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장마로 꿉꿉한 날이라 소곱창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데 전에는 없던 걱정어린 '잔소리'를 들었다.
"발암물질 들어 있다는 데, 제로소주 마실거야?"
"그거 알아? 지금 굽고 있는 고기가 더 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14일에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2B)로 지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 걱정이 크다.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는 설탕과 달리 '0칼로리'여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이점에 제로콜라를 비롯 소주부터 닭가슴살·과자 등 각종 식품에 첨가되고 있다. 여러 인공감미료 중에서도 아스파탐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인의 '단맛'을 충족해왔다.
믿었던 아스파탐이 발암물질이라니 배신감마저 든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보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최원진 국제부 기자 |
아스파탐은 암을 유발할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는' 물질이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위험성이 아니라 물질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만 평가한다. 예를 들어 흔히 별똥별이라고 부르는 '유성(流星)'은 위험 요소다. 그러나 유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우리 목숨을 앗아갈 위험성은 극히 낮다.
IARC는 발암 위험 요소를 총 4가지 그룹으로 분류한다. ▲1. 암 유발성(Carcinogenic to humans) ▲ 2A. 아마도(Probably) 유발할 것으로 여겨짐 ▲2B. 암을 유발할 수(Possibly) 있음 ▲ 암 유발 여부 미분류(Not Classifiable) 등이다.
1군은 인체 발암 관련 연구 논문이 많아 그 연관성이 거의 확실시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흡연과 간접흡연, 대기 오염, 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시지, 햄과 같은 가공육도 1군 발암물질이다.
반면 아스파탐이 분류될 2B군은 인체 연구 논문이 제한적이고 동물 임상실험 데이터조차 부족해 그 연관성을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김치, 장아찌 등 절인 채소류가 여기에 속한다. 소고기와 같은 붉은 육류와 65도 이상 끓인 물은 이보다 한 등급 높은 2A군이다.
비록 아스파탐이 2B군에 분류된다고 해도 인체 위험성은 결국 섭취하는 양과 그 기간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소비자와 업계가 주목해야 할 정보는 발암 위험 요소 분류가 아니라 WH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합동의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가 같은 날에 발표할 일일허용섭취량(ADI)이다.
ADI는 정의상 인간이 남은 일생 동안 매일 섭취해도 인체에 영향이 없는 기준 양이다. 지난 1974년에 최초로 사용을 승인해 현재까지 100여개의 관련 논문을 연구해온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스파탐 ADI를 체중 1㎏당 50㎎으로 규정한다. 체중이 68㎏라고 가정했을 때 죽을 때까지 매일 약 3400㎎의 아스파탐을 먹어도 좋다는 뜻인데 이는 355㎖ 짜리 다이어트 콜라를 매일 17캔을 마셔도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말로 17캔 이상의 제로 콜라를 남은 일생 동안 매일 마셔야 발암 위험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섭취할 소비자가 있을까.
JECFA는 아스파탐 ADI를 FDA보다 낮은 체중 1㎏당 40㎎으로 설정하고 있다. 위원회가 이번에 ADI를 낮출 가능성이 있지만 업계와 소비자가 그 기준에 맞게 섭취하면 그만이다. 알콜과 붉은 육류, 김치가 발암 위험 요소가 있다고 해서 안 먹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영국 잉글랜드 레딩 대학교의 건터 쿤레 식품학과 교수는 "1군인 흡연의 경우 최대한 멀리 하는 것이 맞지만 육류와 술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지 않느냐"면서 "아스파탐의 2B군 분류는 소비자와 업계에 큰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해외 언론들은 전문가의 시각에서 '아스파탐의 발암 위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는 덕분인지 미국 등 해외에서는 큰 동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걱정어린 시선이 많은 듯 하다. 언론사들의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 때문인 것 같다. '패닉' '쇼크' '업계 비상'과 같은 다급한 상황임을 강조하는 제목의 기사는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
실제로 제로소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지인은 기사 제목을 접해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했다.
우리나라 업계는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우리는 아스파탐 안 쓴다"고 선긋기에 나섰다. 한 막걸리 업체는 설탕, 감미료 둘 다 넣지 않은 막걸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마치 과거 사카린과 MSG 등 인공감미료가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처럼 지금의 아스파탐도 억울할지 모른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