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오영상 전문기자] 가상화폐의 시장 확대가 반도체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컴퓨터로 암호를 풀어 가상화폐 거래를 승인하는 마이닝(채굴) 전문 업체가 방대한 계산을 고속으로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성능 반도체를 대량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DMM.com’은 지난 2월 이시가와(石川)현 가나자와(金沢)시에 일본 최대 규모의 가상화폐 채굴 시설을 마련했다. 약 500제곱미터의 부지에 고성능 반도체를 탑재한 채굴 전용 기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 등을 채굴한다.
지난해까지 비트코인 채굴에서는 중국 기업이 전 세계 약 70%를 점유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가상화폐 규제를 강화하고 나서면서 일본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DMM 외에도 ‘SBI홀딩스’와 ‘GMO인터넷’이 채굴 사업에 속속 뛰어들었다.
채굴에 사용되는 것은 GPU와 ‘ASIC(특정한 용도로 주문에 따라 제작된 주문형 반도체)’을 장착한 전용 기기다. 그래픽처리나 계산처리 등 특정 기능에 특화돼 있어, 컴퓨터에 사용되는 CPU보다 계산처리 속도가 빠르다.
GPU를 개발하는 미국의 AMD와 엔비디아에는 최근 발주가 쇄도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위탁생산회사인 대만 TSMC의 2018년 매출 중 5~10%가 가상화폐용 반도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채굴에 사용하는 컴퓨터 부품의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대표적인 부품이 GPU와 반도체메모리를 탑재하는 비디오카드이다. 일본의 시장조사회사 BCN에 따르면 일본 전국의 양판점과 인터넷쇼핑몰의 비디오카드 평균 판매가격은 2월 3만1091엔(약 3만10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에 비해 20% 상승한 수준이다.
DDM.com의 비트코인 마이닝 시설<사진=DDM.com> |
◆ 가상화폐 가격 하락과 규제 강화로 전망은 ‘불투명’
반도체 업계에서는 3~5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교차되는 ‘실리콘 사이클’이 이어져 왔지만, 최근에는 가상화폐 채굴 수요에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등의 수요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요가 장기적으로 계속 늘어나는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에 진입했다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가격 하락과 규제 강화로 향후 수요 지속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공존한다. 가상화폐의 가격은 하락 국면에 들어섰고, 아울러 채굴 수입도 하락하고 있다. 또 19~20일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는 가상화폐 규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세계적인 규제 강화에 대한 경계감으로 투기 자금의 유입도 축소되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와다키 데츠야(和田木哲哉) 애널리스트는 “GPU나 ASIC의 재료나 생산설비는 다른 반도체와 일부 공통으로 사용한다”며 “가상화폐용 수요가 감소하면 반도체 업계 전체의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Newspim] 오영상 전문기자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