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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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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0)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휘트먼의 시처럼, 이사도라 던컨은 꽉 끼는 슈즈를 벗어버린 맨발과 코르셋을 벗어버린 맨 몸으로, 내면을 표현하려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무용으로써 승화시킨다. 이 몸짓이 훗날 현대무용의 시초가 된다.
이사도라는 미국의 무용수로, ‘자유무용’을 창시하여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그녀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그들의 숭배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편협한 사람들의 공격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착상과 행동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고 사회의 인습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사도라는 춤의 위대한 개혁자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인위적· 기교적인 제한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움직임의 우아함을 중시함으로써 그때까지 엄격한 형식과 현란하지만 공허한 기술적 묘기의 나열에 의존하던 춤을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나중에 현대무용이 수용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이사도라 예술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연스럽다는 것, 둘째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것, 셋째 음악을 무용에 종속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녀의 무용에서의 자연주의란 인공적인 기교 제일주의의 고전 발레에 대한 반발이며, 자유정신의 찬가(讚歌)였다. 그 결과는 그녀의 로맨틱한 정신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건강미에 대한 강렬한 흠모로 나타났다. 음악 또한 악보와는 상관없이 그 음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감정적으로 무용에 반영시켰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기존의 표현 기교를 답습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표현 그 자체에도 창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무용예술을 소수의 전문가로부터 대중들에게로 개방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 일어난 신무용 운동에 영향을 준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이사도라 역시 젊었던 시절에는 고전발레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반항아였던 그녀는 이윽고 세련되기는 했으나 제약이 많고 인공적인 기법 위주의 고전발레에 의문을 품고, 좀 더 자연친화적이며 자유로운 춤에 대한 동경이 강렬해졌다. 고전발레를 인간의 몸을 기묘하게 뒤틀리게 하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배격했고 자신 또한 곡예사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1927)은 187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파산한 은행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던컨은 은행가이면서 예술과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이자 바람둥이였다. 이사도라는 이런 아버지를 성가신 짐인 동시에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겼다. 파산과 이혼으로 인한 궁핍 때문에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손수 짠 편물을 이 집 저 집 다니며 팔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밤마다 자녀들에게 글을 읽어주었다. 그때 이사도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였는데, 이후 그녀는 자신을 휘트먼의 정신적인 딸이라고도 즐겨 말했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리라. 그리고 내가 취한 것에 그대도 취하리라...”

이사도라 가족은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면서도 언제나 시와 음악을 가까이 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진정한 교육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에 이뤄졌고 학교 교육은 쓰레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녀는 열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남는 시간에 인적이 없는 숲 속이나 해변으로 뛰어가 나체로 춤을 추었다. 그럴 때면 바다와 나무가 그녀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들은 바다와 바람, 어머니가 피아노로 들려주던 음악, 꽃의 개화와 벌들의 비행,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풍광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사도라는 20세가 되던 해 일자리를 찾아 동부로 향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시카고의 무대에 올랐을 때 발레슈즈인 토우를 던지고 타이즈도 입지 않은 채, 맨발과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발레를 했다. 그러자 그동안 기교 위주의 고전발레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비난과 조소를 보냈다. 얼마 후 열린 뉴욕에서의 공연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국에 실망하여 21세가 되는 1900년 유럽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을 떠나면서 돈이 모자라 가축 수송선을 타고 갔다. 유럽에서의 첫 행선지는 영국이었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사도라는 열렬한 박물관 애호가가 되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박물관에 드나들며 특히 그리스 문화에 매료되어 심취하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을 연구하면서 그녀는 자기가 그때까지 본능적으로 추어왔던 춤사위와 자세들이 고전적인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 그리스 석상들을 보며 영감을 얻은 그녀는 훗날에도 그리스 의상과 같은 줄 몇 개로 고정한 넝마 같은 옷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또 그녀는 박물관에 있는 그림 속의 춤추는 동작을 따라 했다. 당시 사람들은 종종 춤을 추면서 길을 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이때 그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달나라에서 왔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맨발의 이사도라 공연장면 <사진=이철환>

마침내 이사도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런던에서 달밤에 춤을 추는 모습이 당시 정상급 여배우 패트릭 캠벨의 눈에 들어 런던 사교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런던 지도층 부인들이 벌인 여러 모임에 초청받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운 춤사위로 춤을 추어 호평을 받는다. 당시 쇠퇴기에 들어선 기존의 발레에만 익숙해 있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극장과 발표회장은 숲의 요정처럼 옷이라곤 별로 걸치지 않은 채 맨발로 춤추는 이 젊은 여성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덜 입고 나온 듯한 옷차림과 맨발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짧은 시간 안에 유럽 예술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사도라는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공연하고, 각지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자유댄스’를 발표하여 갈채를 받는다. 특히 독일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지를 획득했다. 독일은 ‘발레가 없는 나라’로 불려 육체문화 운동이 활발했는데, 이사도라는 그 운동에 큰 영향을 주고 독일 신무용의 탄생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904년 베를린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이후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에도 학교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녀가 유럽 생활을 하는 동안 현대무용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등 무용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사도라의 사생활 또한 세간의 금기들을 줄곧 거부한 탓에 그녀의 예술만큼이나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결혼을 혐오하던 무대장치가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와의 사이에서 딸 데어도르를 낳았고, 미국의 재력가 패리스 싱어와의 사이에서 아들 패트릭을 낳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그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으로 자리 잡는다.
비 내리는 4월의 어느 봄날, 이사도라는 두 아이와 보모를 데리고 파리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춤 연습 때문에 지루해할 아이들을 집으로 먼저 돌려보냈는데, 그때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탄 자동차는 센 강을 따라가다 강으로 추락해 모두 익사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녀는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그 이후 파리 시민들은 미친 듯이 아이들 이름을 울부짖으며 센 강변을 뛰어다니는 이사도라를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슬픔을 잊기 위해 무용학교를 새로 설립하는 일에 몰두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어 남미· 독일· 프랑스에서 순회공연을 가졌으나 성과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1920년 모스크바로부터 초빙을 받게 된다. 당시 모스크바는 이사도라와 같은 혁명적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비쳐졌고, 또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기도 했던 이사도라는 이를 수락했다.

이사도라는 모스크바에서 17세 연하의 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을 만난다. 그런데 그와의 만남은 이사도라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예세닌이 대단한 천재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미치광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그녀는 엄청난 고통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사도라의 눈에는 예세닌이 마치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금발의 아들 패트릭처럼 보였다. 그는 작은 키에 가냘픈 체구, 눈부신 금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와도 같은 한없는 이해와 염려 그리고 헌신이었다. 이사도라는 오랜 망설임 끝에 1922년 그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사도라는 예세닌과 살면서 한순간도 평화로울 때가 없었다. 예세닌은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증상을 보였고, 술에 취하면 폭언을 퍼붓고 구타까지 일삼았다. 또 명품에 광적으로 탐닉하는 낭비벽까지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함께 살던 그녀 역시 점차 망가지고 있었다. 비참한 현실을 잊으려는 듯 항상 술에 취해 있었기에 춤 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사도라는 그와 헤어지지 못한 채 매달렸다.
이 무렵 이사도라는 예세닌과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떠났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인 남편을 둔 이사도라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는 몸이 많이 불어 있었고 춤 기량도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공연 도중 나체에 가깝게 흘러내린 의상 때문에 그녀는 ‘공산주의자’, ‘매춘부’, ‘천박한 댄서’ 등으로 미국 언론에 묘사되었다.
그때 이사도라는 이렇게 반박했다. “왜 내 몸의 일부가 노출되는 것을 조심해야 하지요? 그것이 무엇인가를 상징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며 청교도주의의 속박과 편협한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신체를 숨기는 것이 외설적인 것입니다. 내 몸은 내 예술의 성전입니다.”

안녕, 친구여, 안녕.
사랑하는 친구여, 그대는 내 마음속에 있네.
예정된 이별은 미래의 만남을 약속한다네.
안녕, 친구여, 안녕, 악수도 작별 인사도 나누지 말자.
슬퍼하지 마라. 슬픔에 꺾이지 마라.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산다는 것 역시,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지.

1925년 예세닌은 《잘 있거라, 벗이여》란 시를 남기고 서른 살의 나이에 손목을 그어 자살한다. 이후 이사도라는 니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망가지고 있었다. 초라하고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말년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타고 가던 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말려들어가 질식사하게 된다. 그날 그녀는 생전 예세닌이 탐닉하던 붉은색 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뚜껑이 열린 오픈형 스포츠카에 올랐다. 새로 알게 된 남자와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차는 출발했고, 그녀의 목을 감싼 긴 스카프는 차 뒷바퀴에 감겼다. 가녀린 목은 순식간에 꺾였고, 그렇게 그녀의 생은 끝났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타오르는 양초 사이에 누운 시신 옆에는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이사도라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생전에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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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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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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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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