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재초환 폐지 밀었으나 현재 '올스톱'
재개발·재건축 특례법도 통과 여부 불투명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주택공급 확대 일환으로 추진되던 정비사업 규제완화 법안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조기 대선까지의 공백을 넘어 정권이 바뀌는 경우 부동산 정책 또한 급격한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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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선고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정비사업 관련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2024.06.12 pangbin@newspim.com |
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정비사업 활성화 관련 법안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법은 지난해 11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여야 반대로 인해 계속 심사 상태다.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정국 정상화까지 우선 대기하자는 뜻으로 본회의 행을 미뤘으나, 탄핵 선고로 폐지 자체가 없던 일로 돌아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재초환은 재건축사업을 통해 조합원이 얻은 이익에서 가격 상승분과 건축비 등을 뺀 초과이익이 8000만원 이상일 경우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계속된 유예와 시행의 반복으로 지금껏 실제 부담금을 지급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2023년 개정된 재초환법은 지난해 3월 27일 재시행됐다. 재건축부담금이 면제되는 초과이익(면제금액)이 3000만원에서 8000만원, 부과율이 결정되는 부과구간의 단위는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각각 확대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재건축 부담금 부과 예상 단지는 전국 68개, 평균 부과 예상 금액은 1억500만원으로 집계됐다. 예상 단지가 31개로 가장 많은 서울의 평균 부과 예상 금액은 약 1억6000만원 수준이다.
지난달 23일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재초환 요청에 관한 청원'이 이날 오전 기준 2만여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폐지 필요성이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청원이 공개된 후 30일 이내에 5만 명이 동의하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청원인 A씨는 "재초환은 주택가격의 안정과 사회적 형평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와 달리 실거주자에게 불명확한 산정 기준으로 분담금을 부과하는 역차별 법안"이라며 "시행 시 과도한 부담금으로 인해 전국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고, 실거주자인 원주민이 입주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초환의 폐지에는 공감하나 시기 산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건축 초과이익은 사업종료 시점에 예상되는 주택가격을 전제로 산정되는 미실현 이익이라 부담금 산정 자체가 어렵다"며 "재개발 사업엔 적용되지 않으면서 재건축에만 과도한 공적 규제를 가한다는 점에서 평등 원칙 위배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초환은 본래 재건축을 억제하려 만든 제도"라며 "재초환이 도입된 시점과 지금의 사회·환경적 요건이 크게 다르다 보니 민간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는 현재로선 장기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역시 재초환의 구조적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현 부동산 시장에서 재초환은 맞지 않는 옷"이라며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별도의 보완 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이 지난해 재시행 돼 아직 실제 부담금 부과 사례도 나오지 않은 재초환법을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만큼, 대선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 폐지는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의 2025년 주요 현안에서 재초환 폐지가 빠진 것도 이러한 예측의 근거가 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게 관련 논의를 멈추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탄핵에 따른 기류 변화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국회에 계류된 또 다른 정비사업 활성화 관련 법인 '재건축·재개발 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재개발·재건축 특례법)도 통과를 기약할 수 없다.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역세권 등 일부 택지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3배까지 높여 공사비 상승 등으로 저하된 사업성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외에 재건축 조합 설립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 요건을 70%까지 낮춰 사업 착수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개정안에 명시됐다. 이를 통해 정비사업 기간을 최대 3년까지 단축하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9월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풀어 개발 대상 택지를 늘리겠다는 정책도 일시정지될 수 있다. 정부는 올 2월 비수도권 지역에 국가·지역전략사업 15곳을 조성하기 위해 2008년 이후 17년 만에 해제 가능한 그린벨트 면적을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수도권에선 주택 공급 확충을 위해 서울 서리풀지구와 고양 대곡역세권·의정부 용현지구는 98% 이상이 그린벨트 지역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현재 전국 주택 시황이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수요를 강력하게 차단하는 정책을 펼치지는 않겠지만, 정부에서 진행하던 정비사업 관련 법안은 무산되지 않을까 한다"며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전 정권에서 시행하다가 답보 상태로 남은 공시지가 현실화 방안 등이 재추진되며 보유세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공급 확대 법안 중 1기 신도시 재건축은 그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미 선도지구까지 선정한 상황에서 이를 뒤집을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돼서다. 2023년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 통과 당시 여야 이견이 없었던 만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탄핵과 대선 이슈가 겹쳐 1기 신도시 재건축의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 목표 달성엔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분당만 1만 가구가 넘는 선도지구가 내후년 착공하려면 지금 관리처분계획이 나고 이주를 시작해야 한다"며 "어차피 재건축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사업임을 모두 알고 있는 만큼 모범적 선례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이주 계획부터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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