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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장미를 사랑한 로맨티스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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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7)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 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릴케는 '가을 날'을 이렇게 시로 표현하였다.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을 자아내는 이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야말로 시인의 대명사다. 세계인에게 가장 많은 애송시를 제공한 시인이다. 또 그는 여인과 장미를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다.

스위스 라롱에 있는 릴케의 무덤과 묘비명 <사진=이철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187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교로서 입신을 꿈꾸었으나 실패하고 제대하여 하급관리가 되었다. 허영심 강한 어머니는 결혼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처럼 릴케는 어린 시절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어머니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낳은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자 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드러낸다. 죽은 딸을 잊지 못한 어머니는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웠다. 그래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고 자라야 했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릴케는 따뜻하지 않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게 된다.

1886~1890년까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육군 군사학교에 적을 두었으나, 섬약한 시인의 감수성을 타고난 데다 병약한 릴케에게는 군사학교의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1891년에 신병을 이유로 중퇴하고 말았다. 그 뒤 20세 때인 1895년 프라하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예술사와 문학사를 공부하였고, 곧이어 1896년 뮌헨 대학으로 옮겨 예술사, 미학 등을 공부하였다.

1897년, 릴케는 성공한 작가이자 평론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열네 살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게 된다. 루 살로메는 릴케의 인생과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99년과 1900년 2회에 걸쳐서 루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를 여행한 것이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떨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또 릴케는 1902년에는 파리로 가서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다. 로댕과 한집에 기거하면서 로댕 예술의 진수를 접하게 된 것도 그의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6월 스위스의 어느 문학 단체의 초청을 받아 스위스로 갔다가 거기서 영주하였다.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나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Sonnette an Orpheus)' 같은 대작이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릴케의 문학이 처음부터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독학하다시피한 문학청년 시절에 첫 시집을 냈으니, 미숙했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릴케가 처녀시집 '삶과 노래'를 낸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사실 첫 시집을 비롯하여 루 살로메를 만나기 전까지의 시들은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 다만, 격정을 숨기지 않는 청년의 감수성은 십분 느낄 수가 있다.

루 살로메를 만나 러시아 여행 등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되면서 릴케의 문학은 바야흐로 날개를 달게 되었다. 1905년에 씌어진 '기도시집(祈禱詩集)'을 통해 비로소 릴케는 평단과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1907년 발표한 '신 시집'에서는 한층 더 성숙된 그의 시세계를 선보인다. 또한 이 무렵 로댕과 함께 일하면서 조각의 세계를 통해 사물을 보는 눈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1910년 만들어진 소설 '말테의 수기'도 릴케 문학의 완숙기에 창작된 중요한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에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수기 형식으로 담은 이 소설은 릴케의 문학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신 시집'에 대응되는 산문으로 된 작품이다. 그동안의 시들이 상징주의자의 순수시였다면, '말테의 수기'는 실존주의자적 관점으로 만든 첫 작품이라 할 것이다. 다만 좀 난해한 측면이 없지 않다. 여하튼 이 대작을 발표한 이후 그는 후유증으로 집필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오랫동안 글 쓰는 것을 중단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마지막 조국으로 여기는 스위스에서 살면서 그의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1923년 연이어 집필한다. '두이노의 비가'는 릴케 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릴케의 문학세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수많은 여인들이 스쳐지나갔다. 누군가 릴케의 여자들을 ‘항성’과 ‘혜성’으로 나누었다. 이에 따르면 루 살로메와 같은 여인이 릴케의 생애 내내 사라지지 않은 항성이라면, 화가 발라디네 클로소프스카 등은 잠깐 스쳐 지나간 유성 내지 혜성과 같은 존재라 할 것이다.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여인은 단연 루 살로메다. 릴케가 22세였던 1897년, 당시 36세인 루 살로메를 만나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루와의 만남은 릴케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루는 릴케에게 연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성애를 풍기는 여인으로서 그의 감성적 역량과 자질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릴케 시의 세계에 많은 영감을 준 러시아를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그들의 관계가 끝난 후에도 루는 릴케의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게 되었다.

1897년 5월 12일, 뮌헨의 소설가 야콥 바서만의 집에서 열린 다과 모임에서였다. 젊은 시인 릴케는 당대 멋진 여성의 대명사였던 루 살로메를 만나자마자 사랑의 거센 폭풍에 휘말려 들어갔다.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아니 그러했기 때문에 루 살로메는 릴케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여인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분방한 그녀의 정신세계는 또한 릴케의 젊은 열정과 만나 불꽃을 튀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나자마자 릴케의 가슴은 루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릴케에게 루 살로메가 각별했던 것은 그가 한 해 전에 읽은 그녀의 에세이 덕분이기도 했다. 루의 에세이 '유대인 예수'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릴케는 익명으로 그녀에게 몇 편의 시를 우송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를 탐독하고 또 함께 했던 각별한 시간을 추억하는 젊은 시인에게 루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는 급진전되어 금세 연인 사이가 된다.

릴케에게 루는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반려자였다. 그녀는 릴케에게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모성적인 사랑의 제공자였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데 미숙한 시인에게 현실적인 길을 안내하는 정신적 후원자였다. 두 사람은 함께 공부하고 몇 차례에 걸쳐 여행을 떠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루는 릴케에게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을 알려주었으며, 나아가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소개해 주었다.

루를 만난 후 릴케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우선 하나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1897년 빈의 한 잡지에 ‘르네 마리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라는 기존의 이름을 버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작품을 게재한다. 이는 루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릴케는 줄곧 이 이름을 쓰게 된다. 또 다른 변화는 릴케의 시 세계가 더욱 원숙해지게 되어 그는 이 무렵 초기 시의 미성숙한 단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시집’의 제2부에서-

릴케에게 이다지도 큰 영향을 끼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1861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미모에 지적 편력이 더해져 평범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21세 때 스위스로 건너온 루는 38세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역시 같은 시대의 철학자였던 33세의 파울 레를 만난다. 두 사람 모두 루에게 빠져들었으나 루는 레를 선택해서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자 니체는 패배감과 상실감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당시 니체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열흘 만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탈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 역시 오래 가지 않아 루에게서 버림받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루 살로메는 26세 되던 때 베를린의 문헌학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 교수와 우정 관계를 전제로 결혼했으며, 28세에는 극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과 사귀었다. 36세 때는 22세의 문학청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만나 러시아 여행길에 나섰다. 루를 향한 릴케의 사랑은 온 영혼을 다한 것이었지만, 루는 릴케의 어두운 영혼을 오래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뒤 루는 국제정신분석학회 바이마르 회의에서 프로이트를 만나 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프로이트의 제자 타우스크와 한때 열애에 빠지기도 했으나, 루는 타우스크를 버렸고 그 역시 루가 떠나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이처럼 거침없는 남성편력으로 인해 그녀를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이었다는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루는 사랑과 성을 남녀의 인생을 잡아끄는 커다란 자력의 운명적 힘으로 여겼고, 그러면서도 사랑과 성에 자신을 구속시키지 않은 자유의 여신이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릴케에게 있어 많은 사랑의 경험은 그의 문학생활에 커다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여인들과의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많은 곳을 떠돌아다닌 덕분이기도 하다. 실제 릴케는 수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많은 시적 영감을 얻게 된다. 특히 12년간 살았던 프랑스, 두 차례에 걸쳐 루와 함께 여행했던 러시아, 만년에 정착해 7년여 살았던 스위스는 ‘자신이 선택한 또 하나의 조국’이라고 표현했다.

러시아는 비록 두 차례의 여행을 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 어떤 지역보다 릴케에게 깊은 인상과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해준 곳이었다. 루 살로메와 함께 1899년 봄에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다음해인 1900년 여름 다시 그곳을 여행했다. 여기서 그는 내면적인 깊이를 더해 나가는 계기를 접하게 된다. 러시아는 릴케의 내면세계에 원초적이며 거의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릴케는 만년에 스위스에 정착해 살다가 1923년 12월 29일 51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름다운 론 강 계곡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지 뮈제트 성으로 찾아온 이집트 여자 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린 것이 원인이 되어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죽었다는 설이 그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릴케가 백혈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의 시신은 이듬해 1월 2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유언에 따라 거처지 인근에 위치한 라롱의 언덕 위 교회 옆에 묻혔다. 묘비에는 릴케 자신이 직접 작성한 묘비명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Rose, oh reiner Widersprl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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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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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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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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