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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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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
원래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 일제 때 5월 5일로 변경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어린이날'이 생긴지 100년이 됐다. 그러나 100년이 되었어도 어린이날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노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의 인권, 한 개체로서의 인격을 생각해보는 날인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하는 <민속소식> 5월호가 '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라는 글을 게재했다. 한국방정환재단 염희경 연구부장의 글로, 어린이날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생겨났으며 지난 10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잘 정리하고 있다. 이에 염희경 부장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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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어린이의 발견과 어린이날-어린이 해방을 선언하다

어린이운동가 방정환은 5월 1일을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 하였다. 근로자의 날로 널리 알려진 5월 1일에 방정환은 왜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5월 1일은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운동을 선언한 '어린이날'이었다.

첫 '어린이날'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2022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100주년'으로, 또는 '제100회 어린이날'로 일컬어진다. 100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날의 가치와 정신, 풍경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 모습이 달라졌다.

어린이날의 제정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가난과 질병과 불행에 찌든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구휼하고 교육하는 데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사랑은 그 내면적 이상에서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민족의 사랑이 결합된 것으로 어린이를 통해 민족과 나라 건설의 장래를 담보로 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가꾸는 일임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어린이날'은 마치 꺼질 듯 위태로웠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고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사는 나라로서 어린이 인권의 새 장을 만든 계기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22년 5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 초유의 소년일」. '의미 깊은 기꺼운 이 소년날은 이천만 형제가 다 함께 빌으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방정환은 「조선소년운동의 사적 고찰」의 첫 시작 부분에서 '어린이 발견'과 '어린이운동'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민족 갱생을 도모한 민족운동의 일환이자 그 근본운동임을 뚜렷이 밝혔다. 방정환과 소년운동가들은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핵심 주장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4종의 선전문을 배포하며 전국적으로 거리 기행렬을 계획했는데, 어깨에 멘 흰띠에 붉은 글씨의 어린이날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되어 불허가로 행사가 지체되면서 지방에서는 행렬이 금지되고 '경성'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중심의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취지와 선전문, 어린이날 행사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은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반에게 '어린이'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한 날이었다.

이날 선언문에서 밝힌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어린이날이 어린이 인권 운동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임을 명확히 밝혔다. 192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운동은 분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26년, 1927년 어린이날 행사가 따로 치러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1927년 10월 16일 조선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 두 단체는 통합을 모색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어린이날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겹쳐 일제의 탄압뿐 아니라 어린이날 행사 참여를 금지시키는 학교장의 방해가 심해지는 점을 들어 1928년부터 어린이날을 5월 첫째 공휴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28년부터 5월 5일을 '유유아(乳幼兒)애호데이(아동애호데이)'로 정하고 관 주도의 어린이날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 어린이운동의 대표적 상징인 어린이날에 대한 맞불 형태의 행사다.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조선 어린이운동에 대한 분열과 탄압을 예비한 것이며, 어린이 해방의 자리에 어린이 보호애호의 관점을 덧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 1930년대 조선 어린이운동의 퇴조, 일제의 '아동애호주간'

1931년 서울 소년단체대표들 주최로 '전조선어린이날 중앙연합회 준비회'가 결성되어 어린이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어린이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지역의 어린이날 행사 소식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였다.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어린이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고, '유유아 애호' 주간을 더 본격화하면서 아동 구호 사업을 선전하였다. '우량아 선발 대회' '고궁 무료 관람' 행사 등을 벌이며 '어린이 해방 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조선 어린이운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며 일종의 균열을 획책하였다.

1937년에는 어린이날 기념식만을 겨우 치렀고, 193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다. 일본은 이 틈을 타서 조선사회사업협회 주최로 5일부터 11일까지 '아동애호주간'을 펼치며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취지로 아동애호 관념을 강조하였다.

또한 경성초등학교장회 주최로 "어린 학동들을 '억센 국민'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사립초등학교연합대운동회를 열고 "이만 학동이 무럭무럭 자라는 귀여운 몸으로써 그리는 대원무곡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명랑한 환성의 코러스가 여름 하늘 높이 올라가 '억센 국민' '창조의 성전聖典'다운 용장미"를 보인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38.5.31)가 등장한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던 시기 '억센 국민'의 단련은 어린이의 전쟁 동원을 예비하고 독려하는 것이며, '명랑한 환성의 코로스'라는 말로 어린 병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어린이 운동회를 미화하고 있다. 어린이날 기행렬과 행사 사진이 사라지고 초등연합대운동회의 일사분란한 군사 행동 같은 운동회 모습과 재롱잔치로 묘사되는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기사와 사진들이 이 시기 신문의 지면을 채워가고 있다.

◆ 1945년~1949년 해방으로 다시 찾은 어린이날, 5월 5일로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46년 해방 후 첫 어린이날 행렬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일본의 탄압으로 1938년에 중단되었던 어린이날은 1946년 부활하였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제 명절 찾은 어린이날」이라는 신문 기사는 일본이 덧씌운 불명예를 걷어내고자 하는 언어와 정신의 회복을 담고 있다. 즉 일제 말 '아동애호주간'이나 '초등연합운동회'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등을 '어린이의 명절'로 명명하면서 조선 '어린이의 복된 새 명절'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이었던 어린이날을 지웠던 역사의 회복이다.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5일이어서 이때부터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고정되었다. 해방의 기쁨과 어린이운동의 역동성도 잠시 이후 좌우익 이념 대립과 갈등, 분단 체제를 맞으면서 이후 반쪽의 어린이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 1950년대 관 주도 기념식, 일제 강점기 '아동애호주간'의 닮은꼴

어린이날 기념식은 1953년부터는 점차 관 주도, 국가 주도 행사가 되었고 분단 상황으로 '반공의식'을 강화하거나 어린이날 행사에 '합동체조'가 끼어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라든가, 어린이가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들은 이전에는 없던 어린이날 풍경이다.

1957년 5월, 전후의 피폐한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되었다. 그 이전 시기에도 첫 어린이날에 대한 회차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56년, 1957년에 와서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던 1938년~1945년 시기의 회차까지를 포함하면서 이 과정에서 1923년을 첫 어린이날제1회로 보는 기사들이 나온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된 1957년 이후에는 1923년을 제1회 어린이날로 보는 관점이 공식화되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9년 어린이날 기념식, 착한 어린이 우량아 표창식 [사진= 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60년대 착한 어린이상에 갇힌 어린이와 가장 행렬의 등장

1960년 '계엄령과 정치 붐'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하지 못하였다. 1956년 새싹회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착한 어린이상을 표창한 뒤 1960년대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각 단체에서 착한모범 어린이상, 장한착한 어머니상, 장한 어버이상 등을 시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

1967년에는 어린이날 가장행렬이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가진 뒤 우주소년 아톰, 동물 복장 가장행렬단이 종로-세종로-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가장행렬에는 '과외 수업 없는 나라 어린이가 건강하다'는 표어와 불량만화 추방, 혼·분식 장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표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 1970년대 화려한 볼거리-어린이 경축대잔치, 가장행렬

1973년 3월 '어린이날'이 법정 기념일이 되었고, 1975년 1월, 어린이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공휴일 지정의 영향인 듯 1976년에는 어린이날 창경원에 35만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세계 어린이의 해인 1979년에는 장충체육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어린이날 경축대잔치를 벌였다. 서울시 주최로 서울 시내 초등학교 어린이 1만여 명이 서울운동장-을지로-시청으로 대행진을 벌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청와대에서 진행된 1980년 어린이날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80년대 전면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소비자가 된 어린이의 출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 주최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 진행되었다. 1981년에는 어린이날 행사로 청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정부 주도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 안의 녹지원, 상춘재, 본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초대된 어린이들은 모의 국무회의, 대통령과의 오락 등의 시간을 보냈다.

1981년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어린이를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해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는 조문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공원 놀이동산 등으로 어린이와 가족들이 몰리는 현상이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어린이날을 맞아 일종의 소비자, 고객이 된 어린이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들이 자주 노출된다.

◆ 1990년대 돌아보는 어린이날, '공동체 놀이, 우리 아이'의 가치

1991년 5월 5일, 전교조 초등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와 여러 어린이 교육 문화 관련 단체들이 공동 주관한 '제1회 어린이날 놀이마당'이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1994년부터는 각 교육청과 시청, 구청에서 어린이날에 저소득층이나 장애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놀이마당과 유사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1999년 5월 1일,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 중심이 되어 1923년의 어린이날 선언을 수정 보완한 '새천년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린이날의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 시대에 맞는 어린이날의 모습을 모색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왼쪽) 2022년 어린이날노래공모전 포스터, (오른쪽) 어린이 3권 5호(1925.5) [사진=한국근대문학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2000년대 어린이의 인권, 안전, 놀이 권리를 생각하다.

정부 각 부처, 지방 자치 단체, 어린이 관련 놀이 문화 산업, 유통업체 등이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하면서 행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여주기식 행사나 소비성 행사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다문화· 탈북·폭력과 학대·실종 상황에 놓인 어린이의 인권이 부각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어린이 안전과 주체적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2015년 '어린이 놀이 헌장' 선포는 어린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5월 2일 보건복지부는 <2016 아동권리헌장>을 제정하였다. 정부 차원의 '아동권리헌장'은 1957년 '어린이 헌장'1988년 개정 이후 처음이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생명을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발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다. 부모와 사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9개 조항을 발표하였다. 이 헌장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초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어린이의 처지에서 기술한 사실상의 첫 헌장이라고 평가받는다.

2019년 겨울 이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위협이 어린이날 행사는 물론 가정과 학교에서의 어린이의 삶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소원도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다'거나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지구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등으로 변화하였다. 2021년부터 랜선이나 메타버스로 만나는 어린이날 행사 등도 마련되었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질병과 IT 산업이 결합해 어린이날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날 한마당 포스터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기대와 바람을 마주하게 되고,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어린이날의 풍경이 변화하고 어린이날의 정신이 훼손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새롭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100년이 더 흐른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200회, 또는 200주년의 어린이날을 맞이할까? 훗날 2022년 어린이날은 어떤 풍경으로 그려질지, 어떤 가치를 담아낸 날로 기억될지 상상해 본다.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금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글 | 염희경_한국방정환재단 연구부장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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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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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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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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