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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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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
원래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 일제 때 5월 5일로 변경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어린이날'이 생긴지 100년이 됐다. 그러나 100년이 되었어도 어린이날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노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의 인권, 한 개체로서의 인격을 생각해보는 날인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하는 <민속소식> 5월호가 '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라는 글을 게재했다. 한국방정환재단 염희경 연구부장의 글로, 어린이날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생겨났으며 지난 10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잘 정리하고 있다. 이에 염희경 부장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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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어린이의 발견과 어린이날-어린이 해방을 선언하다

어린이운동가 방정환은 5월 1일을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 하였다. 근로자의 날로 널리 알려진 5월 1일에 방정환은 왜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5월 1일은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운동을 선언한 '어린이날'이었다.

첫 '어린이날'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2022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100주년'으로, 또는 '제100회 어린이날'로 일컬어진다. 100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날의 가치와 정신, 풍경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 모습이 달라졌다.

어린이날의 제정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가난과 질병과 불행에 찌든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구휼하고 교육하는 데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사랑은 그 내면적 이상에서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민족의 사랑이 결합된 것으로 어린이를 통해 민족과 나라 건설의 장래를 담보로 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가꾸는 일임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어린이날'은 마치 꺼질 듯 위태로웠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고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사는 나라로서 어린이 인권의 새 장을 만든 계기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22년 5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 초유의 소년일」. '의미 깊은 기꺼운 이 소년날은 이천만 형제가 다 함께 빌으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방정환은 「조선소년운동의 사적 고찰」의 첫 시작 부분에서 '어린이 발견'과 '어린이운동'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민족 갱생을 도모한 민족운동의 일환이자 그 근본운동임을 뚜렷이 밝혔다. 방정환과 소년운동가들은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핵심 주장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4종의 선전문을 배포하며 전국적으로 거리 기행렬을 계획했는데, 어깨에 멘 흰띠에 붉은 글씨의 어린이날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되어 불허가로 행사가 지체되면서 지방에서는 행렬이 금지되고 '경성'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중심의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취지와 선전문, 어린이날 행사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은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반에게 '어린이'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한 날이었다.

이날 선언문에서 밝힌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어린이날이 어린이 인권 운동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임을 명확히 밝혔다. 192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운동은 분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26년, 1927년 어린이날 행사가 따로 치러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1927년 10월 16일 조선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 두 단체는 통합을 모색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어린이날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겹쳐 일제의 탄압뿐 아니라 어린이날 행사 참여를 금지시키는 학교장의 방해가 심해지는 점을 들어 1928년부터 어린이날을 5월 첫째 공휴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28년부터 5월 5일을 '유유아(乳幼兒)애호데이(아동애호데이)'로 정하고 관 주도의 어린이날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 어린이운동의 대표적 상징인 어린이날에 대한 맞불 형태의 행사다.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조선 어린이운동에 대한 분열과 탄압을 예비한 것이며, 어린이 해방의 자리에 어린이 보호애호의 관점을 덧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 1930년대 조선 어린이운동의 퇴조, 일제의 '아동애호주간'

1931년 서울 소년단체대표들 주최로 '전조선어린이날 중앙연합회 준비회'가 결성되어 어린이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어린이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지역의 어린이날 행사 소식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였다.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어린이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고, '유유아 애호' 주간을 더 본격화하면서 아동 구호 사업을 선전하였다. '우량아 선발 대회' '고궁 무료 관람' 행사 등을 벌이며 '어린이 해방 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조선 어린이운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며 일종의 균열을 획책하였다.

1937년에는 어린이날 기념식만을 겨우 치렀고, 193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다. 일본은 이 틈을 타서 조선사회사업협회 주최로 5일부터 11일까지 '아동애호주간'을 펼치며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취지로 아동애호 관념을 강조하였다.

또한 경성초등학교장회 주최로 "어린 학동들을 '억센 국민'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사립초등학교연합대운동회를 열고 "이만 학동이 무럭무럭 자라는 귀여운 몸으로써 그리는 대원무곡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명랑한 환성의 코러스가 여름 하늘 높이 올라가 '억센 국민' '창조의 성전聖典'다운 용장미"를 보인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38.5.31)가 등장한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던 시기 '억센 국민'의 단련은 어린이의 전쟁 동원을 예비하고 독려하는 것이며, '명랑한 환성의 코로스'라는 말로 어린 병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어린이 운동회를 미화하고 있다. 어린이날 기행렬과 행사 사진이 사라지고 초등연합대운동회의 일사분란한 군사 행동 같은 운동회 모습과 재롱잔치로 묘사되는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기사와 사진들이 이 시기 신문의 지면을 채워가고 있다.

◆ 1945년~1949년 해방으로 다시 찾은 어린이날, 5월 5일로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46년 해방 후 첫 어린이날 행렬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일본의 탄압으로 1938년에 중단되었던 어린이날은 1946년 부활하였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제 명절 찾은 어린이날」이라는 신문 기사는 일본이 덧씌운 불명예를 걷어내고자 하는 언어와 정신의 회복을 담고 있다. 즉 일제 말 '아동애호주간'이나 '초등연합운동회'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등을 '어린이의 명절'로 명명하면서 조선 '어린이의 복된 새 명절'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이었던 어린이날을 지웠던 역사의 회복이다.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5일이어서 이때부터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고정되었다. 해방의 기쁨과 어린이운동의 역동성도 잠시 이후 좌우익 이념 대립과 갈등, 분단 체제를 맞으면서 이후 반쪽의 어린이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 1950년대 관 주도 기념식, 일제 강점기 '아동애호주간'의 닮은꼴

어린이날 기념식은 1953년부터는 점차 관 주도, 국가 주도 행사가 되었고 분단 상황으로 '반공의식'을 강화하거나 어린이날 행사에 '합동체조'가 끼어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라든가, 어린이가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들은 이전에는 없던 어린이날 풍경이다.

1957년 5월, 전후의 피폐한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되었다. 그 이전 시기에도 첫 어린이날에 대한 회차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56년, 1957년에 와서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던 1938년~1945년 시기의 회차까지를 포함하면서 이 과정에서 1923년을 첫 어린이날제1회로 보는 기사들이 나온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된 1957년 이후에는 1923년을 제1회 어린이날로 보는 관점이 공식화되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9년 어린이날 기념식, 착한 어린이 우량아 표창식 [사진= 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60년대 착한 어린이상에 갇힌 어린이와 가장 행렬의 등장

1960년 '계엄령과 정치 붐'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하지 못하였다. 1956년 새싹회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착한 어린이상을 표창한 뒤 1960년대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각 단체에서 착한모범 어린이상, 장한착한 어머니상, 장한 어버이상 등을 시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

1967년에는 어린이날 가장행렬이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가진 뒤 우주소년 아톰, 동물 복장 가장행렬단이 종로-세종로-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가장행렬에는 '과외 수업 없는 나라 어린이가 건강하다'는 표어와 불량만화 추방, 혼·분식 장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표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 1970년대 화려한 볼거리-어린이 경축대잔치, 가장행렬

1973년 3월 '어린이날'이 법정 기념일이 되었고, 1975년 1월, 어린이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공휴일 지정의 영향인 듯 1976년에는 어린이날 창경원에 35만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세계 어린이의 해인 1979년에는 장충체육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어린이날 경축대잔치를 벌였다. 서울시 주최로 서울 시내 초등학교 어린이 1만여 명이 서울운동장-을지로-시청으로 대행진을 벌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청와대에서 진행된 1980년 어린이날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80년대 전면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소비자가 된 어린이의 출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 주최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 진행되었다. 1981년에는 어린이날 행사로 청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정부 주도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 안의 녹지원, 상춘재, 본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초대된 어린이들은 모의 국무회의, 대통령과의 오락 등의 시간을 보냈다.

1981년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어린이를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해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는 조문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공원 놀이동산 등으로 어린이와 가족들이 몰리는 현상이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어린이날을 맞아 일종의 소비자, 고객이 된 어린이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들이 자주 노출된다.

◆ 1990년대 돌아보는 어린이날, '공동체 놀이, 우리 아이'의 가치

1991년 5월 5일, 전교조 초등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와 여러 어린이 교육 문화 관련 단체들이 공동 주관한 '제1회 어린이날 놀이마당'이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1994년부터는 각 교육청과 시청, 구청에서 어린이날에 저소득층이나 장애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놀이마당과 유사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1999년 5월 1일,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 중심이 되어 1923년의 어린이날 선언을 수정 보완한 '새천년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린이날의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 시대에 맞는 어린이날의 모습을 모색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왼쪽) 2022년 어린이날노래공모전 포스터, (오른쪽) 어린이 3권 5호(1925.5) [사진=한국근대문학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2000년대 어린이의 인권, 안전, 놀이 권리를 생각하다.

정부 각 부처, 지방 자치 단체, 어린이 관련 놀이 문화 산업, 유통업체 등이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하면서 행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여주기식 행사나 소비성 행사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다문화· 탈북·폭력과 학대·실종 상황에 놓인 어린이의 인권이 부각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어린이 안전과 주체적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2015년 '어린이 놀이 헌장' 선포는 어린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5월 2일 보건복지부는 <2016 아동권리헌장>을 제정하였다. 정부 차원의 '아동권리헌장'은 1957년 '어린이 헌장'1988년 개정 이후 처음이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생명을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발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다. 부모와 사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9개 조항을 발표하였다. 이 헌장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초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어린이의 처지에서 기술한 사실상의 첫 헌장이라고 평가받는다.

2019년 겨울 이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위협이 어린이날 행사는 물론 가정과 학교에서의 어린이의 삶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소원도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다'거나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지구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등으로 변화하였다. 2021년부터 랜선이나 메타버스로 만나는 어린이날 행사 등도 마련되었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질병과 IT 산업이 결합해 어린이날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날 한마당 포스터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기대와 바람을 마주하게 되고,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어린이날의 풍경이 변화하고 어린이날의 정신이 훼손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새롭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100년이 더 흐른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200회, 또는 200주년의 어린이날을 맞이할까? 훗날 2022년 어린이날은 어떤 풍경으로 그려질지, 어떤 가치를 담아낸 날로 기억될지 상상해 본다.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금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글 | 염희경_한국방정환재단 연구부장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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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평택을·부산 북갑 판세는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평택을과 부산 북구갑이 여야 모두 '단일화 없는 정면 승부' 속 최대 격전지로 자리잡아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두 지역 모두 '초접전' 3자 구도가 끝까지 유지되면서 막판 표심의 미세한 이동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월 14일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국민의힘 유의동, 조국혁신당 조국, 진보당 김재연,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후보 등록을 마쳤다. [사진=뉴스핌 DB] ◆ 평택을, 민주·보수 모두 단일화 무산...김용남·유의동·조국 3자 초접전 경기 평택을에선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며 3자 구도가 굳어졌다. 프레시안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평택을 유권자 703명을 대상으로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한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김 후보 21.4%, 유 후보 21.2%, 조 후보 23.4%로 오차 범위 내 접전이 펼쳐졌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와 황교안 자유와혁신 후보도 각각 9.4%, 12%를 기록했다. 3자 후보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김재연, 황교안 후보의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기록되자 단일화 문제가 평택을 판세를 뒤흔들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범민주 진영에서 김용남, 조국, 김재연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의가 사실상 불발됐고, 보수 진영에서도 유 후보와 황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중단됐다. 양측 모두 '핵심 키'였던 단일화 카드가 무산되면서 뚜렷한 '1강' 없는 3자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재연 후보는 지난달 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상황이 또 반드시 단일화를 해야 할 정도의 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주 의지를 제가 계속 밝힌 바가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황 후보도 단일화 없는 '완주' 기류가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후보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는데 사퇴하라고 하면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지금 지역에선 흩어진 보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열망, 민심이 굉장히 크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부산 북구갑, 한동훈 '상승세' 속 보수 분열…끝까지 안갯속 부산 북구갑은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3자 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여론조사에선 한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북구 갑 거주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 번호 전화면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하 후보 37%, 한 후보 4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박 후보 14%를 기록했다. 지난달 19일 공표 조사에 비해 한 후보는 10%p 상승한 반면, 박 후보는 6%p, 하 후보는 1%p 하락하면서 보수 지지층이 한 후보 쪽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기류 속에 보수 단일화는 끝내 성사되지 못한 분위기다. 같은 조사를 살펴보면 범야권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묻자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6%로 '필요하다'(33%)보다 2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 후보들은 단일화 문제를 놓고 거센 설전을 이어갔다. 삭발 투혼을 불사하며 완주 의지를 내비친 박 후보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후보를 겨냥하며 "가짜 보수인 주제에 국민의힘 이름 훔쳐 쓰려고 하는 게 딱하다. 무소속 (후보) 뽑으면 당내 분열이라는 비극을 반복하며 이재명 정부의 폭주만 도와주는 꼴"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한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명하신 북구 시민 여러분께서 한동훈으로 단일화해 주시라"며 "박 후보 찍는 표는 단순한 사표(死票)가 아니라 민주당 하정우 후보 돕는 표이자 이재명 정권 폭주 돕는 표가 된다"고 맞불을 놨다. 본문의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eo00@newspim.com 2026-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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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IBK기은 지방이전 재점화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책은행 지방 이전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IBK기업은행 대구 이전이 주요 공약으로 거론되면서다. 금융권은 국책은행 이전이 사전 협의 없이 선거 공약으로 소비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이전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금융권 노사 갈등이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한국산업은행] 금융권의 관심은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에 쏠려 있다. 충분한 사전 논의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본사 이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다. 노조 반발에 더해 법 개정이라는 현실적 장벽도 있어 선거 이후 논란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윤석열 정부 당시 부산 이전 추진과 무산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논란에 다시 휩싸였다. 현직 부산시장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산은 본사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과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통과 등과 함께 산은을 부산에 유치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산은 부산 이전을 추진하려면 산은법 개정 등 관련 법령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현실화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지역 토론회에서 "포기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박 후보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산은 이전을 둘러싼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산업은행 이전보다는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은 부산 이전이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무산된 프로젝트라는 점과 금융권 반발 등을 고려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산은 이전이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도 적지 않은 만큼, 전 후보가 당선되면 향후 구체적인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사진= IBK기업은행] 기업은행(기은)의 경우에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열린 일곱 번째 공약 발표회에서 기은 본점 이전 추진과 대기업 유치를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지역내총생산(GRDP)을 임기 내 100조 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추 후보 역시 지난 3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 국내외 대기업 투자와 함께 기은 대구 이전을 관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은 역시 산은과 마찬가지로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기은법 개정 등 법령 정비가 우선이다. 이에 김 후보는 다수당 후보라는 점을, 추 후보는 초당적 협력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금융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잇따른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과 관련해 수차례 성명을 내 "포퓰리즘에 눈먼 공약"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며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지방 이전 공동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도 나섰다. 지난달 15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은 이전 공약 폐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다소 미온적인 산은 부산 이전보다, 여야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약속한 기은 사태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금융권의 반발과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전 정권에서 산은 이전 사태로 심각한 갈등이 불거져 금융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만큼, 충분한 논의와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본점 이전은 노동자의 일터와 가족의 삶, 자녀 교육과 돌봄까지 흔드는 문제다. 당사자 설명도, 노조와의 협의도 없이 후보의 공약 한 줄로 금융노동자의 삶을 뒤흔들 수는 없다. 국책은행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는 모든 시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peterbreak22@newspim.com 2026-06-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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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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