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학교 광역 소재지까지만 적어주세요"
전남대·목포해양대→전남…포항공대·경북대→경북
[뉴스핌=한태희 기자] 미뤘던 토익 점수 올리랴 해외로 봉사활동 떠나랴,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7~8월에 쉬지도 못합니다. 어학 성적에 각종 자격증, 다양한 사회경험과 같은 '스펙'이 좋아야 취직에 유리하기 때문이죠.
'혹시 토익 점수가 800점대라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건 아닐까? 인턴 경험이 없어서 면접에서 떨어졌을까?' 불안감에 청년은 스펙 쌓기에 시간과 열정을 소비합니다. 그럴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점점 지쳐가죠.
서울 신촌 대학가에 위치한 카페. 대학생들이 계절학기 수업 자료나 토익 책, 자격증 수험서를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황유미 기자 |
지쳐가는 청년을 보듬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특별 카드를 꺼냈습니다. 출신학교나 토익점수 등을 안 보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다는 거죠. 스펙 없는 이력서를 사용해 청년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지방에 있는 혁신도시로 내려갔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남 나주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겼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본사를 진주로 이전했죠.
이 공기업들은 신규 채용 때 해당 지역 학교에 다닌 청년을 일정 비율로 뽑아야 합니다. 이게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공기관은 지역인재를 최소 30% 채용해야 한다는 지침도 줬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직원 10명을 뽑을 때 최소 3명은 전남에서 공부한 사람을 채용하라는 거죠.
<사진=뉴스핌DB> |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학교도 안 따지고 거주지도 안 보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전남에서 학교에 다닌 청년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지?
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출신학교 광역 소재지까지만 적으라고. 예를 들면 전남대학교는 전남으로, 목포해양대학교도 전남으로, 순천대학교도 전남으로 적으라는 얘기죠. 이렇게 하면 어느 학교를 졸업했든 전남에서 학교를 다닌 걸로 인식됩니다. 한전 지역인재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거죠.
블라인드 채용이라지만 100% 블라인드는 아니죠? 정부도 민망했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역을 명시하는 게 (지역 할당제)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
약간의 흠이 있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돼 청년들이 스펙 부담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기관에 우선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후 민간으로 확대한다는 목표입니다.
청년 일자리 늘리기는 문 정부 최우선 국정과제입니다. 블라인드 채용 계획 발표에 앞서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공공기관 청년 의무고용 비율도 3%에서 5%로 높인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전 전체 직원이 1000명이면 35세 이하 청년 직원을 30명에서 50명으로 늘리라는 얘기죠. 이 비율을 유지하려면 한전은 청년을 새로 더 뽑아야 합니다.
물론 정년 퇴직자 등을 고려하면 청년 고용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미지수입니다.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중견기업 100만+ 일자리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 |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