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양진영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앵그리맘' 김희선이 여전한 미모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20여 년간 배우로서 경력을 쌓을 동안 수도 없이 '재발견'이란 평가를 들었지만 이제 누가 뭐래도 베테랑 분위기가 난다.
MBC '앵그리맘'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즐기는 김희선을 만났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10대 후반 딸을 키우는 엄마 조강자로 불의에 맞섰다. 고등학생 조방울로도 변신해 무려 16세 연하남과 밀당(?) 아닌 밀당에도 도전했다.
"찍으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거의 72시간 동안 못자고 촬영한 적도 있거든요. 나중에는 대본 받아서 신 찍기도 바쁜데 가만히 앉아 있질 않으니까 거의 한계에 도전한 것 같아요. 뒤로 갈 수록 방울이가 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니까요. 촬영장에서 배우들, 스태프들과 의기투합해서 으쌰으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냈을까 싶어요."
'앵그리맘'으로 전에 없이 좋은 평가만 들었다는 김희선. 가장 기분 좋았던 찬사가 뭐냐 물었더니 "교복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라며 깔깔 웃었다. 20여 년 전부터 대한민국 톱 여배우로 사랑받아왔지만 화려한 외모 뒤에 연기에 관한 평가는 가려져 왔다. 이제 드디어 김희선 말고 캐릭터를 빛나게 하는 능력을 인정받은 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밝았다.
"'앵그리맘' 하면서 좋은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기분 좋았던 건 그냥 '방울이가 김희선 아니면 안된다. 상상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죠. 당연히 교복이 잘 어울렸다는 기사나, 16세 연하인 지수와 잘 어울린단 얘기도 흐뭇했고요. 저 더 가볼까봐요.(웃음) 확실히 덩치가 있고 키가 크고 이런 친구들이 나이 차이가 덜 나 보이는 것 같아요."
무려 16세 차이를 무색케 한 연하남 지수(고복동 역)와 호흡에 어떤 망설임이나 어려움은 없었을지도 궁금했다. 혹시나 한참 어린 지수가 남자로 보였던 순간은 없었을 지, 노련한 유부녀 김희선에게도 먹혀들어갔을 매력이 있는지도 물어봤다.
"방울이와 복동이가 붙는 신을 자세히 보면, 다 방울이가 케어해주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연륜이 있다보니.(웃음) 복동이가 저를 전혀 좌지우지 하지는 못하죠. 실제로 보면 완전 애기예요. 방울이도 딸이 있으니 복동이를 아들같은 입장에서 보는 거죠. 찍으면서도 실제로 신이 그렇다보니 딱히 '심쿵' 같은 건 없었어요. 다만 지수나 (이)민호처럼 덩치도 크고 남자 냄새가 나는 친구들과 제가 합이 잘 맞는 듯 해요. 너무 김수현씨 처럼 얼굴이 작고 베이비 페이스면 여배우가 손해보는 것 같아요. 하하."
'앵그리맘' 작가는 극 초반부터 세월호를 겪으면서 작품을 쓰게 됐다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김희선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노란색 의상까지 입고 등장,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했다. 이런 저런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그는 "사실 의도한 건 신상이라는 점이죠"라고 가볍게 분위기를 띄웠다. 직접 그 안에서 엄마 강자였던, 실제 엄마 김희선의 소감이 어땠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가 무너지는 신에선 정말 마음이 안좋았죠. 두달 전부터 장소 섭외하고 진짜 리얼하게 무너뜨리자고 제작진들이 이야기했어요. 힘들고 시간 없어도 신경을 썼죠. 멀지만 인천에 진짜 허물어진 현장에서 찍게 됐어요. 벽돌을 쌓아놓은 큰 고물상인데 하필 그때 네팔 대지진이 터진 거예요. 고물상에서도 네팔 사건 때문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요. 또 실제 엄마 입장이다보니 학생들이 분장하고 벽돌 사이에 누워있는데 참 힘들었어요. 촬영장이 분위기가 뭐랄까. 굉장히 엄숙했죠."
'앵그리맘'에서 김희선이 다 큰 고등학생을 키운 엄마로 색다른 변신을 꾀했다면, 코믹과 액션을 오가는 리얼한 생활 연기는 두 번째 변신이었다. 액션 얘기가 나오자마자 "액션 연기 괜찮았어요?"라며 묻는 김희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남자 배우들이 액션 영화에 로망을 갖는 이유와 느낌을 좀 알게 됐어요. 제가 한 것보다 극적으로 표현되더라고요. 연출의 힘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 거죠. 초반엔 열심히 배워야 하니까 하나 하나 신경을 썼는데 모니터하고 두 달 지나니 액션 욕심이 났어요.(웃음)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한 번 더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요. 몸 쓰는 데 원래 둔한 편은 아니어서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영화 할 때도 두 달 전부터 몸 만들고 와이어 연습하는데 저는 이번에 현장에서 준비한 게 다였거든요. 합을 짜서 1주일만 시간 줘도 더 잘할 수 있다니까요."
특히 김희선은 와이어 액션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재밌었다"고 웃었다. 여기에 와이어 액션 중에 라면 먹고 화장 하는 코믹한 코드를 가미한 건 감독의 아이디어였다고 털어놨다. 최병길 PD와는 이번 '앵그리맘'으로 찰떡 호흡을 과시한 덕에 누구보다 믿음직한 동료이자 지원군이 된 듯 했다.
"현장에서 나온 병맛(괴상하지만 매력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코드가 많았죠. 동갑이라 굉장히 친하게 지냈어요. 유머 코드나 4차원적인 생각도 비슷했어요. 감독님이 만약에 실력이 없었으면 좀 가벼워보일 텐데 정극이면 정극, 시청자들을 울리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야 성공한단 걸 정확히 알더라고요. 수위 조절을 굉장히 잘 하는 센스 있는 분이죠. 감독님이 강자가 자기 생각에 못미쳤으면 그걸 못했을 수 있다고, 엄마의 진정성이 묻어나서 코믹 요소를 넣을 수 있었다고도 해줬어요. 정말 고마웠죠."
데뷔 때부터 주목 받은 김희선은 그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홀로 받아내며 지금까지 여배우로 살아왔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더라도, 주변인보다는 '김희선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는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릴 때는 내심 기분 좋았다고 털어놨다. 물론, 이제는 좀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여유를 보였다.
"어렸을 때는 혼자 예쁘게 보이고, 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요. 저 혼자 튀는 것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같이 가면 두 배, 세 배, 네 배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예전엔 다른 여배우보다 제가 분량 많았으면 했고 예쁘게 나왔으면 했어요. 지금은 같이 잘 어우러지는게 훨씬 많은 시너지를 낸다는 걸 알게 됐죠."
김희선은 차기작을 언급하며 악역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데뷔 후 최초로 도전하는 캐릭터이기에 가급적 '이유있는 악역'을 하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야 맛을 보게 된 액션과 최초의 악역 캐릭터가 어우러진 '환골탈태' 김희선의 연기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저 악역 정말 잘할 수 있어요. 사람 본능 중에 그런 마음이 왜 없겠어요. 다들 약간은 욕심을 갖고 있고, 배우들 간의 신경전도 다 그런 마음이죠. 악역들도 다 안타까운 사연이 있잖아요. 그런 면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공감가는 악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작품만 좋다면 악역도 환영입니다. 사실 '앵그리맘'이 정말 좋은 기회고 작품이었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여자라서, 많은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아직은 우리나라가 핫한 아이들을 너무 원하는데, 누굴 탓할 수는 없는 거겠죠. 그 가운데 희애 언니나 혜수 언니가 길을 잘 닦아주고 계시니까 고마워요. 저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많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톱 배우이자 한 아이의 엄마 김희선 벌써 결혼 8년차를 맞은 대표 미시 배우 김희선.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하나 뿐인 딸에 대한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평소에는 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며 여느 엄마와 다름 없는 '딸사랑'을 드러냈다. "일 없을 땐 같이 장보고, 쇼핑하고, 여행도 가고 그랬어요. '참 좋은 시절' 할 때는 너무 애기를 못봐서 단 둘이서만 여행을 갔었죠. 우리 딸이 또 반장 하거든요.(웃음) 우리 집으로 동네 아줌마들 다 불러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상의도 하고 그래요." 20년이 넘게 연예인이었지만, 김희선에겐 거리낌이 전혀 없다. 아무리 같은 엄마 입장이라도, 그렇게 자연스레 섞이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는지 물으니 김희선은 "전혀 위화감 없다. 오히려 다른 엄마들이 더 예쁘다"고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강남 엄마들이 얼마나 예쁜데요. 아줌마가 아줌마가 아니에요. 제가 여배우가 아니라니까요. 어쩔 땐 '더 관리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엄마들 모임 나가면 진짜 긴장돼요. 요즘은 누가 연예인이라고 '관리 어디서 하냐' '뷰티 비결이 뭐냐' 묻지도 않아요. 옷 같은 거 힘주고 가도 티도 안나요. 다들 얼마나 잘 꾸미고 다니는지.(웃음)" |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