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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커스토리] 여덕순 KB국민은행 중소기업고객부 차장의 기업금융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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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학력 문턱 넘어 남성중심 기업금융 '도전'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롤모델...여성 기업금융 전문가 꿈"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기업금융이 남성 전유물이란 생각에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여성이라 불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여덕순(45) KB국민은행 중소기업고객부 차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롤모델은 증권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박정림 KB증권 사장이다. KB국민은행에서 1년 계약직 부장으로 시작해 그룹 계열사 CEO에 오른 박 사장. 콜센터 계약직으로 출발한 여 차장은 박 사장처럼 기업금융에서 두각을 나타내 임원이 되는 게 목표다.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새로운 여성 롤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다.

기업금융 내에서도 여 차장이 속한 중소기업고객부는 격전지다. 최근 은행들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와 기업대출 활성화에 맞춰 경쟁적으로 중소기업 고객을 늘리고 있다. KB국민은행이 가계대출 1등 은행에 이어 기업금융까지 선도하기 위해선 여성을 포함해 두터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게 여 차장의 판단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여덕순 KB국민은행 중기고객부 차장 인터뷰. 2019.02.25 mironj19@newspim.com

◆ 女행원 기피하는 기업금융 한계 돌파

시작은 미미했다. 여 차장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반기업 비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이 대부분인 직군이었지만 왠지 겉도는 느낌이었다. 업무 특성상 주도적인 일보다는 보조와 지원 업무가 많았다. 성취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KB국민은행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2000년 콜센터 계약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약직으로 시작했지만 한계를 깨 나갔다. 2005년 시험을 통한 정규직 전환 제도가 생겼는데 그 이듬해 보기 좋게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영업점 창구에서 본격적인 대면 영업을 시작한다.

당시 창구직원들은 예·적금 유치나 카드 발급 등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다. 반면 기업 고객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니즈는 명쾌하게 해결해 주기 어려웠다. 기업대출의 경우 담보가치 평가, 재무제표 분석, 세무 등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개인 실적을 떠나 업무 영역을 좀 더 넓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이유였다.

"한 중소기업 사장이 외환 업무를 보러 은행에 왔는데 모든 자금 결제를 현금으로 하고 있었어요. 은행 신용장을 발행하면 자금 활용에 길이 생기는데 이를 못하고 있었던 거죠. 가끔 중소기업 자금담당 임원이나 경리직원들이 창구를 찾아오면 이런 부분이 필요하겠구나 짐작만 할 뿐 제가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긴 어려웠죠. 고객을 눈앞에서 놓칠 수 없어 그때마다 기업금융 담당 팀장이나 지점장 도움을 받았지만 기업금융에 대한 갈증이 없어지진 않았어요."

2005년 여 차장은 기업심사역 교육 과정을 거쳤다. 영업점 일반 창구에선 여성 인력이 절반 이상인 반면 기업금융전담역(RM) 중 여성 비율은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벽이 그의 도전을 막진 못했다. 6개월간 예비심사역 과정을 마치고 신촌지점에서 기업금융 담당자로 새롭게 출발했다.

"신촌지점엔 기업금융 담당자가 한 명뿐이어서 여성들이 주로 하는 개인영업을 맡으라고 권유받았어요. 이전 경험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박정림 KB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께서 지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저를 기업금융 담당자로 추천해 주신 겁니다. 욕심이 있는 친구니 믿고 맡겨보라고 말이죠."

◆ 세심함·친밀함으로 승부…기업금융 '롤모델' 목표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여덕순 KB국민은행 중기고객부 차장 인터뷰. 2019.02.25 mironj19@newspim.com

기회를 잡은 여 차장은 발로 뛰며 기업대출 실적을 열심히 끌어올렸다. 지역 특성상 임대사업자들이 대부분이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영업했다. 가깝게는 부품제조사들이 많은 인천부터 멀리는 강원도까지 고객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그 결과 기업금융 1년 만에 200억원 이상의 우량 기업대출을 새로 발굴했다. 


그가 직접 부딪혀본 기업금융은 우려했던 한계보다 잠재력이 컸다. 여성 특유의 세심한 업무 처리와 친밀한 마케팅이 더해지면 오히려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 고객이 대부분이고 업무가 방대하다 보니 기업금융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있고, 야근도 잦아요. 낮엔 영업을 다니고 밤엔 담보평가 등 밀린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게 일상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장벽이 되진 않습니다. 남성 고객과 골프를 칠 일이 있으면 치고, 군대나 축구 얘기도 하면서 세심한 배려를 더하면 오히려 강점으로 바뀔 수 있어요."

여 차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기업금융 인력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와 신뢰가 중요한 기업금융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 있는 인력이라는 생각에서다. KB국민은행이 가계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기업금융에서도 선두 은행을 노리고 있는 만큼 그의 책임감은 남다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중소기업대출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금융에서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앞으로는 기업과 은행이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행원 입장에서도 기업대출뿐 아니라 임직원 급여이체, 퇴직연금, 세무상담, 증권사와 연계한 기업공개(IPO) 지원 등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지죠. 앞으로 기업금융 인력 양성 모델을 체계화해 기업금융 전문 여성 임원도 해보고 싶습니다."

yrcho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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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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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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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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