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내용에서 ‘특정 장소’ 기준→‘특정 사람’ 변경
중대 가정파탄사범 ‘구속영장’ 청구…“당연한 시대 흐름”
핵심 ‘반의사불벌죄’ 빠진 점 아쉬움 남아…공은 국회로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정부가 가정파탄사범들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어길 경우 ‘징역형’까지 받게 되며, 상습 가해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또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범죄 실행 직후인 가정폭력사범도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할 수 있게 된다.
정부 대책이 한층 강화됐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당장 전문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 환영한다”면서도 핵심 사안이던 ‘반의사불벌죄’ 논의가 빠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여성가족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관계부처 합동 가정폭력 방지 대책은 근절되지 않는 가정파탄사범에 대한 강화된 대응 및 처벌을 담고 있다. 이번 대책은 지난 10월 22일 발생한 ‘강서구 가정폭력 사건(등촌동 주차장 살인)’을 계기로 마련됐다.
강서구 사건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 살해 협박으로 수차례 거처를 옮겨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대책에서 기존의 거주지와 직장 등 ‘특정 장소’ 기준에서 ‘특정 사람’ 중심으로 변경된 접근금지 내용에 주목한다. 그만큼 피해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수연 법무법인 늘품 변호사는 “피해자 주거권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실효성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주거권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괄한다”며 “접근금지 범위를 사람이 아닌 장소로 특정했던 기존 제도는 피해자 주거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던 셈”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대 가정파탄사범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도 법리적으로나 시대 흐름에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가정폭력으로 받을 수 있는 피해가 치명적인 것이 반해 이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은 미비해, 상습범의 경우 범죄의 중대성이 아무래도 더 높다고 봐야 한다”며 “이번 방지 대책은 국민 법 감정 흐름이나 가해자 심리적 제재 측면에서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이 돼 왔던 반의사불벌죄는 그대로 남아 아쉬움을 준다는 지적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의사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다. 현행 가정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제9조는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 표시를 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 표시를 철회한 경우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한다’고 돼 있다.
그간 여성계에선 해당 조항의 삭제를 주장해왔다. 피해자에게 경제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가해자의 처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가혹하고 2차 피해 등이 직접적으로 가해질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실제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인권 침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와 죄책감에 차마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 변호사 또한 “폭력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형사처벌 단계에서 처벌의사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적 제재를 가해 재범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경찰관들의 현장 판단력이 높아진 만큼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정폭력 현장의 경우, 일반 폭행 현장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등 상황이 아니다”며 “많은 경찰관들이 가정폭력 전문성을 가졌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송 사무처장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실제로 효과를 거두려면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며 “정부가 법률 개정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강력하게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