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황수정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작정하고 돌아왔다. 긴 머리를 싹둑 잘랐고 성격과 정반대 캐릭터에 빠졌다. 물론 자기 옷을 입은 듯 딱 맞는 연기를 펼쳤다. 배우 박은빈(25)이 JTBC '청춘시대'를 통해 예전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12부작이라 빨리 끝났는데 찜통더위와 함께해서 그런지 정말 치열했던 느낌이에요. 그만큼 열정도 뜨거웠고, 부족함 없이 '불태웠다'는 감정이 커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 해낸 것 같아요.(웃음) 신선했고 놀라웠다는 반응이 많아 뿌듯하죠. 예전보다 친근감이 더 강해진 건지 단도직입적으로 사진찍자는 말도 많이 해주세요. 이게 훨씬 반갑고 좋아요."
박은빈은 '청춘시대'에서 음주가무와 음담패설에 능한 모태솔로 송지원을 맡았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장난기 가득한 송지원은 '청춘시대'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사실 내성적이고 조용한 박은빈 본인과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송지원을 택하고 연기한 박은빈은 이태곤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스스로 재미없다 느끼고 지루했던 부분을 탈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에 대한 생각을 반전할 기회가 됐죠.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에요. 저는 제 안에 다면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연기로 보여드릴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 제가 잘 해왔던 것만 원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태곤 감독님은 달랐어요.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고, 반신반의하면서도 믿음을 주셨죠. 감독님께서 자신감이 있었기에 잘 만들어갈 수 있었고 그 덕에 변신을 시도할 수 있어 감사해요."
결과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박은빈은 자신과 너무 다른 송지원을 연기했을 때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본인과 송지원 자체를 각각 인격체로 분리해 생각했다. 연기에만 에너지를 쏟았다. 그 외 부분에선 최대한 절제했다.
"어색해 보이지 않았으면 했고, 스스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죠. 불편하고 어려웠던 건 자신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무조건 흡수하거나 억지로 캐릭터에 투영할 게 아니라 다른 걸 인정했어요. 물론 부끄러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송지원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캐릭터가 되길 바랐어요. 다른 인물들이 어두운 부분이 많아 제가 나올 때만큼은 웃을 수 있고 환기를 시켰으면 했죠. 그래서 에너지를 더 많이 쏟았어요. 그만큼 평소에는 더 침착하고 말도 아끼고, 촬영하는 동안 밖을 안 다녔어요. 박은빈으로서 삶은 접어둔 거죠.(웃음)"
혼신의 힘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남는다. 박은빈은 오랫동안 고민하며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스스로 채워나갔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의도한 바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호평은 박은빈에게 시원함을 안겨줬다.
"송지원을 단편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순해보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알기 어렵고 복잡한 캐릭터에요.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하고 대본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은 스스로 설정해서 개인 스토리로 채워나갔죠.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길 원했는데, 제가 제대로 표현을 못한 건지, 오히려 그런 부분을 안 드러나게 편집을 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깊이감이 덜 보여서 시청자들이 오해하실까봐 걱정도 했어요. 그래도 대체로 많은 분들이 캐릭터 그대로 봐주시고 '송지원 캐릭터가 어딘가 있을 것 같다' '쌍둥이 아니냐'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땐 시원했어요. 그만큼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요."
시청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극중 송지원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커플이 맺어지지 않았다. 또 거짓말로 인해 셰어하우스 벨에포크의 하메(하우스 메이트)들을 혼란에 빠트리더니, '송구라'라는 별명을 가졌던 과거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박은빈은 "처음부터 송지원은 달랐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송지원은 관찰자, 혹은 화자라고 생각했어요. 송지원의 내레이션만 뉘앙스가 다르죠. 극중에서 송지원 역할 자체가 관찰을 하고 소통의 창구에요. 특히 거짓말을 통해 내면의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는 구실을 했죠. 송지원의 거짓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다만 말할 수 있는 비밀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다른 하메들이 다 비밀을 밝히고 치유할 동안 어찌보면 가장 단순하고 가벼워 보이는 송지원이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있던 게 의미심장해요. 송지원은 끝까지 숨기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청춘시대'에서 박은빈은 이미지 변신도 성공했다. 싹둑 자른 단발은 '신의 한 수'로 꼽혔고, 그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은 매회 화제였다. 포털사이트에 박은빈을 치면 '박은빈 가방' '박은빈 패션' '청춘시대 송지원 패션' 등이 연관검색어로 나올 정도였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송지원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작가님이 그려주신 사진과 함께 많은 이미지를 보내주며 머릴 자르길 원했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죠. 설령 스스로 후회할 지 몰라도 역할에 도움이 되면 좋겠단 생각으로 잘랐죠. 초반에 '못난이로 만들어놨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많은 여성들이 좋아해주시고 따라 자르기도 해서 좋았어요. 송지원 패션은 '아방가르드'가 콘셉트였어요. 그러나 대학생이 아방가르드를 표현하기엔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에스닉한 무드에 보헤미안, 히피로 자유를 더했죠. 옷으로도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어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수많은 칭찬 속에 가장 인상적인 건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이야기. 박은빈 역시 '청춘시대' 송지원에 대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앞서 '비밀의 문'에서 연기했던 혜경궁 홍씨 또한 애착이 많이 간다고 덧붙였다.
"인생캐릭터라고 저보다 더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연기할 때마다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지만, 송지원의 경우 그동안 못 보여드렸던 새로운 매력을 전할 수 있었어요.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를 증명할 수 있었던 캐릭터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또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는 헤경궁 홍씨에요. 제가 표현하려는 바를 시청자들이 온전히 다 받아줬다는 느낌이었어요. 시청자들께 사랑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에 비해 시청률은 조금 아쉬워서 아픈 손가락이기도 해요.(웃음)"
1998년 아역으로 데뷔한 박은빈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50개가 넘는 작품을 해왔다. 그중 사극만 10편. 박은빈은 "오랜만에 현대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도 "앞으로도 사극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현대극으로 마음껏 놀아보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웃음) 사실 사극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작품마다 이미지가 더 강해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극을 더이상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분도 있는데, 좋은 작품이고 마음이 맞다면 하고 싶죠. 역사적 인물은 팩트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오히려 더 자유롭고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은빈은 "보고 느낀 대로 마음껏 상상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청춘시대' 속 메시지처럼 서로 소통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청춘시대'를 통해 받은 수많은 호평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감사하고 과분하게도 이번 연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저를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라고 평가해 주셨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해주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서 어떤 캐릭터든 그 캐릭터처럼 보이고 싶어요. 드라마를 볼 때 방해되지 않고 더 공감할 수 있는, 나아가 드라마의 메시지와 시청자가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의 역량을 갖추고 싶어요."
박은빈의 대학생활, 그리고 2년의 공백 본인과 너무 다른 '청춘시대' 속 송지원 덕에 원없이 대리만족했다는 박은빈. 딱 극중 캐릭터와 같은 나이인 그는 박은빈 본인의 삶을 이렇게 털어놨다. "제 20대는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진 않아요. 많이 놀러다닌 것도 아니었고요. 늘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긴 했는데, 1년이 지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그런 일상이었죠. 그래서 송지원은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고, 에너제틱하고 다이내믹하게 사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하는 송지원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부분이 있었어요.(웃음)" 지난 2014년 드라마 '비밀의 문'을 끝으로 박은빈은 2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연기와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박은빈은 심리학·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박은빈은 공백기에 대해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연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였다.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졸업하고 싶어요. 복수전공을 하는 이유도 많은 걸 알고 싶어서에요. 학교 다니는 동안 놓친 작품도 많고 스스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2년이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어요.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거니까요." |
[뉴스핌 Newspim] 글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