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허탈감에 빠진 군중들이 저마다 보수, 진보, 국가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여의도, 동대문, 광화문에서 촛불로 어둠을 밝히고 있다. 마치 70년 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맞아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올바른 나라를 세우겠다고 이념적 대립이 극에 달했던, 또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학생들이 분연히 일어섰던 지나간 시대를 다시 보는 듯하다.
원래 보수와 진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화파와 왕당파의 회의좌석과 활동성향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보수는 전통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사상이나 가치를 더 중요시 하며 검증된 사실에 더 무게를 두고, 진보는 새로운 변화나 흐름에 더 무게를 두는 정치적 성향을 말한다. 이처럼 진보나 보수는 한 마디로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말로서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공존하고 있다. 또한 이 두 가지 성향은 표현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며, 사회통합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보수는 “꼴통”으로, 진보는 “좌빨”로 대변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명확한 철학과 가치가 있다기 보다 정체성이 모호한 적당주의와 개인의 이익, 권력, 당리당략적 이념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정책은 약하고 이념은 강하며, 보수는 철학적으로 약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정치적 보수는 강하다는 평이 있다. 작은 이익보다 철학과 가치를 우선하는 진보와 보수가 되어야 한다.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 하나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우를 줄 알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존재가치는 물론 사회발전도 없어”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대의 가치를 먼저 인정하고, 본래의 가치에 충실해야 하며, 진보, 보수를 따지기에 앞서 이에 우선하는 가치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특히 국가적 가치 실현과 국가안보 목표 구현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70년을 남북이 영토적, 이념적으로 분단되어 가슴 아픈 현실에 남남갈등이 왠 말인가? 정치적, 국가안보적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토론과 타협을 통한 건강한 갈등은 사회문제를 해결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적 갈등은 비용은 물론이고 국민통합과 발전을 저해한다. 우리 사회를 꼭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가들의 논리이고,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대다수 국민의 뜻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이분법적 대결을 원치 않는다. 꼭 그렇게 나누어야만 한다면 건강한 보수와 진보였으면 좋겠다. 배척하지 않고 함께하는 보수와 진보였으면 좋겠다.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얘기도 들어줄 줄 아는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였으면 좋겠다. 국가가치와 국민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였으면 좋겠다. 전쟁이 나면 말없이 선봉에 서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진보와 보수였으면 한다. 흑백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이분법적 편가르기와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와 주장이 아닌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가 되어야 한다. 정치 철학적, 이념적 스펙트럼은 꽤 넓고 다양하다. 꼭 보수와 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거버넌스(協治)가 요구되는 사회다. 견제할때는 하더라도 이유와 근거가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균형있고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언제부터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가치를 무작정 추구하기에 앞서 건강한 사회와 국가 발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회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을 위해 기성세대인 우리가 남겨주어야 할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박춘우 (동양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 군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