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진작가 발굴 대표 프로그램 '젊은 모색' 재개
동시대 시각 반영한 청년 작가 9인 신작 52점 공개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 '젊은모색'이 5년 만에 부활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젊은모색 2019:액체 유리 바다'전을 오는 20일부터 9월 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김지영 작가 2019.06.19 89hklee@newspim.com |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는 작가 안성석의 작품 제목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된 '젊은모색 2019:액체 유리 바다전' 간담회에서 "전시 제목 중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는 작품이 있다. 이번 전시의 의미를 요약한 것 아닌가 싶다"며 "젊은 모색전은 달리 말하면 젊은 도전, 젊은 실험, 이런 내용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제를 표현하는 형식이나 재료도 다양해서 그야말로 싱싱한 전시장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젊은 목소리를 많은 분들이 와서 만끽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2019.06.19 89hklee@newspim.com |
'젊은모색'전은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국내 미술 현장을 가늠하는 지표를 제시해왔다. 1989년 이불, 최정화, 1990년 서도호, 2000년 문경원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이번 '젊은모색 2019:액체 유리 바다'전은 '젊은모색'의 19회차 전시다. 김지영, 송민정, 안성석, 윤두현, 이은새, 장서영, 정희민, 최하늘, 황수연 등 9인이 참여한다. 작가선정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의 연구, 추천 및 회의와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이뤄졌다.
작가 연령대는 2030세대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전시1과장은 "작가 선정에서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면서 "40대, 50대여도 동시대 젊음을 상징할 수 있다면 '젊은모색'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선정된 작가들은 가장 젊은 생각을 보여준 작가라 선정했다.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나이를)이야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시의 부제인 '액체 유리 바다'는 참여 작가 9명에게서 발견된 공통의 키워드다. 이는 각 단어 사이의 틈새 같이 완결된 문장으로 매듭지을 수 없는 동시대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태도를 상징한다. 또한 단단하면서 섬세한 액정유리 같이 현실 안팎의 장면들을 더욱 투명하고 선명하게 반영하는 젊은 작가들의 성향과 끊임없이 율동하는 너른 바다처럼 미래에도 멈추지 않는 흐름으로 존재할 그들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2019.06.19 89hklee@newspim.com |
9명의 작가들은 미디어의 이미지, 스마트폰 앱, 유튜브 등에서 발견한 특성과 정서를 통해 시대적인 고민과 정면 대결하기도 하고, 인터넷의 파도에 몸을 맡겨 떠다니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52점을 포함해 총 53점이 공개된다.
김지영은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과 희생된 개인에 관심을 가지고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각기 다른 기도하는 손을 조각해 초로 만든 '이 짙은 어둠을 보라'(2019)와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참사의 기록 이미지를 그린 파란색 회화들, 2014년 진도 팽목항의 바람을 기록해 북소리로 치환시킨 '바람'(2015/2019)'이 한 작품처럼 구성돼 있다. 이 전시장에는 관람객수를 10명 내외로 제한한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송민정 작가 2019.06.19 89hklee@newspim.com |
송민정은 SNS 등 대중문화가 소비되는 방식을 끌어들여 '현재'라는 시점을 강조한다. 송 작가의 전시장은 마치 복도와 같은 공간으로 마련돼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영상은 실제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아닌 기계과 기술로 맺게 된 관계들과 소통하는 인물의 일상을 담는다. 영상에서 인물이 말을 거는 상대는 화면 속 시청자, 그리고 인물이 사용하는 건강관리용 애플리케이션 허피에 등장하는 증강현실뿐이다. 송 작가는 이러한 앱의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비추며 인간 중심적이고 비신체적인 관계 맺기에 잠재된 불편함과 친밀함, 그 사이의 혼란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안성석은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던 세상에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질문을 던진다. 이는 영상과 관람의 형식에 개입하는 설치 구조물로 이뤄진 작품이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와 피사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태도, 즉 사진을 찍듯 무언가를 획득하고 소비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에 주목한다. 그래서 전시장 한 켠에는 물침대도 마련돼 있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윤두현 작가 2019.06.19 89hklee@newspim.com |
안성석 작가는 "미술관에서 영상을 관람할 때 서서 불편하게 보는게 무책임해 보였다. 영상에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어났을 때 우리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살면서 냉소적이고 혼자라는 외로운 편견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하나의 침대를 여러 사람이 같이 쓰고 편안하게 이 작품을 체험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윤두현은 가상과 상상, 실재의 경계를 경쾌하게 넘나들며 컴퓨터 바탕화면 이미지를 사용해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은새는 자신과 주변에서 목격한 부조리, 금기시된 장면을 재해석해 그림 위에 생생히 펼쳐놓는다. 장서영은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스크린 너머로 더욱 선명하게 제시한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 = 안성석 작가의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2019.06.19 89hklee@newspim.com |
정희민은 이미지 사이의 부딪힘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촉각을 탐구한다. 최하늘은 조각이라는 장르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관심사를 3차원 작업으로 보여준다. 황수연은 주변에서 발견한 재료를 탐구하며 그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발견한다.
한편 '젊은모색'전은 올해를 기점으로 격년 단위로 이어진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올해 부활, 향후 격년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해 새롭게 전열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2014년 이후 일시중단된 이유에 대해서는 "국립뿐 아니라 공사립미술관에서도 신진 작가전이 많아지면서 국내 최초, 최고 연혁 신진 발굴 프로젝트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고민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여전히 신진 발굴 및 지원에 국현의 역할 필요하고 이는 미술계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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