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130일 만에 공정위원장 임명
공정위, 규제완화 기조 속 해결과제 산적
[세종=뉴스핌] 김명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130일 만에 수장을 맞이하게 됐다.
야당의 반대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지만 오랜 기간 위원장 공백 사태로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던 공정위로서는 조직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다만, 한기정 신임 위원장과 공정위 앞에 놓인 과제들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면서 공정위의 위상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한 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맞춰 공정위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고도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기업 봐주기 vs 규제혁신 사이 균형 찾기
공정위는 새 정부 출범 후 달라진 정책 기조에 따라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현재 경제정책 기조를 민간·시장·서민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부처인 공정위도 그 흐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2022.08.19 hwang@newspim.com |
한기정 신임 공정위원장이 취임과 함께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사안 역시 '규제 완화'다. 대통령실이 밝힌 한 위원장 발탁 배경 중 하나가 '시장주의 경제원칙을 존중하는 법학자'다.
한 위원장도 앞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창의와 혁신이 더욱 필요하다"며 "공정거래를 우리 경제의 상식으로 바로 세워 시장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담보하겠다"고 밝혔다. 창의, 혁신, 효율성, 역동성 등 그가 사용한 단어 속에 새로운 공정위의 지향점이 모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의 규제 완화 정책은 이미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입점업체 '갑질'을 막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추진했으나 현 정부는 이를 자율 규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논의하기 위한 민간기구가 지난달 출범했다.
공정위는 또 최근 대기업그룹 총수의 친족 범위를 '혈족 6촌·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인척 3촌'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기업집단국 내 지주회사과를 폐지하기로 하는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아울러 사건 조사 과정에서 기업의 방어권을 강화하고, 의무고발 요청 기한을 설정하는 등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를 두고 야당은 '기업 봐주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출신의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제 완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 "공정위가 경쟁 제한 행위는 막고 환경·사회 등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서 규제 혁신을 향한 오해를 불식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정위의 시급한 과제에 대해선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게 중요하므로 시장구조 개선 정책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독과점 산업에서 경쟁을 촉진하고 신성장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산업 진흥 부처와의 갈등 조율 역량 키우기
공정위는 일반 규제 기관으로서 산업 전 분야를 다룬다. 그 때문에 다른 부처와 갈등을 자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산업 진흥에 힘써야 하는 부처와는 사사건건 충돌하기도 한다.
지난해를 예로 들면 공정위는 해양수산부와는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 사건 제재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공정위 사무처(검찰 격)가 지난해 5월 HMM(옛 현대상선) 등 국내외 23개 해운사에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최대 8000억원의 과징금 부과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공소장 격)를 보낸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스핌 DB] 2021.11.12 jsh@newspim.com |
공정위는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해운산업 발전도 고려해야 하는 해수부로서는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정위 전원회의(법원 격)를 거치면서 과징금 규모가 900억원대로 대폭 줄어들었으나 그 과정에서 부처 간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문제를 야기했다.
공정위는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삼계, 토종닭, 오리 등 가금산물 관련 담합 조사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공정위는 중소벤처기업부와도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분야에서 중기부와 일정 부분 업무가 겹치는 데다 '의무고발제' 운영을 두고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무고발제는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중기부가 다른 이유로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것을 말한다. 공정위는 중기부가 사건 처리가 이뤄지고 1년 넘게 지나 뒤늦게 고발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온플법 추진 과정에서 규제 권한을 두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다툼을 벌였다. 검찰과는 전속고발권 문제로 오랜 기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총수 지정 이슈와 관련해 산업통산자원부와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공정위와 타 부처와의 갈등 양상은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법 집행과 원칙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 사이 선택의 기로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여겨진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다른 부처와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정위가 이러한 갈등을 조율하는 역량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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