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 위해 '원정시험'도 불사…이유는 임금·노동환경
해외 유출로 국내 의료공백 우려..."빠른 대책 수립 필요"
[서울=뉴스핌] 송현도 인턴기자 = "간호사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권리가 존중받지 못한 탓이에요."
간호사 백소연(31)씨는 4년간 국내 대형병원에서 근무한 뒤 2020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셸이라는 이름으로 조지아주에 있는 한 대형병원 항암 주사 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간호사 엑소더스] 글싣는 순서
1. "탈출해야 할 연옥"… 간호사 25% 현장 떠나
2. 현장이 '연옥'된 배경…업무 떠넘김·태움
3. 해외 원정 시험도 불사…대책 필요
[서울=뉴스핌] 송현도 인턴기자 = 간호사 백소연(31)씨는 4년간 국내 대형병원에서 근무한 뒤 2020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셸이라는 이름으로 조지아주에 있는 한 대형병원 항암 주사 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2023.08.17 dosong@newspim.com |
"확실히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힌 백씨는 "제 프리셉터(사수)는 30대 후반까지 트럭 정비사를 했었는데 벌써 12년 차 간호사다. 그뿐만 아니라 쉽게 취업과 부서 이동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커리어를 키우고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확실하다"며 자신 역시 전문간호사(NP)가 되기 위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씨가 꼽은 미국 임상의 또 다른 장점은 간호사의 업무 처우다. "병원 내에서 다른 직군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면서 상호 존중하는 등 간호사에 대한 직업적 대우와 사회적 인식이 좋다는 점 역시 이곳 생활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백씨는 국내 임상 경험에 큰 불만은 없었다고 회고하면서도 "한국 임상은 화장실 제때 못 가고 밥 못 먹으며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태반이다. 아파도 눈치를 봐야 하고 혼자 12명의 환자를 보면서 뇌가 정말 12개로 쪼개지는 바쁨을 경험한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도저히 1인분의 일이 아니다'라고 느낄 만큼 업무량이 많다고 느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임상 환경에 대해서는 "캘리포니아의 경우 부서에 따라 환자 대 간호사의 비율을 법으로 정해둬 간호사의 업무 과다 방지책을 마련했으며 또한 미국 간호계는 전반적으로 식콜(sick call) 제도에 따라 간호 충원 인력팀이 상시 배치돼 있다. 덕분에 일선 간호사들이 병동 눈치를 보지 않고 업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 해외 취업 위해 '원정시험'도 불사…이유는 임금·노동환경
최근 국내 의료계를 탈임상한 간호사들이 해외 간호계로 진출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각종 간호사 전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지에는 국제 간호 면허 자격증 엔클렉스(NCLEX)관련 전문 스터디 모집글과 노하우 전수글이 가득하다. 해외로 진출한 간호사들에 의해 한국보다 높은 연봉과 업무 처우를 자랑하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해외에만 시험장이 열려있는 탓에 자격증 취득 과정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수험생은 꾸준히 생긴다. 설립된 지 30여년이 된 한 엔클렉스 전문 학원은 "수강을 원하는 신청은 계속 접수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사진=뉴스핌DB] |
간호사들은 시험을 치기 위해 휴가를 써서라도 '해외원정'을 나가는 상황이다. 백씨는 "해외에 나가서 시험 본다는 거 자체가 비용적으로나, 업무 여건상으로나 부담이 정말 크다"며 "한 번에 못 붙으면 휴가를 다시 써서 허락받고 다시 돈 써서 비행기 호텔 다 예약하고 공부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비용부담이 큰데도 일부 간호사들이 해외 간호계 취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 의료 체계에 한계를 느끼고 조금 더 복지 제도와 급여 처우가 나은 해외 의료 체계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OECD보건통계에 따르면 2022년 조사 기준 국내 간호사 임금 소득은 5만2766US$PPP으로 해당 조사에서 간신히 평균을 넘겼지만 미국(8만630US$PPP), 호주(7만297US$PPP)보다는 아직 낮은 상태였다.
반면 병원 병상 수는 평균 12.7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편이었다. 임금은 평범한 반면 간호사 한명이 맡아야 하는 병상 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은 것이다.
국내외 임상 환경에 미련이 없는 간호사들에게 해외 진출은 높은 임금과 상대적으로 원만한 임상 현장이 마련된 길이다. 조만간 엔클렉스 시험을 칠 예정이라고 밝힌 간호사 김모(26)씨는 "국내 임상 현장은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미래가 없는 거 같아 탈임상 후 미국으로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국내 시험장이 없는 관계로 가까운 일본의 오사카에 갈 생각으로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간호사 해외 유출로 국내 의료공백 우려..."빠른 정책 수립 필요"
전문가들은 국내 간호사의 해외 진출 현상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 다년간의 교육을 통해 양성한 고급 보건인력의 유출은 의료 공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돈을 들여서 키웠는데 왜 외국으로 가냐. 국가 자원을 통해 애써 키운 인재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선 간호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들어 눈에 띌 정도로 빠져나가는 추세"라며 "간호사 한명이 맡은 과도한 병상 수와 간호직역 외 업무수행 등이 국내 간호사들이 현재 임상에 회의를 느끼는 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태의 간호 관행을 타파하고 혁신적인 현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을 역임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숙련되고 유능한 인력이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 보건의료 현장에서 일하게끔 해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결국에는 간호사의 노동시간과 전체적인 양을 덜어주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겠냐. 간호사 대비 환자 수를 1대 5로 맞추고 업무 노동 피로를 덜 수 있는 혁신 제도들에 대한 검토와 현실화가 병행해야 한다"며 "이제는 간호사 노동 현황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 논의는 지나갔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근거해 빠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