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고 후 의식불명…목격자·CCTV 토대로 음주측정 위해 혈액 채취
법원 "당시 긴급한 상황…사후 영장 발부받는 등 적법하게 증거수집"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만취 상태에서 운전해 단독사고를 내고 의식 불명인 피의자의 동의 없이 혈액을 채취한 경찰의 증거 수집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신혁재 부장판사는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3) 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31일 밤 10시 19분쯤 서울 관악구 난곡터널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단독사고를 내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A씨를 뒤따라 운전하던 목격자 B씨는 '1차선으로 주행하다 앞서 달리던 오토바이가 터널을 빠져나온 뒤 갑자기 중앙 대각선으로 직진후 혼자 중앙분리대에 부딪혔는데 아마 음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112에 신고했다. 또 다른 운전자 C씨 역시 '앞서 가던 오토바이가 중앙분리대와 추돌했는데 뒤따르던 승용차 2대와는 무관하고 반대편 차선에서도 사고와 관련된 차량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이 음주운전을 단속하고 있는 모습 [사진=경찰청] |
이에 경찰은 목격자들 진술과 근처 폐쇄회로(CC)TV 등을 토대로 A씨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튿날 자정 무렵에 A씨가 이송된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당시 A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고, 경찰관 역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와 보호장비를 착용한 상태라 호흡 측정을 하거나 혈액 채취 동의를 받을 수 없었다.
육안으로 A씨의 얼굴이 붉은 것만 확인한 경찰은 응급실 간호사에게 채혈을 부탁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뒤 법원으로부터 사후 영장을 발부받았다. 국과수는 2주 후 경찰에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인 0.232%라고 회신했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당시 경찰의 혈액 채취가 위법하고, 이에 따라 국과수의 감정의뢰 회보서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 부장판사는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를 야기한 후 피의자가 의식불명 상태인 경우 등에는 호흡조사에 의한 음주측정이 불가능하고 혈액 채취 동의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는 긴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피의자의 신체나 의복에 주취로 인한 냄새가 강하게 나는 등 범죄의 증적이 현저한 준현행범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의료인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피의자의 혈액을 채취하고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경우 당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장구 등 착용으로 인해 제한적인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담당 경찰관이 상당한 시간 내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을 위해 간호사를 통해 피고인의 혈액 시료를 채취한 행위는 헌법 및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영장주의에 따른 적법한 증거수집행위"라고 판결했다.
이어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가 매우 높은 점은 불리한 정상이긴 하지만, 피고인이 아무런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다행히 다른 교통사고나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것은 아닌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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