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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망사용료' CP와 ISP의 복잡한 속내

기사입력 : 2022년10월26일 09:13

최종수정 : 2022년10월26일 09:13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 수도권 고속도로에 해외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분기 기준 전체 고속도로 통행량의 34% 정도가 마트 이용객이다. 도로공사는 도로를 넓히고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며 마트에 고객 1명 당 도로 이용료를 내라고 요구한다. 마트 측은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톨비를 내지 않느냐. 모든 운전자가 우리 마트에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도로공사 측은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 도로를 보수할 일이 많고 확장 공사도 해야 하는데 고속도로 이용자의 상당수가 너희 마트 고객이어서 차가 막힌다"는 입장이다.

# 건물 최상층에 50평 규모의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이 입점했다. 프랜차이즈 점주는 매장 규모 만큼의 월 임대료를 낸다. 어느 날 건물주는 손님들이 오가면서 엘리베이터와 공용 화장실 이용량이 늘었다며 손님 1명 당 공용시설 이용료를 낼 것을 요구한다. 프랜차이즈 측은 건물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매장 안에 화장실을 설치한다. 그러나 건물주는 엘리베이터를 추가 설치할 일이 생길 수 있고 "입주한 다른 상점들은 내는데 왜 너희만 안 내느냐"고 묻는다. 

구글과 넷플릭스 등 해외 콘텐츠 제공자(CP)가 KT, SKT, LG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에 '망이용료' 혹은 '망사용료'를 내야할까.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외국 콘텐츠사업자의 '망 무임승차 방지' 관련 법안 7건이 계류 중이다. 일정 규모의 해외 사업자가 국내 망 이용료를 내야한다는 내용이 골자인데 이는 국내 인터넷 트래픽이 가장 많은 구글의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정조준한 법안으로 평가받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인터넷 전송량 1,2위 기업은 구글 (27.1%)과 넷플릭스(7.2%)로 이들 업체가 차지하는 국내 인터넷 트래픽은 34%가 넘는다.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트래픽 비중은 각각 2.1%, 1.2%로 이들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외국 CP들의 주장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국내 ISP에 접속 비용을 내고 있고 세계 인터넷 환경의 '망중립성'이란 불문의 원칙 아래 망사용료를 지불하라는 것은 이중 비용 청구다.

그레그 피터스 넷플릭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쓴 기고문에서 "트래픽은 CP 회사가 주도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높은 해상도의 영화와 게임을 즐기기 위해 값비싼 광대역 통신 상품에 가입하는 이통사 개인 고객들이 만든다"며 "애시당초 이러한 서비스 관리는 이통사가 짊어져야 할 비용일 뿐만 아니라 CP는 엔터테인먼트 수요를 창출해 ISP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통사가 넷플릭스와 결합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통3사의 입장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업체와 일부 해외 업체들도 망사용료를 내는데 정작 트래픽 점유율이 가장 높은 두 기업만 '로마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국내 ISP업계는 이전부터 네이버 등 기업들에 트래픽에 따른 망사용료 지불을 포함한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이는 망중립성이란 글로벌 표준에 맞지 않지만 기업 간 계약이니 그동안은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러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국내 이용이 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국내 ISP들은 미국 등 해외에서 오는 트래픽을 처리할 때 경유하는 해외 ISP들에 접속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러한 비용은 외국 CP의 트래픽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스웨덴의 통신기업 에릭슨의 휴대폰 데이터 이동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동영상이 모바일 트래픽에 차지하는 비중은 69%로 오는 2027년에는 79%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5G 네트워크의 보급으로 휴대폰으로도 초고속 인터넷 이용이 늘면서 동영상 시청이 대세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구글은 해외 통신망을 거치지 않고 현지에서 유튜브 트래픽을 처리해주는 캐시 서버를 해외 곳곳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캐시 서버란 인터넷 서비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데이터 임시 저장 서버다. ISP 입장에서는 해외 경유 ISP 접속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돼 좋고, CP는 더 나은 서비스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국내 ISP들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 트위치도 망이용료를 내고 있다며 캐시 서버 운영 여부와 상관없이 구글과 넷플릭스가 마땅히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구글과 넷플릭스는 진짜 역차별은 네이버 등 국내 기업이 미국 ISP에 망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는 국내 ISP와 해외 CP가 협상과 합의 끝에 계약서로 체결해야 할 기업 간의 분쟁이다. 문제가 커진 것은 국회의 입법화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유럽에서도 우리나라의 망사용료 입법화 진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0년 전에 끝난 망사용료 논쟁은 최근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국에서도 다시 번지는 양상이다.

CP가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ISP의 네트워크 보수와 관리 비용을 내야하는가.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사안인데 국회는 너무 '우리 업체들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트위치는 비용이 부담된다며 최근 국내 서비스 동영상 최대 화질을 720p로 줄였다. 소비자들은 지난해 이통사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4조원이 넘었다는데 이용자 불편으로 이어지는 망사용료를 왜 고집하냐고 분노한다.

최근 국정 감사에서 "트위치가 한국 이통사에 지불하는 망사용료가 북미와 유럽 국가 대비 30배란 제보가 있다"는 질의에 한 이통사는 "CP와 개별 협상하는 부분이라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 망사용료가 어떻게 네트워크 시설 관리와 보수에 쓰일 수 있는지, CP가 망사용료를 내지 않아 가중되는 ISP의 부담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ISP와 CP 간 힘겨루기에 국회가 개입한 결과는 외교 문제로 파생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만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망사용료' 부과 문제를 공식 제기한 바 있다.

국회가 기어코 '망사용료' 입법을 무리하게 밀어부친다면 그 파장은 클 것이다. 트위치의 동영상 화질 저하로는 우습다. 외국 CP들은 한국 투자를 꺼릴 것이고 미국의 보복 조치는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이를 감당할 자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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