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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카이저수염의 천재 괴짜화가, 살바도르 달리

기사입력 : 2017년12월19일 12:30

최종수정 : 2017년12월19일 12:3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8)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앙드레 브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자신이 이미 천재로 태어났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도무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초현실적일 수밖에!
기계적인 것,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 일상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의 눈과 사고에 신선한 충격을 주어 현실 너머의 초현실과 의식 너머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달리의 특별한 표현방식은 틀에 박힌 20세기 예술의 흐름을 단숨에 전복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보다 20세기 미술에 더 큰 족적을 남긴 미술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독창성과 상상력은 그림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기벽들은 전설이 되었다. 죽기 전에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팔렸던 화가는 흔치 않다. 그러나 피카소와 함께 살바도르 달리는 살아 있는 동안 작품들이 비싸게 팔려나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생활의 유복함으로 따져본다면 그는 고흐나 모딜리아니의 정반대편에 있었다고나 할까!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넘어서 버렸다. 초현실을 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곳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로서 나의 성공은 내가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고전주의로 돌아가야만 했다. 완성해야 할 작품이 하나 남아 있었고, 그 작품을 완성하려면 내 여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판이었다. 광기 아니면 삶!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생생히 살아 있을 나와 광인의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라고 말했다.

달리의 화폭에는 그리고자 하는 오브제가 몽땅 녹아 들어가 흐늘거리고 있다. 마치 난로 옆에 놓인 치즈처럼 달리 옆에 가면 흐늘거리면서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매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의 1931년 작품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은 흐늘거리는 시계의 이미지가 매우 강력하게 남아 있다.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녹듯이 흐늘거리는 시계들이 사막풍경에 늘어져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이 유명한 늘어진 시계 모티브는 카망베르 치즈에 대한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은 달리가 두통에 시달려 친구들과 같이 극장에 가기로 한 약속 장소에 부인 갈라만 보내고 집에 혼자 남아 우연히 그린 것이다.
당시 작업 중이던 풍경화에 그려 넣을 오브제가 떠오르지 않아 불을 끄고 작업실을 나가려는 순간 두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보였다. 그 중 하나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척하니 걸쳐져 있었다. 이 작품을 순식간에 완성한 뒤 극장에서 돌아온 갈라에게 공개했다. 눈을 감게 하고 그림 앞에 앉게 한 뒤 하나, 둘, 셋을 세고는 눈을 뜨게 했다. 그림을 본 갈라는 자신이 어떤 공연을 보고 왔는지 완전히 잊을 정도로 감탄했다. 그림이 그녀의 조금 전 기억을 모두 앗아간 것이다.

‘기억의 지속’, 캔버스에 유채, 24×33cm 뉴욕 현대미술관 <사진=이철환>

달리는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 부적응 장애는 예술가로서는 축복받은 일이기도 했다. 달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장애를 자랑했다. 그는 완벽하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천재임을 태아 적부터 인식했다.
어느 날, 달리는 독일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시인 에드워드 제임스와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방문하러 갔다. 달리는 편집증에 관해 발표한 자신의 글을 노대가에게 봐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무심하게 대했다. 달리가 물고 늘어지자 프로이트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완벽한 스페인 사람의 원형은 내 처음 봤소. 이 광적인 집요함이라니요!”

화가로서 달리는 잘 훈련된 지성과 놀라운 독창성, 기괴하고 파격적인 옷차림 등으로 유명하다. 자서전 또한 그의 그림처럼 놀라운 작품이다.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는 달리가 1941년 서른일곱 살 되던 해에 직접 저술한 그가 남긴 유일한 자서전이다. 여기에도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로 꽉차있다. 그래도 그가 천재여서 읽힌다. 광기로 가득했던 20세기 대표 화가인 달리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불렀다. 달리는 자신이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고 큰소리친다. 풍부한 색감의 언어로 자궁 속의 세상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의 그런 태도가 역겹거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문장으로 읽힌다. 이것은 달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는 자신의 호적 신고를 하던 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교회의 종들을 울릴지어다.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여, 지중해의 북풍에 뒤틀린 올리브나무처럼 굽은 허리를 바로 세울지어다. 그리고 경건한 명상의 자세로 못 박힌 손바닥에 뺨을 기댈지어다. 보라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났도다!” 그리고 이런 글도 있다. “불행하도다. 그대들 모두여!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둘지어다! 내가 죽는 날은 사정이 다를 것이니!”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1904년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라스에서 태어났다. 달리의 이름 살바도르는 죽은 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달리는 고집불통에다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6세 때의 꿈은 요리사, 7세 때는 나폴레옹이 되기를 꿈꾸었던 달리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이라는 대 참사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나갔다. 어쩌면 그의 독창성은 유년기 시절 태동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같이 자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17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절에 달리는 다른 천재들을 만나고 친교하게 된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낸 시인 로르카와 영화감독 부뉴엘을 만났다. 로르카는 달리를 천재로 인정하는 스페인의 시인이었다. 훗날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으로 로르카가 어처구니없이 처형당하자 달리는 그 때의 심경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과 심지어는 프랑코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들까지도 로르카의 죽음을 이용하여 수치스러운 선전선동을 일삼았다. 오늘날 로르카를 보라! 어떻게 되었나? 그는 정치적 영웅이 되어 있다. 한때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나는 이제 신과 역사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는 바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100% 순수한 시인이었으며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독재와 인권이 유린되는 시대의 가련한 희생양이었다.”

20대 초반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의 학생 시절, 달리는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보고 그림을 그렸다. 성모 마리아의 고딕 조각을 보고 ‘눈으로 보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라는 교수의 과제에 광고지에서 본 저울을 그려낸다. 자기 자신이 세기의 천재라고 확신하고 있던 달리는 고딕 조각의 성모 마리아를 저울로 그렸고, 그 그림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교수에게 “선생님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 고딕 성모상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울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파행적인 행동과 반정부 활동 혐의 등으로 그는 정학처분과 감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되는데 이유는 미술사 과목의 답안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심사위원보다 자신이 더 완벽하게 답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달리에게 파리는 고향 다음으로 각별한 장소이다. 20세기 초 파리는 세계 예술가들의 둥지이자 무덤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 파리에 가서 피카소를 만난다. 스페인 출신 두 거장의 만남이었다. 이미 대가인 피카소와 한참 혈기 방장한 달리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평행선을 그으면서 살게 된다. 피카소 외에도 파리에서 여러 유명 인사들을 만나 그들과 친숙하게 지냈다. 그 중에서도 디자이너 코코 샤넬,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등과 같은 초현실주의 그룹들은 그의 활화산과 같이 타오르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달리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했다. 이전에 다다주의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이 이끌었던 초현실주의 그룹의 미술가와 작가들은 합리적 사고에 좌우되기 쉬운 개념이나 이미지를 거부하고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영감을 찾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신념을 좇는 것을 거부한 후에 달리는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배제되었다. 그는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열었다. 달리는 뉴욕에서 영화, 연극, 패션,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은 1945년 정신분석학적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드(Spellbound)》를 찍을 때 미술감독이 필요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였다. 당연히 달리는 이 최고의 영화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달리는 옥상, 피라미드, 무도회장, 도박장의 네 장면에서 커다랗게 확대된 가위가 커튼에 그려진 눈을 자르는 장면을 제작했다. 그러나 달리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부분의 기획안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라서 실행되지 못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달리였지만 여자관계는 이상할 만큼 다른 여느 예술가들과 달리 매우 순수하고 깨끗했다. 일생동안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을 사랑했는데 바로 갈라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달리에게는 갈라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을 바라보기만 하던 단테와 다르게, 달리는 갈라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다.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자 하늘이고 땅이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갈라는 시인이자 달리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고, 10년 연상이었다. 하지만 둘은 바로 사랑에 빠지고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만난 지 한참 후 엘뤼아르가 사망하자 정식으로 결혼하게 된다. 이후 갈라는 허공에 붕붕 떠다니는 천재 달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 데 온 인생을 바친다.
갈라를 만나기 전의 달리와 그녀를 만난 후의 달리는 달랐다. 달리의 사랑은 유아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갈라는 자신과 결혼 후에도 다른 남자와 염문을 뿌리고 다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를 사랑하고 또 의지했다. 1930년 대 초부터 달리는 갈라 이외의 여자는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그림에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라는 서명을 했다. 왜 그림에 갈라의 이름을 넣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의 그림들은 거의 다 갈라의 피로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89세를 일기로 갈라가 세상을 떠나자 달리는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로 사주었던 스페인의 푸볼 성에 안장했다. 그 후 달리는 파킨슨병과 자살 기도, 침실 화재로 인한 수술을 받으면서 매우 불안하고 힘든 노년을 보낸다. 그는 결국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 등으로 응급실을 오가다 1989년 1월 23일 여든 다섯 살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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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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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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