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1> 문화란 무엇인가?
경제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문화(culture)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의미와 종류의 문화개념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라든지 ‘우측보행 문화’ 같은 말에서 보는 ‘문화’란 생활 속에서의 습관이나 태도를 가리키고 있다. 또 ‘문화수준이 높다’, 혹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라는 말처럼 교양의 척도로 사용되거나, 개인의 여가나 취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더러는 ‘문화가 밥 먹여 주느냐’는 표현처럼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이익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도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가 않다. 문화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자연에 대립되는 말이라 할 수 있고, 인류가 유인원의 단계를 벗어나 인간으로 진화하면서부터 이루어낸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모든 인간의 산물이 포함된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들이 벌이는 권력다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권력다툼이란 결국 모든 인간적 산물들의 소유와 배분을 둘러싼 다툼이고, 궁극적으로 문화를 둘러싼 다툼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대표적인 몇 가지 개념을 알아보자.
첫째, 교양으로서의 문화이다. 서구사회에서 ‘문화’라는 개념은 오랜 동안 인간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흔히 그것은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인 것이다.
이런 문화 개념에 기초하여 오래 동안 비평가들은 최상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해왔고, 문화란 뛰어난 것을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로마인들이 자신들을 '문화인(civilian)'이라하고, 반면 게르만족을 '야만인(barbarian)'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둘째,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 문화이다. 이 경우 문화란 주로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문화는 사회와 무관한 순수한 것이며 고유의 배타적인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격식과 전통을 존중하는 순수문화예술작품, 고전음악과 발레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성을 지닌 대중문화와는 구분된다.
셋째, 진보로서 문화이다. 이는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발전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때의 문화는 문명(civilization)이란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 패러다임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적 관점과 관련된다. 서구 문화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관이 그런 것이다.
'문화'와 '문명'의 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리는 흔히 이 두 단어를 같은 개념으로 쓰기도 하고 구별해 쓰기도 한다. 그런데 통상 문화란 인류가 생활하면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뜻한다. 따라서 원시인류나 현존 미개인들도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문명은 보다 발전된 문화의 단계를 뜻한다. 문명단계의 징표로는 문자와 청동기의 사용, 도시의 출현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물질적· 정신적으로 진보한 상태를 뜻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대체로 '문화'는 종교· 학문· 예술· 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가리키고, '문명'은 보다 더 실용적인 생산· 공업· 기술 등 물질적인 방면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기술 문명', '토론 문화' 등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문화'를 정신문명, '문명'을 물질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문화가 ‘경작(culture)’에서, 문명이 ‘도시(civilitas→city)’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넒은 의미에서 같은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넷째, 그 사회의 생활양식이자 상징체계로서의 문화이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는 흔히 문화를 인간의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징체계를 습득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상징체계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즉 생활양식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양상이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언어생활이다.
이와 같이 문화의 개념이 다양하지만, 문화는 역사의 발전과 함께 변화되어 나간다. 언뜻 보기에는 문화가 마치 고정불변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즉 자연적인 것처럼 표상된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문화는 결코 자연(nature)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가 변화하면 그만큼 사회도 변화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는 사람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시키고 기존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를 교육함으로써 사회를 재생산하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키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
경제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문화(culture)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의미와 종류의 문화개념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라든지 ‘우측보행 문화’ 같은 말에서 보는 ‘문화’란 생활 속에서의 습관이나 태도를 가리키고 있다. 또 ‘문화수준이 높다’, 혹은 ‘문화생활을 향유한다’라는 말처럼 교양의 척도로 사용되거나, 개인의 여가나 취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더러는 ‘문화가 밥 먹여 주느냐’는 표현처럼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이익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도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가 않다. 문화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자연에 대립되는 말이라 할 수 있고, 인류가 유인원의 단계를 벗어나 인간으로 진화하면서부터 이루어낸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모든 인간의 산물이 포함된다. 따라서 문화는 인간들이 벌이는 권력다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권력다툼이란 결국 모든 인간적 산물들의 소유와 배분을 둘러싼 다툼이고, 궁극적으로 문화를 둘러싼 다툼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대표적인 몇 가지 개념을 알아보자.
첫째, 교양으로서의 문화이다. 서구사회에서 ‘문화’라는 개념은 오랜 동안 인간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흔히 그것은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인 것이다.
이런 문화 개념에 기초하여 오래 동안 비평가들은 최상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해왔고, 문화란 뛰어난 것을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로마인들이 자신들을 '문화인(civilian)'이라하고, 반면 게르만족을 '야만인(barbarian)'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둘째,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 문화이다. 이 경우 문화란 주로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문화는 사회와 무관한 순수한 것이며 고유의 배타적인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격식과 전통을 존중하는 순수문화예술작품, 고전음악과 발레작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성을 지닌 대중문화와는 구분된다.
셋째, 진보로서 문화이다. 이는 한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발전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때의 문화는 문명(civilization)이란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 패러다임을 인간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적 관점과 관련된다. 서구 문화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문화관이 그런 것이다.
'문화'와 '문명'의 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리는 흔히 이 두 단어를 같은 개념으로 쓰기도 하고 구별해 쓰기도 한다. 그런데 통상 문화란 인류가 생활하면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뜻한다. 따라서 원시인류나 현존 미개인들도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문명은 보다 발전된 문화의 단계를 뜻한다. 문명단계의 징표로는 문자와 청동기의 사용, 도시의 출현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물질적· 정신적으로 진보한 상태를 뜻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대체로 '문화'는 종교· 학문· 예술· 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가리키고, '문명'은 보다 더 실용적인 생산· 공업· 기술 등 물질적인 방면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기술 문명', '토론 문화' 등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문화'를 정신문명, '문명'을 물질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문화가 ‘경작(culture)’에서, 문명이 ‘도시(civilitas→city)’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넒은 의미에서 같은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넷째, 그 사회의 생활양식이자 상징체계로서의 문화이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는 흔히 문화를 인간의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징체계를 습득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상징체계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즉 생활양식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양상이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언어생활이다.
이와 같이 문화의 개념이 다양하지만, 문화는 역사의 발전과 함께 변화되어 나간다. 언뜻 보기에는 문화가 마치 고정불변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즉 자연적인 것처럼 표상된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문화는 결코 자연(nature)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가 변화하면 그만큼 사회도 변화하는 것이다. 결국 문화는 사람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시키고 기존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를 교육함으로써 사회를 재생산하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키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