로, 순하리 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진로(JINRO)는 필리핀 소주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관세청 무역 통계 기준의 필리핀 소주 수출 총액과 하이트진로의 자체 수출 실적을 비교한 결과 약 67%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
현지에서 일반 소주인 '참이슬 후레쉬'가 과일소주 매출을 넘어선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동남아 국가에서 일반소주가 과일수주보다 더 많이 팔리는 사례는 필리핀이 유일하다.
5년째 퓨어골드와 세븐일레븐 채널에 제품을 공급해온 하이트진로 필리핀법인 담당자 마리 필 레예스 MD는 "5년 전만해도 과일소주가 인기가 많았지만 현재는 일반소주가 더 많이 팔린다"며 "(담당 거래처 기준으로)딸기에이슬이 30%, 참이슬 후레쉬 55%, 기타 과일소주가 15% 정도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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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 필리핀 현지 마트에서 진행하는 소주 시음행사에 참여하는 고객들. 2025.05.22 romeok@newspim.com |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에선 최근 진로 소주의 매출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마리 필 레예스는 "담당 지역에서 올해 진로 소주 매출 신장률로 50~55%를 예상하고 있다"며 "20~30대 고객들이 한국 드라마 영향으로 소주를 접한다고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한국 소주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확산한 저도주 열풍이 필리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30~40도 가량의 고도주를 주로 마시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16도의 '참이슬 후레쉬'가 가벼운 대표 저도주로 인식된다. 한국에선 도수가 높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참이슬 빨간뚜껑(참이슬 오리지널)'도 현지에선 도수 20도의 마일드한 술이 됐다. 현지에서 빨간뚜껑 제품은 '진로(Jinro)'로 판매 중이다.
35년째 진로 소주를 전문으로 취급한 현지 주류 유통업체 K&L을 운영하는 강정희 대표는 "초기에는 한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로컬 시장으로 확장됐다"며 "코로나19 락다운 시기에 한국 드라마 영향으로 삼겹살과 소주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인지도가 크기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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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 주류 유통업체 K&L을 운영하는 강정희 대표가 진로 소주 유통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05.22 romeok@newspim.com |
현재 필리핀 전역에 진로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S&R, 퓨어골드 등 대형마트와 세븐일레븐, 엉클존스 등 주요 편의점에도 모두 입점 및 판매 중이다. 강 대표는 "과거와 비교하면 소주 취급 물량 자체가 많이 늘었고 이제 현지인들이 '후레쉬 달라', '클래식 달라'고 제품을 지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2030년까지 해외 소주 매출 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이 중 필리핀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식당, 주점 등 유흥시장 공략도 본격화한다. 이미 현지에선 70여개 매장을 보유한 삼겹살라맛 등 대형 한식 프랜차이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국동균 필리핀 법인장은 "현재 진로 제품은 필리핀 대부분의 가정 채널에 진열돼 있지만, 진정한 대중화는 현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진로를 찾아 구매하는 단계에 도달해야 완성된다"며 "현지 식당 등 로컬 채널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주가 소비될 수 있도록 유통과 브랜드 경험을 더욱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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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뉴스핌] 전미옥 기자 = 필리핀의 대형 한식프랜차이즈인 삼겹살라맛에서 20대 고객들이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고 있다. 2025.05.22 romeok@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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