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트로도 온몸의 털을 숨길 수 없는 괴물 아찰
아찰로 변하지 않기 위해 '종평'에 목숨 거는 아이들
2099년 미래의 아찰라 공화국 무대...입시공화국 풍자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오수완 장편소설 '아찰란 피크닉'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됐다.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을 한 편의 우화로 풍자한 소설이다. 2099년 이후 미래의 어느 시점이 소설의 배경이다. 그곳에 몬스터 타운인 아찰의 거리와 상류층만이 거주 자격을 얻는 헤임으로 양분된 도시국가 아찰라 공화국이 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편소설 '아찰란 피크닉'. [사진 = 민음사 제공] 2024.09.11 oks34@newspim.com |
'아찰란 피크닉'은 이 가상 도시의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펼치는 인생을 건 입시형 탈출기다. 먼지와 어둠으로 채워진 지옥 아찰이 아닌 쾌적한 낙원 헤임에서 살기 위해 종평(종합 적합도 평가) 1등급을 받으려 목숨을 거는 아이들의 모습은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
공화국에 사는 일곱명의 소년 소녀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과 상황, 성적과 꿈을 갖고 있다. 마음은 여리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에는 가차없는 종평 3등 아란, 공부보단 소설에 더 빠져 있는 요제, 부모님의 감시 아래 몰래몰래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네즈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한다. 완벽한 스펙의 종평 1등 디본, 부모님이 아찰이 된 후 동생들을 돌보는 체육 특기생 카렐,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어딘가가 늘 불안해 보이는 종평 2등 히에, 자신이 아찰로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투도 있다.
소설은 종평 마지막 관문인 피크닉이 열리기까지 열 달의 시간 동안 서서히 고조되고 뒤틀리며 극단적인 감정에 몰리는 아이들의 심리적 스펙트럼을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유치원부터 스펙을 쌓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그린다면 이 소설에서와 같은 디스토피아가 완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십 대들의 질투와 불안, 우정과 열정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무채색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무슨 색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폭죽 같다.
어두운 밤하늘을 수 놓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어른들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며 경쟁에 과몰입해 있지만, 이들은 아직 어른은 아닌 탓이다. '아찰란 피크닉'은 아직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아이들을 통해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욕망들을 드러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장을 덮으면 거대한 어둠이 밀려오는 느낌과 새벽의 여명이 동시에 느껴지는 소설이다. 값 1만5천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