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미국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의 경제적 성과는 2500억 달러(약 279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구속력이 없고 실행된다고 해도 수년이 걸리는 거래라 실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대한 숫자로 '협상의 명수'라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것이 사실 진지한 대화를 피하려는 중국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겉으로는 극진한 대접과 거대한 액수가 적힌 돈봉투로 트럼프 대통령을 빛나게 했지만 실제로 이번 양국 정상회담의 승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라는 평가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현지시간) 2500억 달러라는 헤드라인 수치는 인상적이지만 이날 공개된 15개의 협약이 대부분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형태로, 실현된다고 해도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거래를 세계 최대 경제 국가들의 '윈-윈(win-win)' 협력이라고 자부했다. 시 주석은 중국이 중국의 시간표와 로드맵에 따라 시장을 개방할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협상의 명수'로 보이게 하는 것 말고는 미국 측에 큰 성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뉴시스> |
◆ "트럼프 위한 쇼…실체 없다"
컨설팅회사인 APCO월드와이드의 제임스 맥그리거 중국 부문 대표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것은 그저 모든 거래를 쌓아 큰 수치를 얻는 낡은 방식의 방문"이라며 "미국과 중국이 막 유대관계를 쌓기 시작한 때에 매우 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협상력을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말했다.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휴고 브레넌 아시아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이 같은 거래는 양자 교역 관계 변화에 대한 진전 부족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협상의 명수로 보이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으로부터 분명한 합의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계획이나 준비의 부족이 이같이 어정쩡한 성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성 확대나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합의의 부재는 2500억 달러라는 큰 숫자 뒤에 숨어있다. 미국 기업들은 각종 규제로 중국에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의 서비스는 중국에서 차단돼 있으며 포드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 등과 같은 자동차회사들도 현지 합병회사를 통해서만 영업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들도 엄격한 쿼터제를 적용받는다.
꽤 구체적으로 보이는 거래들도 그 실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가령 중국 국영 항공기 조달 지주회사(China Aviation Supplies Holding Co.)는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으로부터 370억 달러에 달하는 300대의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했지만, 이 중 몇 대가 신규 수주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 중국 무역 관행 톤다운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에게 2500억 달러라고 적힌 돈봉투를 건내주면서 오히려 실익을 챙긴 것은 시 주석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대해 "누가 다른 나라를 이용해 자국민을 위하는 나라를 비난할 수 있겠냐"면서 "나는 중국에 커다란 신뢰를 준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으로 미국에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안겨주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중국을 위안화 가치를 낮춤으로써 교역상 우위를 점하는 환율 조작국이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간 중국의 무역 관행에 대한 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에 대해 자국의 전 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사실은 나는 이 같은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증가하게 한 전 정부들을 비난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이 태도를 바꾸면서 그가 중국의 전략에 넘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맥스 바쿠스 전 중국 주재 미국 대사는 블룸버그TV에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의 방식으로 그들이 사기를 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2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수치를 내놓은 이번 만남이 중국이 진지한 대화를 피하고자 설계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뉴스핌 Newspim] 김민정 특파원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