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 기사는 9월 4일 오후 3시17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욕=뉴스핌] 민지현 특파원 =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침체 우려에 들썩이고 있다. 미국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이 12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악화되면서 침체 우려는 국채 시장 뿐 아니라 외환 시장까지도 번졌다.
지난달 말 뉴욕 채권시장에서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와 2년물 금리의 스프레드가 5bp(1bp=0.01%포인트) 까지 벌어지며 2007년 이후 가장 크게 역전됐다. 최장기물인 30년물 금리와 최단기물 3개월물 금리가 뒤집히기도 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안전자산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는 달러화당 104엔까지 오르며 약 3년 만에 최고치로 솟았으며 미국과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중국 위안화는 8월 27일까지 9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1년 반 만에 최저치로 밀렸다.
영국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이슈로 진통을 겪는 파운드화는 이달 2일 미달러 대비 3년 만에 최저 수준(1.2066달러)에 거래되며 변동성을 키웠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영국이 EU를 합의 없이 떠나게 될 경우 파운드/달러 환율이 패러티(1달러=1파운드)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국가 채무 불이행(디폴트) 불안으로 8월 중 미달러 대비 35.80% 절하됐다. 지난달 28~29일에만 외환보유고가 30억달러 가량 증발하기도 했다. 페소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달 1일부터 자본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환시장 전반의 변동성은 1월 초 이후 최고치까지 올랐다. UBS의 스튜어트 카이저 주식 파생 리서치 헤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외환과 채권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며 "이는 주식시장의 리스크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안전자산' 엔화 3년래 최고치...'엔화 독주시대' 관측도
엔고 기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면전 리스크가 크게 고조되고 세계경제 침체 신호가 분명해짐에 따라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로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일본 엔화는 8월 한 달 간 5월 이후 최대 오름폭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는 8월 말 달러당 106.28엔에 거래되며 7월 말 108.78엔에서 2.30% 절상됐다.
지난달 26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 때 1달러=104.46엔을 기록하며 2016년 11월 이후 약 3년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였다. 최근 엔/유로 환율은 1유로=117~118엔 대에서 거래되며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엔화 강세 기조는 미중 무역 전면전의 장기화와 미국과 일본의 국채 금리차 축소 등에 기인한다.
이달 1일 미국과 중국은 맞불 관세를 놓으며 9월 무역 협상에 적신호가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3000억달러 어치 중국 수입품 가운데 1차분으로 1250억달러 이상인 3243개 품목에 15% 관세를 부과했다. 또 기존 250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의 추가 관세율을 오는 10월 1일부터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75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5078개 품목) 중 원유와 콩, 육류 등 1717개 품목에 5~10%의 관세를 발동했으며 미국의 추가 관세가 부당하다며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달 3일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1.444%를 기록했으며, 일본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마이너스 0.275%를 기록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3%에 가까웠던 양국 금리 격차는 1.719%로 좁혀졌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연내 수차례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은행(BOJ)은 만성적인 초저금리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여지가 적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는 더 축소되고 엔고 압력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엔화가 달러화와 유로 모두에 강세 기조를 이어가면서 '엔화 독주시대'가 열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엔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달러당 100엔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시됐다.
미즈호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上野泰也)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을 중심으로 엔화의 자산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연말을 향해가면서 엔이 달러당 100엔 전후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단, 일각에서는 BOJ가 엔고에 따른 경제 파장을 우려해 추가 금융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소니파이낸셜홀딩스의 칸노 마사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BOJ는 이미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을 것"이라며 "연준과 ECB가 행동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엔화 강세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듯 하다"고 전했다.
마스지마 유키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올해 연준의 3차례 금리 인하는 이미 시장 가격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엔화가 달러당 105엔을 넘어서까지 크게 강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中 위안화, 11년 만에 7위안 선 돌파...신흥국 통화 일제히 급락
중국 위안화는 지난달 28일까지 11거래일 연속 하락해 11년 반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달러/위안 환율은 7월 말 달러당 6.8843위안에서 8월 말 7.1567위안을 기록, 한 달간 위안화는 달러화 대비 3.96% 절하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달러/위안 역내 환율이 올해 말까지 7.300위안까지 오른 뒤 내년 완만하게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점쳤다. 소시에테 제네랄(SG)은 올해 하반기 달러/위안이 7.2위안까지 오른 뒤 위안화의 추세적 약세가 지속, 환율이 7.7위안까지 뛸 가능성을 제시했다. 도이체방크는 연말 7.1위안까지 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위안화가 이보다 큰 폭으로 평가절하될 경우 심각한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대규모 자본 유출이 발생하는 한편 달러 표시 회사채의 디폴트가 수직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중국 기업의 달러화 표시 회사채 규모는 9000억달러에 이른다.
UBS의 왕 타오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전쟁이 고조되면 달러/위안 환율이 연말 7.2위안까지 오른 뒤 2020년 7.3위안까지 상승, 위안화 약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레디트 스위스(CS)는 보고서를 내고 달러/위안 환율의 변동성 상승이 지난 2015년 위안화 급락에 따른 증시 패닉을 재연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경계감이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한 데 이어 주식시장으로 파장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위안화가 11년 만에 7위안 선을 돌파한 파장은 신흥국 전반으로도 확산됐다. 한국 원화를 포함한 주요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급락했다.
지난달 말 달러/원 환율이 1210원대에서 거래되며 한 달간 미달러화 대비 1.87% 가량 하락한 것을 포함, 멕시코 페소화와 인도 루피화도 각각 4.83%, 3.92% 내렸다. 같은 기간 남아공 랜드화도 미달러 대비 5.84% 하락했으며 브라질 헤알화도 8.77% 가치가 떨어졌다.
알파북의 마틴 말론 수석 경제 자문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연준의 매파 금리인하에 이어 위안화 급락이 외환시장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 멈추지 않는 강달러, 달러인덱스 지난해 저점 대비 10% UP
연준이 올해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강해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8월 말 98.92를 기록, 한달 간 0.41% 상승했으며 지난해 저점 대비 10% 치솟았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달러화에 상승 탄력을 제공했고 미국 경제의 상대적인 저항력 역시 달러화 상승에 호재로 작용했다.
유로화는 유로존 최대 경제국 독일을 필두로한 경기 침체 우려로 지난달 말 미 달러화 대비 2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유로/달러 환율은 8월 말 1.0991달러로 2017년 5월 이후 처음으로 1.1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책자들 사이에서는 강달러를 둘러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달러화 강세가 미국 기업들의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깎아 내리고 수익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 트위터에서 "유로는 달러화에 대해 미친듯이 떨어지고 있고 그들에게 수출과 제조업에 큰 이점을 주고 있다"며 "그리고 연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미국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ING는 보고서를 내고 트럼프 행정부의 환시 개입 여지가 25%로 상승했다고 전했다.
런던 소재 ING의 크리스 터너 외환 전략가는 "단기적으로 달러를 논하기는 어렵다"며 "무역갈등 고조와 유럽 정치 이벤트 등 리스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수익성보다는 안전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jihyeonm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