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배우 김재영(29)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렇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분명 모 맥주 CF에서는 젊음을 외쳤는데 스크린 속에서는 약에 취해 비틀거린다. 차가운 눈매로 상대를 긴장하게 하다가도 이내 환한 미소로 무장해제 시킨다. 선과 악,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신예 김재영이 영화 ‘두 남자’를 통해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 전석 매진을 기록한 ‘두 남자’가 지난달 30일 베일을 벗었다. ‘두 남자’는 인생 밑바닥에 있는 두 남자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 김재영은 두 남자, 형석(마동석)과 진일(최민호)을 미치게 하는, 거칠 것 없는 금수저 성훈을 연기했다.
“여덟 번을 봤어요(웃음). 물론 아쉬운 지점도 많은데 그동안 작품하면서 저에게 주목해주는 경우가 많이 없었거든요. 근데 이번 영화로는 칭찬도 너무 많이 받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저야말로 ‘두 남자’의 최대 수혜자예요.”
김재영이 ‘두 남자’의 최대 수혜자가 되기까지 합류 과정은 이렇다. 영화를 준비하던 이성태 감독이 동명의 배우를 검색하다가 김재영을 발견, 그 마스크에 매력을 느꼈다. 연기하는 배우일 거라 생각도 못한 채 그를 불렀고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런데 사실 김재영 입장에서는 시작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꿈 많고 욕심 많은 신예지만, 그간 CF로 쌓아놓은 훈남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성훈은 형석과 진일이 선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캐릭터다.
“제가 이런 청소년 누아르를 좋아해요. ‘눈물’(2000)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찍고 싶었죠. 물론 캐릭터가 너무 못되긴 했어요(웃음). 또 제가 시작 단계라 자칫 잘못하면 그런 이미지로 낙인찍힐까 걱정도 됐죠. 근데 한편으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에요. 한창 남궁민 선배가 악역으로 사랑받을 때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죠.”
기회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꼭 잘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성훈의 분량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 김재영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던 건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재영은 그 공을 이성태 감독에게 돌렸지만.
“감독님과 백스토리를 많이 생각했어요. 상의를 많이 했죠. 특히 여태까지 나왔던 악역과 달랐으면 좋겠다고 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참고한 건 ‘오아이스’(2002) 설경수 선배였죠. 물론 방향은 좀 달라요. 하지만 감독님이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다 제 방식대로 풀어보길 원하셨어요. 너처럼 하라고, 편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잘 만들어 주신 듯해요.”
영화의 배경이 배경인 만큼 그의 10대 시절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훈의 나이일 때 김재영은 어떤 학생이었을까. 되레 실제 성격으로만 놓고 본다면 발랄하고 귀여운 것보다 성훈 쪽이 그와 잘 맞았다기에 더욱 궁금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어요. 사고도 많이 치고 장난기도 가득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어요(웃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때는 한창 요리사를 꿈꿨어요. 배운 적은 없는데 차남이라 엄마를 도와드리면서 곧잘 따라 했죠. 아직도 요리에 대한 꿈은 있어요. 언젠가 배우로 자리를 잡은 후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꿈 이야기에 자연스레 화두는 그의 데뷔로 이어졌다. 대다수가 알고 있겠지만, 김재영은 모델로 처음 업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모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 아버지는 전역 후 혼란을 겪는 아들에게 모델 일을 추천했다. 평소 모델을 막연하게 동경해온 김재영은 몸무게를 무려 30kg 감량하며 일에 열정을 보였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당시 정체성에 혼란을 많이 겪었죠. 그러던 차에 아버지가 어릴 땐 하고 싶은 걸 해보라며 모델 일을 제안해주셨어요. 물론 아버지는 건설업계 종사자로 전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으세요(웃음). 그렇게 에스팀 아카데미에 들어가 굉장히 열심히 했죠. 그러다 보니 모델이 돼 있더라고요. 제가 또 일은 시키면 잘하거든요(웃음).”
모델 활동을 하다 보니 우연히 방송에 출연할 기회도 생겼다. 꽃미남 연기자를 뽑는 tvN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 ‘꽃미남 캐스팅, 오! 보이’(2011)를 통해서였다. 당시 ‘섹시 카리스마’라는 닉네임으로 소녀팬깨나 울렸던 그는 그곳에서 처음 연기의 맛을 알았다.
“스물다섯 즈음이었어요. 연기를 처음 배웠는데 재밌더라고요. 아무래도 연기에 비해 모델 일은 단면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그리고 또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도 신기했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소속사(에스팀)를 나왔죠. 나는 모델 일은 안하겠다며(웃음).”
물론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노브레싱’(2013) 제작사 소속 배우로 연기를 배우고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노브레싱’은 관객에게 외면받았다. 영화가 빛을 발하지 못하니 김재영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픈 시간은 성장의 발판이 됐다. 오래지 않아 기회가 또 찾아왔다.
“그렇게 백수 생활을 7~8개월 했어요. 그러다 지인 추천으로 ‘아이언맨’(2014)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때는 회사가 없었어요. 때마침 에스팀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연기에 중점을 두고 모델 일을 함께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왔죠. 정말 감사한 회사에요. 하하. 어쨌든 그 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그 당시에 직업 자체에 회의감이 좀 들었거든요. ‘노브레싱’ 들어간다는 이야기에 그렇게 연락하던 친구들도 연락을 끊더라고요(웃음).”
김재영은 “그 뒤로 진짜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일컫는 ‘진짜 배우’라 함은 연기를 진심으로 대하는 배우, 그리고 유명세보다는 연기 자체를 즐기는 배우를 의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을 계기로 유명해지기보다 연기를 착실히 배우자는 마음이 컸어요. 연기를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요. 겸손해졌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제 가장 큰 목표는 인간적인 배우가 되는 거거든요. 이 일 역시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변하지 않고, 대중과도 스태프들과도 벽을 쌓지 않고 싶죠. 늘 대중 가까이에 있는, 인간미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