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양진영 기자] 10년차 베테랑 가수로 누구에게나 인정 받아온 이석훈이 뮤지컬 '킹키부츠'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했다. 아직 낯설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무대 위 단단한 안정감은 혹시나 하는 의심을 모두 불식시킨다.
이석훈이 '킹키부츠' 주인공 찰리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박강현, 김호영과 트리플 캐스트로 어깨를 나란히 했고, 롤라 역의 정성화, 최재림과 호흡을 맞춘다. 말 그대로 '꾼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 상황. 이석훈은 여전히 "아직도 매일 연습한다"면서 긴장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음을 털어놨다.
"아직까지 익숙해지거나 달라진 건 전혀 없어요. 주변에서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말씀해 주시는데, 힘 내라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물론, '아 너무 부족한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대에 오르는 사람은 없죠. 스스로는 찰리라고 생각하며 연기하지만 100% 다 제 의도대로 따라오시는 건 아닐테니까요. 그저 몇 번, 공연 끝나고 '오늘 괜찮았던 것 같아' 싶을 땐 있긴 있었죠."
실제로 이석훈은 "스스로 쉽게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평소 성격을 얘기했다. 그러다보니 첫 뮤지컬 무대를 앞둔 긴장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무엇이 그렇게도 부담스러운지를 물으니, "저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로 가수로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과 그 흔적이 대답마다 묻어났다.
"성격 자체가 좀 걱정도 많고 염려증이 있어요. 평소에 앓는 소리도 자주 하는 편이고. 연습은 지금도 계속 해요. 처음이니까 손톱만큼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죠. 이제는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초반엔 그런 준비가 안돼 있었거든요. 실수하면 끝이에요. 최대한 연습한 대로 하려는 게 목표였죠. 대사도, 가사도 다 외웠고, 이미 다 머릿속에 있는데 너무 떨리니까, 절반밖에 안나온다고 느낄 때도 있었어요. 그게 굉장히 속상하더라고요. 저한테 굉장히 새롭고 어려운 새 영역이고, 꾼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것도 당연해요. 그래도 모르면 그냥 물어봤어요.(웃음) "
이석훈은 '킹키부츠'를 택하게 된 이유를 얘기하며, 여러 차례 뮤지컬 제안을 고사했음을 털어놨다. "그때는 준비가 안됐었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킹키부츠'의 찰리는 이석훈 본인과도, 또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도 꼭 닮은 인물이라서, 그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름대로는 저와 잘 맞고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꼭 하라고 추천도 많았고요. 예전엔 준비가 안됐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죠. 실제로 바쁘기도 했고, 뮤지컬에 신경쓸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가수로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늘 곡을 써야 했거든요. 이번에는 '이거는 해야 해'라고 다들 말씀 하시더라고요. '네가 연기하는 게 그려진다'는 반응에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찰리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포지션이 그런 것 뿐이지 모든 배역의 역할이 다 중요해요. 주고 받는 호흡이나 상대가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죠. 주인공이라 뭐가 특별하진 않았어요. 성격 자체가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아요.(웃음)"
그렇다면 이석훈을 결국 뮤지컬 무대에 세운, '킹키부츠'와 찰리의 매력은 뭘까. 그가 느낀 찰리와 비슷한 점, 또 전혀 다른 점이 무언지 물었다. 이석훈 역시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기에, 찰리를 자연스레 받아들였고 깊이 공감해 연기할 수 있었음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20대, 30대 친구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꿈이 뭔지, 꿈에 대해 쉽게 말할 줄도 모르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됐는데 롤라라는 동료 때문에 부츠를 만들고 꿈을 꾸게 되죠. 너무나 보통 사람이라 매력을 느꼈고,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남의 말에 흔들리고, 주관이 뚜렷한 성격은 아니에요. 그러다가도 맞다 싶으면 찰리처럼 끝까지 밀어 붙이거든요. 음, 다른 점은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쏘아붙이지는 않는다는 점? 오랜만에 화를 그렇게 내봤어요. 의외로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하하."
'킹키부츠'의 수많은 명 넘버 중, 이석훈은 일명 '애증의 곡'으로 'Soul Of Man'을 골랐다. 10년 경력의 가수에게도 너무도 까다롭고, 뮤지컬 무대에서 불러야 해서 더욱 어려운 노래. 그러면서도 이 곡을 끝냈을 때, 오롯이 찰리가 돼서 속내를 다 쏟아낼 수 있기에 시원함을 느낀다고 했다.
"'Soul Of Man'은 발라드의 슬픈 감정을 담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거의 절규하듯이 감정을 쏟아내야 하죠. 아버지를 닮고 싶은데 닮을 수 없고 아버지는 내 곁에 없는 상황인데, 그걸 맨 정신에 부를 수는 없겠죠 찰리도. 끝까지 에너지를 소진시켜야 하는 곡이라서요. 음도 너무 높고, 감정 표현도 해야 하고 너무 너무 떨려요. 제가 딱 걸리는 음이에요. 이걸 오늘 올릴 수 있을까? 하다보니 하고는 있지만 라이브로 뮤지컬에서 처음 불러보는 그런 고음이죠. 거의 애증의 관계죠. 잘 끝내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막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니까. 그게 좋아요."
오랜 시간 가수로 활동하고, 콘서트 무대에 올랐지만 굉장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요즘. 이석훈은 "마치 직장인이 된 듯 하다"고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소감을 얘기했다. 기존과 다른 뮤지컬 무대의 특징을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레 뮤지컬만이 주는 매력에 푹 빠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차원 적으로 콘서트와 뮤지컬은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가수로는 3-4분 동안 가사에 메시지를 빨리 담아서 전달해야 하는데 뮤지컬은 스토리도 있고 호흡이 길어서 충분히 설명할 여지가 있고요. 발음이라든지 발성적인 면도 가요에서는 표현 때문에 달리하는 면이 있는데 뮤지컬은 좋은, 바른 소리로 집중해서 발음하는 게 달라요. 뮤지컬에서 발성이 굉장히 좋으면 사실 소리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공연하면서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꾸준히 하는 것도 굉장히 낯설어요. 회사원이 된 느낌이죠. 그 분들보다는 제가 더 여유있게 하겠지만 다 새로워서 너무 재밌어요."
지금은 '킹키부츠'의 찰리지만, 이석훈은 SG워너비로도, 솔로로도 늘 좋은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래서 가수 이석훈을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을 터였다. 그는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뮤지컬을 향한 끈도 놓지 않았다. 그간 좋은 결과물들을 냈기에, 무엇이 됐든 꾸준히 음악으로 대중과 만날 이석훈의 활약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제가 또 어떤 작품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하긴 섣부르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뉴욕에 가서 '레미제라블'을 봤는데 정말 재밌었던 기억이 있고, 뮤지컬 '빨래'의 넘버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직접 가서 더 보고 들어보고 경험하고 싶어요. SG워너비 앨범은 지금 준비 중이에요. 곡도 써놨고, 워낙 또 잘하는 친구들이라 서로 믿고 있어요. 이제 슬슬 녹음 들어갈 거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제 목표는 그냥 꾸준히 음악하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쉬울 것 같은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지키는 게 장기적인 제 소망이 되겠죠."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사진=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