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세혁 기자] 김지운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이병헌이 '밀정'으로 6년 만에 재회했다. 7일 개봉하는 '밀정'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폭탄을 들여오려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 이 작품에 특별출연한 이병헌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송강호를 비롯해 '부산행'의 공유 등 톱배우들 틈에서 몹시 강렬한 눈빛과 몸짓을 보여준다. 여러모로 감독과 이병헌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밀정'. 명작열전이 이번에 다룰 작품은 두 사람이 11년 전 처음 빚어낸 인생작 '달콤한 인생'(2005)이다.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음>
◆영화 ‘달콤한 인생’의 기본정보
제목 : 달콤한 인생(A Bittersweet Life)
감독 : 김지운(이병헌의 손 역할로 대역도 소화했다)
제작 : 영화사 봄
출연 :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김뢰하, 이기영, 오달수, 황정민·에릭(특별출연)
스토리 : 보스의 여자에 반해 규칙을 깨고 만 오른팔의 몰락과 핏빛 복수
러닝타임 : 120분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스코어 : 전국 127만1595명(한국영화연감), 전국 111만2950명(KOBIS 발권통계)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달콤한 인생’의 주요 캐릭터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들. 사진 위로부터 이병헌, 신민아, 김영철 |
선우(이병헌) : 조직의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무한신뢰를 받는 인물. 나이트클럽을 관리하는 실장이자 오른팔. 실력이 뛰어나나 지나치게 냉정하고 타협을 몰라 주변에 적이 많다. 보스가 해외로 다녀오는 사이 감시를 맡긴 대학생 연인 희수에 반해 룰을 깨고 만다.
희수(신민아) : 강 사장과 은밀하게 만나는 음대생.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는 계약연인이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는 엄격한 룰이 있다. 강 사장이 해외로 나간 틈을 타 평범한 남자과 밀회하지만 자신을 감시하던 선우에게 발각된다.
강 사장(김영철) : 선우를 신뢰하는 조직 보스. 희수를 맡기고 해외에 나갔다가 선우의 배신을 눈치 챈다. 한 차례 실토할 기회를 줬다가 실망한 뒤, 철저하게 선우를 짓밟는다. 나중에 돌아오는 복수의 칼날 앞에선 일면 비겁한 면도 보여준다.
◆시선을 압도하는 한국형 느와르…관객 들끓게 한 스토리
‘달콤한 인생’은 2005년 만우절에 개봉했다.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그리고 ‘장화, 홍련’(2003)까지 신선한 작품으로 각광 받던 김지운 감독이 내놓은 첫 느와르였다. 다만 같은 날 개봉한 류승완 감독과 최민식, 류승범의 ‘주먹이 운다’에 비해 관객의 관심이 덜했다.
최민식과 송강호, 김혜수, 신하균, 문소리, 김갑수, 문근영, 임수정 등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해온 김지운 감독은 이병헌과 처음 만난 이 작품으로 느와르에 도전했다. 내용이 지나치게 암울했고, 잔혹하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관객도 있었다. 특히 종반부에 등장하는 총격전이 과연 한국 정서와 맞는가 논란도 일었다.
흥행 면에서 보면 분명 경쟁작에 밀리는 인상이 강했지만, 해석이 달라질 분기점이 곳곳에 포진한 영화여서 후반부에 팬심이 터졌다. 특히 달인폐인(달콤한 인생+폐인)이라는 골수팬들이 인터넷에 토론방을 개설한 점이 이슈가 됐다.
*달인폐인 : 뉴스에도 등장한 이들은 워낙 다방면으로 해석 가능한 영화 속 이야기들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에릭에 의해 숨이 멎은 이병헌이 말끔한 수트 차림으로 섀도복싱을 하는 장면을 두고 모든 게 꿈이 아니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김지운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꿈이 아니다”라고 언급, 이병헌이 극중에서 정말로 죽었음을 알려줬다.
◆“넌 모욕감을 줬어”…10년 넘게 유행하는 영화 속 명대사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렇다고 돌이킬 순 없잖아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는 강 사장에 의해 제거될 뻔했던 선우가 정반대 입장에서 내뱉는 대사다. 그토록 신뢰하던 자신을 차가운 땅에 묻으려 했던 강 사장의 본심을 요구하는 이병헌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돌이킬 순 없잖아요”는 강 사장의 속내를 확인한 선우가 모든 게 끝났다는 듯 읊조리는 대사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개봉 10년 넘게 유행하는 ‘달콤한 인생’의 최고 명대사. 선우가 겨눈 총구 앞에서 “이러지 말자”를 반복하던 강 사장이 비로소 털어놓는 본심이다. 자신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을 숨긴 데 대한 깊은 분노를 담은 대사이기도 하다. 이후 각종 예능에서 “넌 목욕값을 줬어” 등으로 패러디됐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극악한 캐릭터 백 사장(황정민)이 내뱉는 의외의 철학적인 대사.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이 말이 백사장의 입에서 나온 것이 놀랍다. 참고로 오는 28일 개봉할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에서 황정민은 사욕을 채우기 위해 더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를 그리며 악역으로 컴백했다. 개봉도 전에 ‘지옥도’ 운운하며 그의 악랄한 연기가 주목받고 있지만, 백 사장의 원초적 악을 넘어설 수 있을지 미지수. 그만큼 백 사장은 악의 화신이었다.
◆여전히 생생한 ‘달콤한 인생’의 명장면들
차량추격&격투신 : 희수에 마음을 빼앗긴 뒤 혼란에 빠진 선우가 보여주는 액션신. 밤거리를 달리던 희수의 차량에 침을 뱉고 담배를 던지며 시비를 걸던 남자 셋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장면이다. 손가락을 꺾고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모든 액션을 이병헌이 직접 소화(다른 액션신도 마찬가지)했다. 차량 열쇠를 꺾어 부러뜨린 뒤 강물에 던져버리는 선우의 마무리가 느와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 사장과 혈투 : 강 사장에게 복수할 준비를 마친 선우가 일격을 당하는 장면. 차갑고 새하얀 아이스링크 위에 쏟아지는 새빨간 선혈이 극한대비를 이룬다. 이 신에서 부상을 입고도 김영철의 아지트로 쳐들어가는 이병헌에게서 비극적 결말이 예상됐다.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 ‘라 돌체 비타’는 이탈리아어로 ‘달콤한 인생’을 뜻한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강 사장이 최후를 맞는 스카이라운지 이름으로 정했다. 이병헌이 복수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총격전의 영향으로 ‘라 돌체 비타’ 간판에 구멍이 뚫린다. 결국엔 선우가 꿈꾸던 달콤한 인생 따위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느와르의 본질에 충실한 액션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에서 현실에 가까운 액션을 요구했다. 주연 이병헌은 이에 대역 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열의로 답했다.
불이 붙은 각목을 휘두르는 이병헌 |
‘달콤한 인생’의 액션은 선우에서 시작해 선우로 끝이 난다. 특이한 것은 그의 액션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점점 절박해진다는 점. 영화 초중반까지 깔끔하고 화려한 액션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선우는 강 사장의 배신으로 지옥 문턱까지 다녀온 뒤 날 것 같은 투박하고 절박한 액션을 보여준다.
실제로 클럽에서 난장을 피우는 손님을 처리하는 장면이나, 차량 추격신에서 보여주는 선우의 액션은 깨끗하고 호쾌하다. 하지만 강 사장에 버림받은 뒤, 그의 수하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여주는 결투, 일테면 불 붙은 각목을 휘두르는 대목에선 처절함이 묻어난다. 총격이 난무하는 마지막 엔딩 10분여 액션은 수라지옥이 따로 없다.
◆‘달콤한 인생’에 출연했던 의외(?)의 스타들
진구 : 선우의 오른팔으로 등장했다. 강 사장에게 버림받은 선우가 복수를 계획했을 때 은밀하게 연락하는 캐릭터다.
김성오 : 강 사장의 지시에 움직이는 칼잡이 오무성(이기영)의 부하로 잠시 출연한다. 라 돌체 비타 총격신에도 나온다.
김해곤 : 감독 겸 배우. 선우에게 총기류를 판매하는 무기밀매상 보스로 등장했다.
에릭 : 김지운 감독의 미스캐스팅. 주인공 선우의 숨을 거둬주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지만 당최 개연성이라곤 없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캐릭터로 불렸다. 뻣뻣한 연기 역시 혹평을 받았다.
황정민 : 에릭과 마찬가지로 특별출연했다. 그가 연기한 백 사장이 화제가 되면서 배우로서도 주목을 받았다. 그해 전도연과 함께 한 ‘너는 내 운명’까지 대박을 터뜨리면서 황정민은 연기파&흥행배우로 발돋움했다.
◆OST
유키 쿠라모토 ‘로맨스(Romance)’ : 사연을 품은 듯 서정적인 멜로디가 귀에 감기는 곡.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와 더불어 유키 쿠라모토를 대표하는 피아노곡이다. ‘달콤한 인생’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들어간 협주곡이 사용됐다. 첼로를 전공하는 희수가 선우를 위해 ‘로맨스’를 연주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Dialogue1, 2 : 이병헌의 저음이 인상적인 독백. 1, 2로 나뉘며 1이 특히 깊은 여운을 준다. 참고로 2는 명대사인 “그렇다고 되돌린 순 없잖아요”다. 다음은 Dialogue1 전문.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