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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 대규모 회고전 18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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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작 2점 및 미공개작 일부 첫 공개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전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 추락한다."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박서보(88)가 강조한 신념과 그의 화풍을 만나는 회고전이 마련된다. 18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은 그의 70년 화업과 세계관을 녹인 뜻깊은 자리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신작 앞에서 설명하는 박서보 작가 2019.05.16 89hklee@newspim.com

박서보는 '묘법' 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평생을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서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힘써왔다. 1956년 '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도전했고 1957년 발표한 작품 '회화 No.1'으로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받았다.

이후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를 고찰하며 이른바 '원형질' '유전질' 시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 '묘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을 주도했다.

그에게는 '반국전의 기수'와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그리고 '단색화의 선봉'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 박영란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다.

박영란 학예연구관은 16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 간담회에서 "선생님의 치열함, 치밀함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한국 미술에 여러 방면에 기여한 부분에 감동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박서보 선생이야말로 '권세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다. 고심 끝에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로 전시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하는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에서 공개한 박서보 작가의 신작 2점 2019.05.16 89hklee@newspim.com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오늘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박서보 선생의 개인전을 위한 간담회 자리"라며 "이번 전시는 회고전 성격이기 때문에 아주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펼쳐져 전시장이 풍부해졌다. 박서보 예술세계가 제대로 세계에 퍼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날 박서보 작가는 직접 간담회장과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자신의 70년 화풍의 소개를 1시간이 넘도록 이어갔다. 예술에 대한 확고함과 애정이 묻어나는 말들이 쏟아졌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1960년대 후반 전통문화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 작품은 '유전질' 89hklee@newspim.com

그는 유신정권 당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미술교육자로서 강조하고 실천했던 일들, 그리고 1960년대 달의 무중력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하게 된 스프레이 미술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박서보는 "캔버스를 채우는 게 아니라 나를 비워내야 했다. 그런 반성을 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게 수행의 도구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시는 박서보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2019년 신작까지 작품 및 아카이브 160여 점을 다섯 시기로 구분해 선보인다. 첫 번째는 '원형질'시기다.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두 번째는 '유전질' 시기다.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소개한다.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세 번째는 '초기 묘법'시기다. 어른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연필묘법'을 소개한다.

네 번째는 '중기 묘법'시기다.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한 기법이다.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해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무채색의 연필묘법에서 쑥과 담배 등을 우려낸 색을 활용해 색을 회복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 시기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하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써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2019년 신작 2점이 최초 공개된다.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몸의 한쪽을 움직이기 힘들어졌지만 그는 수행과 치유를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결과가 이번 신작 2점이다. 이 작품 앞에 선 박서보 작가는 "이건 제가 절대 팔지 않을 거다. 10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안 판다. 앞으로 이 그림은 거의 제가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으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박서보의 '허의 공간', 2019 재제작

1970년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상'도 볼 수 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옷만 남아있는 '허상' 시리즈가 2019년 '허의 공간'으로 다시 제작됐다.

'허상' 시리즈는 건축가 김수근의 제안으로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에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얼굴과 손, 발 등 옷 외에 노출되는 부분을 없애고 제작된 인물상이 눈길을 끌었다. 수십 명의 군상입체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하늘을 향해 오르고, 한쪽으로 모래로 관에 묻은 형상이 출품됐다. 이는 반정부성향이라는 작품으로 낙인돼 전시 도중 철거됐다.

박서보, 묘법(描法) Écriture No.080618, 2008,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95x130cm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박 작가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체제나 교양이 아니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다. 그리고 열정도 갖춰야 한다. 이 두가지만 있으면 뭐든지 다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행사'(31일), '작가와의 대화'(7월 5일 예정), '큐레이터 토크'(7월 19일) 등이 개최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 신청할 수 있다.

전시 기간 박서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작가가 추구한 '수행'의 태도를 느껴볼 수 있도록 관객 워크숍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묘법 NO.43-78-79-81'(1981)을 따라 관객이 직접 묘법을 표현해보는 '마음쓰기', 자신만의 공기색을 찾아서 그려보는 '마음색·공기색'이 진행된다.

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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