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보도되면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 어느 작품들보다 사실적이고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대사들이 오간다.
27일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TOM(티오엠)관에서는 연극 ‘보도지침’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오세혁 연출가, 봉태규, 김경수, 이형훈, 고상호, 박정원, 기세중, 박정표, 남윤호, 서현철, 김대곤, 정인지 등 17명이 참석했다.
연극 ‘보도지침’은 제 5공화국 시절인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당시 법정과 기자회견장에서 나왔던 말들이 연극의 대사로 옮겨졌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는 김주혁(봉태규‧김경수‧이형훈)으로, 월간 ‘말’지를 세상에 공개한 김종배 편집장은 김정배(고상호‧박정원‧기세중)로, 이들의 재판을 변호했던 한승헌 변호사는 황승욱(박정표‧박유덕)이라는 캐릭터로 무대에 오른다.
이날 오세혁 연출가는 “사건 전개에 대해 다루려고 했던 과정에서 이 분들이 재판에 했던 말들을 읽게 됐다. 사실 그 어떤 연극에서 봤었던 독백들보다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김주언, 김종배 선생님들이 법정에서 했던 말들이 가장 진실한 독백이라고 느꼈다. 이야기 중심이라기보다, 이 분들의 발언과 연설을 위주로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어 “이 시대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과 글을 ‘보도지침’ 안에 넣었다. 배우의 연기보다 그 무대에서, 그 순간에 배우들이 하는 말들이 중요하다. 작년 초연 때는 작가로 참여했는데, 연출도 함께 맡으면서 배우들의 말이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건 줄이려고 노력했다. 작년 공연과 달리 세상에 귀를 기울여야 할 장면들을 많이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6년 만에 ‘보도지침’으로 무대에 오른 봉태규는 “연기를 17년 정도 했는데,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 일이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떠나서 연기하는 과정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하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 내일이 오는 게 싫을 정도로 오늘이 좋다. 거짓말 같을 수 있지만, 진실이다”라며 과한(?) 애정을 드러냈다.
고상호 역시 연극이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오랜 공백을 깨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뮤지컬을 쭉 해오다가 21살 이후 오랜만에 연극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고상호는 “연습을 하고 공연을 2회 정도 하면서 느낀 건 연극이 정말 어렵고 뮤지컬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오시는 관객 분들이 만족할 수 있게 노력 중이다. 같이 하고 있는 배우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많이 준비하고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상호와 마찬가지로, 김경수 역시 현재 다양한 뮤지컬 작품들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는 겹치기 출연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경수는 “다양한 작품을 많이 하고 있는데, 편하지는 않다. 한편의 욕심으로는 좋은 작품이 들어왔을 때,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즐기면서 하고 있다”며 머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도지침’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 모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기세중은 “‘팬텀싱어’ 출연 이후 뮤지컬 제안은 많이 들어왔지만, 연극이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팬텀싱어’를 나가서 싱어로 노출이 됐지만, 이전에 배우였다. 그래서 연극에 대한 갈망이 컸다.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연극을 하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느꼈다. 부담이 되지만 꼭 하고 싶은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세혁 연출가는 “작년에는 시기가 맞물려서 인지, 뭔가 모르게 시대를 뚫고 가야한다는 부분이 컸다. 작년에는 공연의 온도가 뜨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 공연이 뜨거워지면 강요가 돼버린다. 배우들에게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뜨거워져도 머리로 차갑게 식히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연극 ‘보도지침’은 오는 6월 11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만 13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주)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