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EBS 내부 출신, 기획개발 대가
"K-지식 콘텐츠 글로벌 진출 타진"
저출산·독서율·교육문제 탐구 지속
콘텐츠로 승부..수신료 역할 만큼 인정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지식·교육 전문 콘텐츠 허브를 만들고 본연의 교육·사회적 기능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뉴스핌과 만난 김유열 EBS 사장의 말이다. 김 사장은 교육 격차와 같은 교육 현안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한 플랫폼 개발·운영 등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또 시장에서 유행하는 프로그램보다는 공익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EBS의 사명임을 강조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 정상화 등 정책 지원을 당부했다.
[고양=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유열 EBS 사장. 2022.03.29 pangbin@newspim.com |
김 사장은 EBS내부 출신 첫 사장답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갔다. 그는 "지향점은 꽤 분명하다. EBS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가장 교육적인 내용을 창의적으로 구현할 때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고 말한다. "'대학 입시의 진실'이란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는데, 과거와 달리 왜 저소득층이나 시골지역 학생들이 SKY를 못갈까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죠. 학력고사부터 수능시대까지 6부작 다큐멘터리였는데, 방영이후 실제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었습니다. 학종문제가 드러나면서 수능비중이 확대됐고 다큐인데도 불구하고 삼성 언론상 보도부문까지 받게됐어요." 근본적인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차별화한 콘텐츠로 사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것. 이것이 EBS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PD출신으로 콘텐츠 기획·개발의 대가로 평가받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근본 변화 불러오는 지식콘텐츠로 승부..'저출산, 독서율 저하, 교육혁신' 탐구
김 사장은 EBS의 DNA로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 근본문제를 저출산, 독서율 저하, 교육혁신으로 보고, EBS의 집중탐구 콘텐츠로 삼았다. "비판보다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집요하게 한다면 실낱같은 가능성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공영방송사니까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부 전체 1년 예산 600조원 중에서 46조원 가량이 저출산정책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EBS의 다큐 제작능력이나 문제의식을 갖고 도전한다면 3년내에 사회에 의미있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그는 EBS가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EBS는 교육·학술 다큐에 강점이 있어요. 그동안 다큐 프라임을 통해 문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여성학 등 모든 가능한 학문적 성취와 해외 모범·실패사례를 아카데믹한 방법으로 샅샅이 파헤쳐야죠. 콘텐츠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회성으로 5부작, 10부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요하게 다루는 게 중요해요. EBS의 저출생 관련 다큐가 출생률 반전의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고양=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유열 EBS 사장. 2022.03.29 pangbin@newspim.com |
30년 현장경험과 소신에서 우러나온 얘기다. 그는 '딜리트 전략'을 통해 10년 동안 EBS 시청률 600% 상승을 이끌었다. 잘할 수 없는 것은 비우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 편성본부장시절 EBS 본질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모두 제거하고, 어린이와 다큐로 프로그램을 단순화시켰다. 프라임 타임대 EBS에서는 다큐멘터리 방송이 나오게 함으로써 교양과 다큐를 사랑하는 시청자는 언제든지 EBS에서 다큐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내서 손꼽는 혁신성공 사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90년대 말, 밀레니엄을 앞두고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노자와 21세기'는 PD시절 그가 기획한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과학기술 문명인 자본주의에 대응하고, 인류의 지혜를 알아보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이 한때 10%를 넘나들 정도였다. "모든 언론이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여 지구촌을 연결하는 휘황찬란한 디지털 판타지로 달려가는 사이, EBS는 인류의 원형질로 파고들었죠. 편당 320만 원의 제작비로 인류의 원형질에 잠재된 DNA를 깨웠다"고 말한다. 본질을 파고든 덕에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짜릿한 성공을 이끌었다.
◆'군학일계' 추구…K-지식 콘텐츠 글로벌 진출 타진
EBS는 교육시장의 성장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드라마틱하게 성장해 온 조직이다. 그가 입사할 30년전 당시 177억 원이었던 1년 재정이 지난해 3475억 원으로 20배나 성장했다. "가파르게 성장해 온 EBS 출신 첫 사장으로서 얼마나 주변 기대에 부응할지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30년간 지켜봐 온 동료나 선후배들의 기대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 대내외적인 경영환경이 녹녹치 않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거대자본을 확보한 글로벌 OTT업체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의 생존전략은 화려한 기교보다 교육방송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독특한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23조 원 매출 가운데 20조 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데, 같은 방식으로는 국내 어느 미디어도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유니크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학(鶴)을 지향하고, 누구나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1등이 되기는 어렵고 비용과 시간도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학보다 닭이 되는 역설의 전략 즉, 군학일계(群鶴一鷄) 전략입니다. 수십만 마리 화려한 학 가운데 평범한 닭 한 마리가 있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확연히 돋보일 것입니다. 군학일계 전략은 다름의 전략, 차별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유니크한 콘텐츠를 만들어 서비스한다면 EBS만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콘텐츠를 위해 반드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죠."
'꼬마요리사', '방귀대장 뿡뿡이', '펭수', '아기성장보고서', '자본주의', '학교란 무엇인가', '한반도의 공룡' 등 역대 성공작은 모두 교육성이 강했다. 타방송·미디어와 다른 독창적이고 차별화한 영역을 구축하면서 사랑받았던 것.
[고양=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유열 EBS 사장. 2022.03.29 pangbin@newspim.com |
EBS는 글로벌시장으로 눈 돌리고 있다. "EBS가 디스커버리에 공급하는 방송사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미국 제작단가는 10배 정도는 비싸요. BBC 다큐는 편당 36억원이 들어갔죠. EBS는 편당 6억만 받고 제작해도 그들보다 10배 품질을 낼 수 있죠. 이런 하이엔드전략을 당장 우리 돈으론 할 수 없으니 제작시장을 개척해 보고 싶어요. 넷플릭스가 한국을 침략하면 우리도 글로벌로 가야죠."
◆ '그레이트 마인드', XR 등 플랫폼 개발..무료 학습 사이트 완비
그는 시대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EBS는 지난 2월부터 세계 석학 전문 동영상 글로벌 플랫폼 '그레이트 마인드'(thegreatminds.com) 운영을 시작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6개 언어 자막을 제공하고, 시즌별로 석학 40~50명 강의 영상을 제작·탑재할 계획이다. 국내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세계 최대 규모 석학강연 영상 플랫폼으로 발돋움 한다는 계획이다.
"그레이트 마인드는 전 세계에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테드(TED)' 같은 콘셉트로 국내는 무료, 해외에서는 유료 구독 모델로 갈겁니다. 유명 연사들의 섭외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됐죠. 저출생, 독서율, 교육 혁신 문제 3부작 다큐도 이미 제작 중이고, 올해 하반기 편성개편을 마무리하면 내년 봄부터 선보일 겁니다."
"EBS에선 인터넷 사이트를 8개나 직영 중입니다. 방송사일 뿐 아니라 대형 출판사이면서 IT회사예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방송사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하죠. EBS는 작은 방송사지만 생각은 작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EBS를 한국의 유니크한 지식 밸류 콘텐츠 허브로 구축할 것입니다."
EBS가 매일 내놓는 다양한 양질의 교육 콘텐츠는 오랜기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허브 역할을 하는 '교육 전문 포털 플랫폼' 구축·운영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교육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방송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허브구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생각이다.
EBS의 OTT 플랫폼 '그레이트 와이즈 닷컴'에 참여한 세계 석학들 [사진=EBS] |
◆사교육 경감, 교육 격차 해소에 '앞장'..역할에 맞는 수신료 인상 기대
EBS는 이미 초·중·고 무료 학습 사이트와 모바일, 초·중·고 AI 학습 시스템, 쌍방향 화상강의 시스템, 온라인 클래스를 완비했다. 내년이면 교육용 메타 캠퍼스도 구축·운영한다. 또 체험이 중요한 안전교육과 예술·체육활동을 위한 확장현실(XR) 콘텐츠를 기획 중이다. 김 사장은 "EBS의 콘텐츠와 첨단 학습 시스템을 활용하는 정책이 강화된다면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EBS는 코로나19로 교육시스템이 위협받는 가운데 제 기능을 발휘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기존 운영했던 소프트웨어 교육 플랫폼 '이솦'을 기반으로 초·중·고 학생 300만 명이 동시에 접속 가능한 플랫폼인 'EBS온라인 클래스'를 긴급 구축해 성공적으로 운영한 것.
당시 상황실장을 맡아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김 사장은 위기 속에서 교육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7개 시·도교육청 등 유관부처와 LG CNS, SKB 등 민간 기업과 함께 초·중·고 학생들의 원격교육지원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코로나19 이후에도 학력격차 회복을 위해 공동학습시스템(LMS), 화상강의, 인공지능을 결합한 통합시스템을 운영해 희망하는 17개 시·도교육청에 교육회복지원을 위한 '맞춤형 멘토링 서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최근 '수신료 인상'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김 사장은 EBS의 목소리를 냈다. "현행 수신료 2500원에서 3%수준을 배분받아 70원을 받은지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가장 공영적인 역할을 하는 방송사를 더 대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BS가 전체 70%를 자체적으로 상업수익을 내서 해결하는 구조라, 고상하기까지 해야하는 구성원들이 늘 버겁죠. 수신료가 현실화 되어서 EBS의 역할만큼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신료는 국민이 내는 것이잖아요. 수신료위원회같은 독립기구나 시청자가 핵심인 곳에서 배분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합니다." 공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품격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절박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