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음~’ ‘네에~’ 특유의 말투가 캐릭터의 매력을 살아 숨 쉬게 했다. 초반에는 악역이 아닐까 싶더니, 유회장과 유덕화, 그리고 도깨비 김신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충신으로 남았다. 게다가 화려한 댄스 실력과 개인기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간 드라마에서 비친 비서들과는 색다른 모습으로 브라운관을 누빈 배우 조우진(38)의 이야기다.
조우진이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에 출연하게 된 건 이응복 감독의 깜짝 러브콜이었다. 전작을 재밌게 봤던 터라 이응복 감독과의 만남도 기분 좋게 나갔다. 서로의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응복 감독은 ‘함께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단번의 제안에 조우진은 놀랐다. 악수하고서 출연을 약속한 후 얼떨떨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당시 저는 OCN ‘38사기동대’를 마치고 영화 ‘보안관’ 촬영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지난해 10월쯤이었나. 이응복 감독이 한번 보자고 하더라고요. 이 감독은 ‘38사기동대의 안국장 역할이 재밌었다’고 했고, 저는 ‘몸이 수고스러워야 결과가 좋은 것 같다’며 대화를 이어갔죠. 그러다 이 감독이 제게 ‘이번에도 수고로울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전 너무 놀란 나머지 ‘제가 뭐라고 하면 되죠?’라고 되물었어요(웃음). 그러니까 이 감독이 ‘같이 한번 해보시죠’라고 하면 된다면서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당일에 제안받고 출연을 결정한 건 처음이라 저도 어찌할 줄 모르겠더라고요.”
조우진은 김비서 캐릭터 분석에 열을 올렸다. 고민 끝에 그만의 정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모습을 충분히 외모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룩은 재벌에 가깝게, 머리는 단정하게 했다. 스타일링을 두고 회사와 끊임없이 상의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본래의 김비서의 모습은 아니다. 애초 조우진은 드라마 속 평범한 비서들처럼 가볍게 가려고 했다. 그러나 촬영 직전 완전히 수정했다. 도깨비 가문의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고 재벌 그룹에 크고 작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김비서라면, 그저 가볍운 인물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초반엔 김비서를 아주 귀엽고 가벼운 캐릭터로 만들어볼까 생각했어요. 아주 잔망스러운 성격에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는, 기존의 드라마 속 비서들처럼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유회장의 지시를 받고 도깨비의 점지를 받은 김비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말투도 점잖게 갔고 스타일링도 최대한 깔끔하게 했어요. 그 만의 엣지는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김비서의 ‘음~’ ‘네에~’말투는 화제가 됐다. 철이 안 든 재벌 3세 유덕화(육성재)를 다루는 김비서의 차진 말투가 그의 곧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유덕화가 변명하고 김비서가 답하는 장면에서 조우진은 ‘네’를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했다. 무성의한 말투보다 살짝 끊어주는 ‘네에’가 재밌다는 반응이 많아 채택됐다. 이는 대중까지 유쾌하게 만들었다. 조우진은 ‘네에’ 말투가 화제가 된 이후 김은숙 작가의 대본에 그간 적혀있던 ‘네’가 ‘네에’로 바뀌었다며 김작가의 감각에 감탄한 일화도 전했다.
“김비서 말투는 제가 아는 분 중에 김비서처럼 사람과 일을 대하는 분의 모습을 차용했어요. 거기에다 제 목소리를 덧씌운 거고요. 많은 분들이 ‘네~’와 ‘음~’을 좋아해주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얻을 줄은 몰랐는데,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말투가 흥하자 그 후에 나온 대본에 그동안 ‘네’라고 적혀있던 게 ‘네에’로 바뀌었더라고요. 이걸 보고 김은숙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이유가 이거구나 싶었죠.”
조우진은 ‘도깨비’에서 연기력뿐만 아니라 깔끔한 진행력도 인정받았다. 지난 14일 방송한 ‘도깨비 스페셜’에서 MC로 등장한 것. 알고 보니 그는 고교 시절 방송부 아나운서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 그는 당시 점심 방송 아나운서였다. 워낙에 차분한 목소리 때문에 ‘심야방송 하지마라’는 반응도 두루 있었다며 웃었다.
“보통 점심시간에 방송을 하죠. 멘트를 하고 그리고 음악과 함께요. 선배들이 저한테 좀 더 목소리 톤을 올려서 밝게 방송하라고 많이 했어요. 비라도 오는 추적추적한 날이면 제 목소리는 좀 더 축 가라앉게 되죠. 그 목소리로 ‘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날엔 조지마이클의 지저스 투 어 차일드(Jesus to a child)를 들어 보죠’라고 하면 그야말로 점심시간에, 심야방송이 되는 겁니다. 목소리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냐고요? 하하. 얼굴 보기 전까진 그렇더라고요.”
조우진은 ‘도깨비’에서 방탄소년단의 춤, 그리고 스페셜 편에서 트와이스의 ‘TT’ 춤을 선보이며 그의 흥과 끼를 인증했다. 그는 “흥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그의 말과 달리 뮤지컬과 연극을 하며 무대에서 갈고 닦은 노래와 춤은 브라운관에서도 빛났다. 그는 사실 학창시절에만 해도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연기를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고. 그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흥은 있는 편이에요. 노는 걸 좋아했죠. 그런데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저는 리더십도 없고 공부도 그닥 잘하는 편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3년 내내 반장을 했어요. 1학년 때 떠밀려서 하고 2학년 때는 할 사람이 없다고 하고, 3학년 때는 2년을 했으니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남 앞에 서는 데에 자신감도 갖게 됐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죠. 저의 자질, 성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올해 ‘도깨비’로 큰 사랑을 받은 조우진. 그에게 2017년의 바람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많은 분들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환이 과거 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며 대중이 행복하길 바랐다. 더불어 자신은 흔들림 없이 지금처럼 묵묵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이승환 씨가 4, 5년 전에 ‘많은 분들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저 역시 바람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보다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대중 덕분에 저 역시 지난해 ‘내부자들’을 시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됐어요. 저는 늘 하던 대로 제자리에서 묵묵하게 연기를 해나가겠습니다.”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