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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20세기 건축계의 위대한 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기사입력 : 2017년12월14일 15:22

최종수정 : 2017년12월14일 15:22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5)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한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밝히시오”.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입니다.” 재판관이 어떻게 그런 답변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소이다.” 그 남자가 바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이다.

라이트는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이 지대했던 건축가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거장 건축가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축 설계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인사로나 작품세계로나 시끌벅적한 논쟁과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2000년 미국건축가협회에서 20세기 10대 건축물을 선정했다. 그런데 그중 4개가 라이트의 건축물이었다. 그는 또 오늘날 시카고시가 건축의 도시로 찬사를 받게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871년 대화재로 폐허가 된 시카고 시의 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시카고를 현대건축물의 보고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사람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는 1867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위스콘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가난한 집안이라 학비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이로 인한 불화로 아버지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라이트는 고학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1887년 시카고로 가서 근대건축의 선구자 루이스 설리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배웠다. 루이스 설리번은 현대 디자인에서 명언으로 평가받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라이트는 1889년 시카고 근교의 오크파크(Oak Park)에 자신의 집을 짓고 건축가로서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는 여기서 첫 번째 아내와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이 집은 이후로 세 번의 증축을 거쳐 홈 앤드 스튜디오(Home and Studio)로 거듭난다.
이 시기 라이트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건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해 1894년에는 독립사무소를 열어 본격적인 건축사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루이스 설리번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아가 ‘시카고파’를 이끌면서 미국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시카고파는 1880년대 초~190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 활약한 근대 건축가 그룹을 말하는데, 치장을 중시하던 기존 건축양식을 타파하고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철골구조와 넓은 유리창을 특징으로 하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한편,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전성기를 보이던 1911년 기존의 오크파크 저택과 조강지처 부인을 버리고 위스콘신에 내연녀와 함께 살 새로운 저택 《탈리에신 이스트》을 지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애리조나에 《탈리에신 웨스트》을 세웠다. 그런 뒤 이 두 곳에서 제자와 함께 기거하면서 신예 건축가 양성에 힘썼다.

라이트는 일본과도 인연이 깊다. 1893년 콜럼버스의 미국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은 호오덴 사원을 본뜬 전시관을 세웠는데, 라이트는 이때 처음 일본 전통건축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후 일본 건축과 예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라이트는 1906년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일본의 예술과 동양철학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에는 동양의 사상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실제로 《동경 제국호텔》과 《자유학원》을 설계하기도 했다.
동경제국호텔은 내진과 방화에 대비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설계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예정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다. 그런데 호텔이 완공된 다음해인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동경의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거나 화재에 휩싸였다. 그러나 제국호텔은 멀쩡했다. 이것은 건축가 라이트의 명성을 또 한 번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을 관찰하라. 자연을 사랑하라. 자연과 가까이 하라. 그런다면 자연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라이트는 이세상의 모든 구성물은 서로 내면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으며 고립된 것은 없다고 보는 세계관 즉 ‘유기적 세계관(有機的 世界觀)’에 바탕을 둔 건축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주변의 자연적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건물은 상자와 같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실내와 외부 환경이 서로 넘나드는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기본원리에 충실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이트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르코르뷔지에와 쌍벽을 이루며 비교된다. 르코르뷔지에는 도시와 기계를 찬양하며 대량생산에 의한 효율을 주장하면서 이후 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반면 라이트는 자연적인 건축과 환경적인 건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라이트의 자연주의 건축철학이 가장 잘 반영되어 나타난 건물은 그의 후원자였던 에드거 카프만의 여름 별장인 《낙수장(Falling Water)》이다. 1939년 완성된 이 저택은 폭포 위에 지어져 자연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위대한 건축으로 손꼽히는 이 건축물은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 근교에 위치한 여름 별장 ‘낙수장(Falling water)’ 전경 <사진=이철환>

그러나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뉴욕에 소재한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라 하겠다. 건축주인 구겐하임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술관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라이트는 그 요청을 훨씬 뛰어넘는 건축물로 화답했다. 미술관 건물 전체의 모습은 아래보다 상부가 넓은 달팽이 모양 내지 원통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라이트는 기존 맨하튼의 직선적인 건축 형태나 미술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모두 깨트려 놓았다. 그동안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평평한 바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건물 전체가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 없이 이어진다. 바닥과 벽, 천장이 함께 흘러가는 모양을 통해 공간과 구조의 유기적인 흐름을 추구한 것이다. 결국 라이트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곡선과 연속적인 공간을 실현함으로써 향후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사후 반년 뒤에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 구겐하임 미술관 본관 이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미술관 분관이 있다. 다름 아닌 스페인 빌바오 시에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프리츠크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여타 다른 미술관과는 달리 전시된 작품보다도 미술관 건물이 오히려 더 유명하다. 미술관 자체가 설치미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의 존재만으로 쇠락해가던 공업도시 빌바오가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모하였다. 여기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라이트는 40대에 이미 건축가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며 건축주였던 친구 부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이후 건축가로서의 활동도 뜸해지고 20년 가까이 잊힌 건축가가 되어 갔다. 그래서 건축가로서 황금기라 할 수 있는 50대를 거의 공백기로 보냈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 어려운 시기를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연마의 시간으로 삼았다. 마침내 그는 60세 이후 세기적 걸작인 《낙수장》을 발표함으로써 화려하게 다시 일어섰다. 그로부터 연이어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걸작들을 발표하였다.

라이트의 사생활은 한마디로 자유분방했다. 바람둥이 기질과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그는 쪼들리는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어 비싼 옷을 사 입고 고급 자동차를 몰면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그의 사생활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고객들이 그와의 비즈니스를 회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라이트는 나이 42세가 되던 1909년, 20년 동안 같이 살며 6명의 자녀를 낳아준 조강지처 캐터린을 버리고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프랑스로 건너가서 자신의 고객인 사람 아내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이 내연녀와 함께 버젓이 고향인 위스콘신 스프링그린으로 돌아와서 둘이서 살 개인주택 겸 작업실을 지었다. 그 주택이 유명한 《탈리에신(Taliesin)》이다.
당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결혼은 인간의 굴레가 아니다. 사람이 개인적 자유와 결혼 생활의 노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 간통은 세상과 맞서는 진실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위선적인 사회관습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사생활에 얽힌 스캔들로 인해 주변의 비난을 받았고, 마침내 비극적인 사건까지 발생한다. 1914년, 그의 주택 겸 작업실인 《탈리에신》 관리를 맡고 있던 남자가 라이트의 내연녀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라이트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곧 바로 탈리에신 복구 작업에 나선다. 이 때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맡은 일이 도쿄의 제국호텔이다.
그리고 제국호텔이 완공되던 1922년 그는 첫 부인과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아내를 맞게 된다. 그런데 1925년 기껏 복구한 탈리에신 주택이 또다시 불타 사라진다. 화재 당시 이웃 주민들은 화재진압을 돕기는커녕 라이트가 수집해 놓은 동양의 예술품들을 훔쳐갔는데, 그만큼 주변의 미움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와도 결혼생활 5년 만에 이혼하게 된다. 이후 동유럽의 귀족 출신 여인을 세 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모처럼 삶의 안정을 찾게 되고 이후 죽는 날까지 건축 설계 작업을 계속했다.
한평생을 논란 속에서 살았던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걸작들을 남긴 채 92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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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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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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