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투자, 원금의 최대 50% 상환 검토
특정금전신탁은 손실 보전 금지 해당 안돼
'개인투자자 전액 상환' KB 부동산 펀드와 유사
일각선 "라임 분쟁조정 대비한 선제적 대응"
[서울=뉴스핌] 김민수 기자 = 국내에서 5000억원 이상 판매된 독일 헤리티지(Heritage) 파생결합증권(DLS) 시행사가 파산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최대 판매사인 신한금융투자가 투자자들에게 원금의 최대 50%를 우선 상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의 불안을 일부 해소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함께 운용상 손실 배상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공존하는 모양새다.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사옥 전경. [사진 = 신한금융투자] |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독일 헤리티지 DLS 운용사 반자란운용(싱가포르 소재)은 지난 4일 현지 시행사 저먼 프로퍼티그룹(German Property Group, GPG)을 상대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파산 절차를 개시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현지 개발사업 난항으로 투자금 상환이 잇따라 지연되면서 투자자산 매각 권한을 포괄적으로 넘겨받는 포괄적 위임약정(PoA) 협상에 나섰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독일 법원에 파산절차 개시를 신청한 것이다.
해당 DLS는 역사적 보존가치를 지닌 건물에 대한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을 기반으로 구조화된 상품으로 현지 시행사의 부동산 담보로 발행된 전환사채(CB)에 투자한 반자란운용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연 7%의 수익을 지급하는 계약이다. KB증권과 키움증권, NH투자증권이 발행하고 신한금융투자, KEB하나은행, NH투자증권, 우리은행, 현대차증권, SK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국내 증권사 및 은행권에서 5000억원 이상 판매됐다. 이 가운데 신한금융투자가 3907억원으로 전체의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7월부터 만기 원금 상환 연기가 시작되고 최근까지 만기 지연이 지속됐다. 이에 담보물 매각을 통한 투자금 환수를 시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환매 연기 장기화는 물론 원금손실 우려가 크게 확대된 상태다.
이 가운데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고 독일 헤리티지 DLS 투자자들을 우선 구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여기에는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투자자에게 최대 50%의 원금을 먼저 상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현지 시행사 자산매각 절차와 별개로 내부적으로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일부를 우선적으로 돌려주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규모나 계획에 대해선 아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단 현행법상 신한금융투자가 투자금 일부를 먼저 돌려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투자상품 매매에서 손실 보전이나 이익을 보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불완전판매 등 투자매매업자의 위법 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손실 배상이 가능하다.
지난해 불거진 독일 국채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주요 판매사인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투자자들에게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라고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외국 자산운용사 사기에 휘말려 원금손실이 발생한 호주 부동산 사모펀드 판매사 KB증권도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상품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준 바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독일 헤리티지 DLS 역시 수익증권이므로 투자 손실 보전 행위를 금하는 자본시장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회사 측에서 법률적 문제를 충분히 살펴보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신한금융투자가 상품에 대한 투자적격성 심사 작업이 미진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역외펀드를 직접 들여오지 않고 재간접이나 구조화 형태로 설계하면서도, 상품 판매에만 집중하다 기초자산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독일 국채 DLF 손실과 라임자산운용의 대규모 펀드 환매 연기 사태 등으로 시장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비교적 확실한 담보물이 존재하는 만큼 투자금 회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신한금융투자는 반자란운용과 현지 시행사 간 법적 공방과 별개로 담보물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 17건 가운데 16건에 대해 정상확인된 물건을 확인했으며, 1건에 대해서만 서류 확인이 안돼 운용사 측에 추가 세부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각에서는 우선 상환 결정이 자칫 업계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들은 해당 상품의 손실이 현지 개발사업 인허가 문제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투자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위법 사실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금 상환에 나서는 것은 향후 법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라임 사태로 궁지에 몰린 신한금융투자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에 대비해 투자자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mkim0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