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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예술과 여자를 동시에 탐하다, 피카소

기사입력 : 2017년12월15일 12:30

최종수정 : 2017년12월15일 12:3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6)

현대 회화사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사진의 등장'일 것이다. 사진의 등장은 그 동안 자연이란 대상을 시각화해낼 수 있는 특권적 권리를 누려왔던 화가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회화와 사진은 경쟁자이자 동시에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일은 사진에 맡기고, 스스로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확인코자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자신들의 인상, 시각과 시선을 그림에 개입시키며 사진과는 다른 회화만의 별도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인상파시대를 지나면서 활동한 피카소는 이로부터 더 나아가 ‘큐비즘(Cubism, 입체파)’이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열어나가게 된다. 큐비즘이란 평면의 화면에 입체감과 깊이를 부여하는 화풍을 말한다. 피카소는 동료 미술가인 브라크와 함께 3차원적인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입체주의 양식의 독창적인 기법과 이론들을 정립시켰다.
그는 일상의 진부한 재료를 변용한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 콜라주(collage),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작업을 통해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화면에 신문지· 우표· 벽지· 상표 등의 실물을 붙이는 기법이 파피에 콜레이며,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 조각· 모래· 나뭇잎 등을 붙이는 것은 콜라주이다. 이에 비해 아상블라주란 아예 화면을 사용하지 않고 일상품을 한데 모아 구성한 미술품을 뜻한다.
이처럼 피카소의 주요 관심사는 미술가의 창조적 사고, 변형능력, 그리고 미술이 아닌 것에서 미술을 창조해내는 능력 등이었다. 이런 그의 사고는 예술이란 자연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내세운 젊은 초현실주의자들과 비슷하다.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 1973)는 1881년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는 결코 어린아이처럼 데생한 적이 없다. 열두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그런 천재성의 일단은 여러 군데서 나타났다. 그는 나이 제한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 미술학교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또 스페인의 미술전통을 소화해 열다섯 살 때에는 풍속화, 초상화를 능란하게 그려냈다.
1900년 그가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다음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다. 파리에 둥지를 틀게 된 피카소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파들의 작품을 접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 고흐의 열정적 표현주의 등의 영향도 받았다. 당시 피카소는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인내하며 지냈다. 하지만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1904년에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작가들의 모임에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피카소의 작품세계는 흔히 ‘청색 시대(1901~1904)’, ‘장미 빛 시대(1905~1907)’, ‘원시 시대(1908~1909)’,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1908~1912)’,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1912~1913)’ 등으로 나뉜다. 청색 시대의 작품들은 우울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장미 빛 시대에는 핑크색과 오렌지색의 색조가 두드러진다. 원시 시대에는 고대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미술, 그리고 오세아니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선구적인 작품인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선보였다. 인물들을 각지게 묘사한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이와 함께 피카소의 화풍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카소는 초기 파리생활이 어려울 때 주로 거지와 가난한 가족 등을 그렸다. 특히 당시 파리에서 동고동락하였던 절친한 친구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의 비극적인 자살은 그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연히 그의 화면은 청색 단색조의 차가운 색조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던 중 그의 첫 여자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만나게 되면서 점차 짙은 우울에서 벗어나 장미 빛 시대를 열어나간다. 이즈음 그는 파리에서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만들게 된다. 시인 아폴리네르, 화가 마티스와 모딜리아니 등도 포함되어 있다.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은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의 무차별 폭격으로 황폐화 된 게르니카 시가지의 참극을 듣고 분노해 그린 그림이 《게르니카(Guernica)》이다. 이 그림은 3.5m × 7.8m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작품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붓이 아니라 롤러로 그림을 그렸다. 거대한 캔버스에는 회색과 흰색의 색조만이 칠해졌는데, 이는 참사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속의 황소, 말, 백열전구, 믿기지 않는 공포에 괴로운 표정으로 허둥대며 달리는 사람들, 꽃을 든 팔, 부서진 검 등은 전쟁의 공포와 참혹상을 송두리째 담고 있다.
피카소는 이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피카소는 “스페인이 민주화되기 전에는 《게르니카》를 스페인에 걸 수 없다”고 했으며, 프랑코가 죽고 1981년이 되어서야 이 걸작은 스페인으로 반환되었다. 지금은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별도 전시실에 전시되어있다. 이런 일화도 있다. 나치의 파리 점령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렸나?”라고 물었다. 이에 피카소는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화, 349x776cm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이철환>

피카소처럼 살아 있는 동안 인생을 다양하게 정열적으로 즐기고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또 영향력까지 가졌던 예술가가 또 있을까?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하여 그림, 판화, 조각, 데생, 콜라주, 도자기 등 모두 4만 4천여 점의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그림 중 1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만 해도 《알제의 여인들》,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 《파이프를 든 소년》 등 3점이나 된다. 미술 경매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인 《알제의 여인들》이란 작품의 가격은 무려 1억 7,936만 달러였다. 그 어떤 화가들보다 압도적이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20세기 미술을 지배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다른 모든 미술가들은 상대적으로 그의 그늘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피카소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양식과 매체를 변경해가며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때로는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조르주 브라크, 앙리 마티스, 페르낭 레제와 같은 동시대의 미술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아실 고르키 등 후대의 미술가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그는 인간의 자유와 독창성을 사랑하고 또 표현해 내기를 갈망한 진정한 예술가이자 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피카소도 세월의 무게를 어쩌지 못하고 1973년 93세의 나이로 프랑스의 액상 프로방스 근처 무쟁의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피카소는 작품의 수만큼이나 많은 여인들과의 염문으로도 유명하다. 23세 때 만난 첫 여인을 시작으로 72세에 만난 자클린 로크까지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하였다. 7명의 여인들과 동거했고 2번 결혼했다. 후세의 평론가들은 피카소에게 있어 여인이란 존재는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을 것으로 평가한다.
피카소의 나이 23세가 되던 1904년, 그는 파리에서 유부녀인 동갑내기 프랑스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게 된다. 모델이었던 그녀는 피카소가 처음 사랑한 여인이었다. 키가 크고 균형 잡힌 육감적인 몸매와 검붉은 머리칼을 지닌 그녀는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가난한 시절 ‘청색 시대’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는 그녀의 헌신적 도움으로 침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 빛 시대’로 변신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1907년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다.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는 큐비즘을 개척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피카소는 페르낭드에게 등을 돌린다. 자유를 갈망하던 피카소는 그녀의 깔끔함과 상류사회 지향의 기질에 갑갑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피카소는 1911년, 9년에 걸친 페르낭드와의 동거를 끝내고 친구 마르쿠스의 연인 에바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이 여인은 피카소가 차갑고 날카로운 분석적 큐비즘을 버리고 격정과 선율에 가득 찬 종합적 큐비즘으로 들어설 때 인도자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에바는 1915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피카소의 세번째 여인인 올가는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로 귀족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장 콕토의 발레 《퍼레이드》에 무대미술을 맡은 피카소는 36살에 25살의 발레리나 올가와 처음으로 정식 결혼을 한다. 둘 사이에 첫아들 파울로를 낳는다. 그러나 올가가 피카소와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오히려 피카소와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결혼 4년 만에 부부관계는 파경을 맞는다.

1927년 피카소의 나이 45세가 되던 해, 그는 관능미 넘치는 17세 금발의 소녀 마리 테레즈를 6개월 동안 쫒아 다닌 끝에 걸작 《거울 앞에 선 처녀》의 모델로 세운다. 그녀는 22살 때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인 딸 마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녀가 세련되지 못하고 무식하다며 버리고 떠난다. 피카소가 숨을 거둔 지 3년째, 피카소를 만난 지 50년이 되는 날, 그녀는 피카소를 저승에서도 보살펴야 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남은 불행한 여인이었다.
나이 54세가 되던 1936년 피카소는 29살의 사진작가이자 그의 다섯 번째 여인이 되는 도라 마르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피카소 작품에서 ‘우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피카소와의 이별로 정신착란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불행한 여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44년, 62세의 피카소는 20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류화가 프랑스와즈를 만나 함께 살며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의 그림 속에서 그녀는 빛나는 태양이나 꽃으로 표현된다. 프랑스와즈는 피카소가 자신의 친구와 외도를 하는 것을 알고는 이를 용서하지 않고 그를 떠나게 된다. 자발적으로 피카소 곁을 떠난 유일한 여성이었다.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와 이별 후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asso)》이란 책을 발표해 피카소와 함께한 10년간의 생활을 솔직히 고백했다. “저는 저희 아버지나 남자친구와는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보다 3곱절 연상인 당신과 말이 통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나이 72세가 되던 1953년, 피카소는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를 해준 마지막 여인인 재클린이라는 이혼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8년간의 동거 이후 1961년 34살의 나이에 80세의 피카소와 결혼한다. 그리고 피카소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한다. 그녀는 피카소에게 헌신적으로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피카소가 죽은 후 재클린은 방에 걸린 검은 커튼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피카소의 망령을 위해 식탁에 피카소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노래를 들려주거나 기이한 의식을 치르곤 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여인들과 후손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피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 테레즈는 목을 매 자살했고, 재클린은 1986년 10월 15일 피카소의 105번째 생일을 앞두고 피카소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가와 피카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파울로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 또 피카소의 손자 중 한사람인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약을 먹고 자살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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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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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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